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노키즈존과 별 상관 없는 이야기입니다.




Supernany 라는 영국 프로그램이 있어요. 영국에서 시작해서 히트 친 TV 프로그램인데, 아마 미국에도 포맷이 수출되어서 거기서도 꽤 히트한 걸로 압니다.

거의 10년도 넘었지 싶어요. 제가 처음 본 게. 

한국에서 가장 비슷한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자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정도 되려나요?

부모도 어찌할 수 없는 통제불능의 아이들을 전문 보모가 관찰한 뒤, 부모에게 팁을 주며, '아이에게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훈수 두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한국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같은 전문 심리치료사 등등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모가 나와서 부모를 코치하는 걸로 끝입니다. 

뭐 어쨌든,


한국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마찬가지로, 지랄맞은 애들의 99% 문제는 부모 때문이라는 게,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더더욱 명확해지죠.



거기에 Jo Frost 라는 굉장히 유명한 보모가 등장해요. 그리고 이 사람이 부모에게 아주 습관처럼 말하는 게 있어요.



"아이 눈높이에 내려가서 얘기하세요"

"아이의 눈을 보면서 훈육하세요"


(물론 이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합니다만 일단 가장 처음 말하는 게 저 두 개)


평소에 말을 안 듣는 아이들도 부모가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가며 "너 왜 그래? 조용히 해야지"라든가 "엄마(아빠)가 뭐라고 했어? 이렇게 하면 안 되지"라고 하면

확실히 아이들의 눈높이가 부모의 허벅지나 무릎에 있을 때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전 결혼도 안 한 (노)총각입니다. 저랑 별 관련도 없는 이런 TV쇼를 제가 무슨 연유로 애청하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부모들이 하나 같이 탈진한 상태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전문 보모에게 하소연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래, 애 낳는 건 미친 짓이야'라고 되뇌며 팝콘을 씹으며 낄낄되는 게 전부입니다만, 

위의 훈육법이 굉장히 인상깊어서, 일상 생활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훈육하는 방식을 주의깊게 보는 편입니다.

예전 직업의 영향으로 외국에 많이 나가보면서도 살펴보며 국가별 자식 훈육법 같은 것도 좀 체험하고, 그랬는데...



확실히, 한국 부모들은 자식들 눈을 안 봅니다.





특.히.나. "지랄맞은 애새끼"들이라 칭할 수 있는 애들의 부모는 100% 아이들과 눈을 안 마주칩니다. 

나중에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자식에게 어떠한 요청을 할 때, 자식의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하나 안 하나.

전 상기 TV쇼의 그 메시지가 굉장히 인상깊어서, 부모와 자식이 외출한 경우 부모가 어떤 자세로 자식들에게 말을 하는지 좀 살펴보는 편이거든요.



"여긴 지하철이니까 조용히 해야지"라는 말이라든지 "쉿, 여기선 떠들면 안 돼"라는 주의를 주는 경우는 더더욱 없고

주의를 주는 경우라 하더라도 아이들의 눈을 절대 보지 않습니다. 도리어 핸드폰 화면을 보거나, 같이 여행하는 일행과 눈은 잘 마주치더군요.



한 이틀 전에 지하철에서도 이런 걸 봤죠.

젊은 부부와 아이가 같이 지하철을 탔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엄마는 지금 통화중이라 바쁩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아빠를 보며 "자기야, 얘 좀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갑자기 익숙지 않은 임무를 부여받은 아빠는 아이의 눈을 마주치는 게 아니라 엄마를 바라보며 입으로만 "아빠가 XX하랬지?" 뭐 이런 식. 아이의 눈높이는 아빠의 정강이뼈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이가 계속 칭얼거립니다. 아빠는 곧 아이 달래기를 포기합니다. 지하철은 더더욱 시끄러워집니다. 뭐 항상 이런 식.



제 경험 상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이게 좀 다릅니다. 한 레스토랑에 젊은 부부가 들어옵니다. 자식은 유모차에 타고 있네요. 

아이가 갑자기 칭얼거립니다. 정말 십중팔구는 부모가 허리를 숙인 뒤, 얼굴을 자식에게 거의 '들이미는 정도로' 얼굴을 맞대고 '쉬잇!' 이럽니다. 

유모차에 타기엔 조금 머리가 큰 아이 (유치원 정도 다닐 나이) 같은 경우라도, 메뉴판을 아이에게 주고 눈을 마주치며 "넌 뭐 먹을래?"라고 말하죠. 한국에서는 대개 보호자가 메뉴판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메뉴를 보며 자식에게 '너 뭐 먹을 거야'라고 합니다.

(정말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세요. 한국은 정말 십중팔구 이래요)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 



제가 참 궁금한 건, 국가에서 자식들을 이렇게 훈육해라 저렇게 훈육해라 매뉴얼이 내려오는 것도 아닌데

애 낳기 전에 나라별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아닌데,

한 국가 내에서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이렇게 비슷하다는 겁니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꽂꽂이 선 채로 아이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해라'라고 명령하는 문화와 (그렇게 '조용히 해라'라고 말하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눈을 마주치며 말하는 문화의 차이랄까요.



부모의 태도는 정말 국가별 문화 차이가 확연한데

아이들은 어디를 가든 다 똑같다는 것도 재밌는 것 같아요.


어느 나라든 정말 지랄맞은 애새끼들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 대형 마트에서 정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꽥꽥 거리는 애가 있었는데

엄마가 아이 팔을 훽 낚아채서 엉덩이를 마구 패대기는 것도 봤네요. 참. 아마 미국이었다면 생각지 못할 일이었겠죠.


뭐, 각설하고,



노키즈존 이슈가 흥하니 갑자기 이 이야기가 생각나서 끄적여봤습니다.

한국의 노키즈존 이슈의 쟁점은 부모의 훈육방식과는 사실 별 관련이 없겠죠. 이걸 찬성하는 입장은 부모가 '훈육 자체'를 안 한다는 거니까.


갑자기 그 Supernanny 가 보고 싶네요. Jo Frost라는 분, 요즘 영국에서 새로운 TV 시리즈를 낸 걸로 인터뷰도 하고 그러던데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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