길을 걷다 멋진 이성에게 눈길을 빼앗길 때가 있습니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멋진 각선미의 여성이거나 바람에 살짝 흩날린 긴 머리 사이로 드러나는 미모의 여성 같은 분에게 말이죠. 이런 분하고 같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 봅니다. 하지만 낯선 여행에서 곤란함을 겪고 있을 때에도 든든함을 전할 수 있는 이성을 마주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초조함을 말하지 않는 인내와 곤란함을 벗어나는 현명함을 가진 이여만 하기 때문입니다. 준비가 덜되었던 여행길에서 그렇게 일행에게 도움을 주었던 친구가 있었고 덕분에 즐거운 여행의 추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친구가 낯선 지역으로의 여행이 아닌 낯선 삶으로의 여행을 떠난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러기에 이 친구의 소식에 리얼리?라 외치는 의아함보다는 그 사람의 앞날에 대한 빙구 웃음을 먼저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에 대한 첫인상은 응답하라 1996의 시절로 되돌아가 대학교 동아리에서 우연치 않게 처음 마주치게 되는 동급 여학생의 느낌을 닮았습니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음에도 캔버스처럼 하얀 얼굴 위에 아프로디테가 수줍게 펜을 들어 그린 듯 안경 너머로 가늘고 길게 나 있는 눈과 수술의 흔적은 전혀 없는 앙증맞은 코와 만두 하나 제대로 입에 들어갈까 궁금해 지는 얇은 입술만큼이나 작은 입매가 귀엽지만 단아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화장이나 웃는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것에는 서툰 사람이기에 조금은 조심스럽게 대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만큼이나 자신의 감정을 얼굴로 그려내는 것도 쉬운 사람이라서 이 사람이 처음으로 보여준 어색한 미소 대신에 해맑은 웃음을 짓던 순간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조금 서먹해 보였던 한강에서의 자리에서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들이키고 한마디를 합니다. “전 술이 친구예요.” 한 없이 수줍어 보이는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은 그 엉뚱한 대답이라니!!

 

  이 친구에 대해 알고 지낸 지는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고 제가 이 친구에게 갖고 있는 편안함과 친숙함에 비해 실제로 알고 있는 부분은 의외로 적은 편이기도 합니다. SF에 대한 의외의 해박함이라던지 미드를 좋아해서 자막팀에 들어갔다는 에피소드나 취미로 배운 일본어로 현지인과의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언어능력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편안함에 비례하여 의외의 재기에 놀라움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친구의 모습 중 가장 멋져 보였던 것은 별을 좋아하는 천문학에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제 자신만의 좁은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별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신비와 꿈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느릿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할 지 언정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단조롭거나 작은 가치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이 친구가 저를 엄마라고 불렀더라. 간혹 온라인에서 알게 된 다른 지인들이 저를 어머니라고 부를 때면 쑥스럽기 그지 없었는데 이 친구에게 받는 호칭에게만큼은 전생에 정말 이 친구의 어머니였는지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걱정이 많은 맏딸이거나 애교를 둠뿍 받는 막내딸의 이미지는 아니에요. 조용히 차분히 자신이 해야 할 길을 가기에 조금은 신경이 덜 쓰이는 둘째 딸의 느낌이고 그러기에 제가 이 친구에게 해주었던 것보다 받았던 것이 더 많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합니다. 엄마가 외로워 할까봐 저의 생애 첫 소개팅을 주선해 주기도 하고 명절보다 꼬박꼬박 어머니라는 호칭과 더불어 가장 먼저 문안 문자를 보내주곤 하니까요. 하지만 얌전해만 보여서 언제 좋은 사람 만날까 걱정했던 저의 근심을 무색하게 어미보다 먼저 연애하고 결혼한다고 하니 왠지 얄밉기도 하고 조금은 감개무량하기도 합니다.

 

 웨딩 사진으로 처음 보게 된 신랑의 얼굴은 이 친구의 얼굴을 많이 닮았고 마침 지금 있는 직장도 가깝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말하기 더욱이 좋은 인연이라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무엇보다 턱의 모양이 닮아서 관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더 좋은 궁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청첩장을 전해주던 날은 덕담해 달라는 분위기에 부끄러움이 앞서 “싫어요!”라는 한마디를 던졌지만 실은 짧은 한마디보다 장황하더라도 좀 더 길고 좋은 말을 전하고픈 심정을 가집니다. 동성 친구라도 그렇지만 이성 친구에게 있어 결혼이란 가속도가 붙은 서로의 시간에서 조금은 멀어지게 되는 갈림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삶이라는 기로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라는 존재와 다른 존재를 연결하여 스스로가 엔진이자 바퀴가 되는 열차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부모라는 엔진에 기대었던 삶의 여정이거나 혹은 단 혼자 만의 여정이었다면 이젠 서로 조금은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 사람과의 새로운 여정을 나아가야 하기에 막연한 기대와 각오를 다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랑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지금 삶과 사람이 사랑과 가장 닮은 단어인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한 삶도 사람도 그리고 사랑마저도 영원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때론 잃어버리거나 닳아버릴 수 밖에 없는 소중한 삶, 사람 그리고 사랑의 조각들이 있을 수 밖에 없겠지만 여정의 와중에 새로운 소중함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둘이기에 한 사람이 앞을 보고 달릴 때 한 사람은 옆의 창으로 보이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길. 그리고 행복이라는 단어는 미래의 차량에 꾹꾹 밀어 넣지 말고 오늘 가질 수 있는 작은 행복은 오늘 더 많이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지금보다는 더 느리게 마주치게 되겠지만 혹 다시 보게 될 때 행복한 미소를 볼 수 있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앞에도 이야기 했지만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나는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한 때 엄마라고 불렸던 사람으로서 자식의 근심은 쉽게 알아챈답니다. : )

 

 사실 결혼식의 번잡함에 쉽게 적응하는 편은 아니라서 좋아하는 사람들의 결혼식에 참석해서는 어영부영 축하의 말을 대충 건네는 것이 일상다반사이긴 하지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제 개인 일정 상 축하의 말조차 제대로 건넬 수 없었던 다른 분들의 좋은 소식입니다. 많은 사람을 보냈으니 이제 무던하지 않냐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축하해요”라는 네마디 말이라도 전하고 받을 수 있는 인연이란 아직은 소중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제 일정상 직접 얼굴을 보고 축하의 말을 전할 수 없게 되어 가끔이지만 듀게를 보는 그 친구에게 축하의 말을 미리 남기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제 글로는 담아낼 수 없는 축하의 맘을 더 크게 전하고파 축하의 댓글이 달려 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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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에 영혼이 있다면,
제목을 두려워 하지 않고 확인하는 용기와 어떤 뻘글에도 댓글을 달아주는 책임감.
길지만 재미없는 글을 읽게 하는 조회수를 가졌을 것입니다.
단연컨대 댓글은 가장 완벽한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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