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프로즌과 레고 무비를 본 이후로 거의 1년 반 만에 딸 아이와 극장엘 갔습니다. 아빠간호사님이 인사이드 아웃 글을 올려주신 것을 보고 시간이 나면 아이와 극장엘 가서 꼭 봐야지 했었는데 드디어 오늘 시간이 났거든요. 이 동네는 매주 화요일이 극장 반값이라 둘이서 12불 이라는 경이로운 가격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 사실 자막없는 통 영어 영화는 자신이 없었는데, 만 여섯 살이 된 아이는 유튜브 클립 몇 개로 예습을 하고 가서인지 한 시간 반 동안 영어로 계속 되는 영화를 단 한 번도 지루해 하지 않고 집중해서 잘 보아 주었습니다. 프로즌은 사실 뒷부분은 지루해 했거든요.. 


영화는 기본 아이디어를 비롯해서 소녀가 새로운 세상과 환경의 변화 속에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정말 멋지게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라일리가 하키 플레이어라는 설정도 좋았고, 명랑한 캐릭터도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몇몇 설정과 장면들은 좀 의문스럽긴 했지만 - 그토록 견고해 보이는 코어 메모리나 아일랜드들이 말 한 마디에 무너지는 장면들이라든지, 사실은 공감에 가까운 새드니스 캐릭터라든지, 다른 세 캐릭터의 반복되는 무능함이랄지. 행복이란게 거창한게 아니라 어떤 소통의 순간들의 모음이라는 기본 철학도 좋았고요. 아이들이 상처입고 비뚤어지고 반항하게 되는 심리를 좋은 기억의 상실과 통제 불능의 헤드쿼터로 보여준 장면도 탁월했다고 생각했어요. 상상의 공간, 장기기억의 통로를 배회하는 옛 추억의 인형.. 껌 CM 송 설정도 귀여웠고요. 부잉의  장면에서는 아이와 어른을 포함해서 꽤 여러 명이 훌쩍였네요.    


영화를 보고 온 후 아이는 조이와 새드니스, 디스거스팅이 뭐라고 말했는지, 끊임없이 재잘대며 장면들을 되새기며 수다를 떨고, 부잉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멋진 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가장 신경쓰였던 것은 이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엄마, 아빠랑 셋이 꼭 끌어안고 있는 라일리의 패밀리 아일랜드가 딸아이에게 불러 일으킬 파장이었습니다. 아이는 보통 때는 엄마와 둘이 지낸다는 사실을 딱히 인식하지 않고 명랑하고 행복하게 지냅니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는 아이들과 가족끼리 만나거나 하면 아이가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죠. 이곳 아이들은 그런 질문을 거의 하지 않지만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아이들은 "넌 아빠 없어?" 같은 질문을 툭 던지거나 합니다. "아니야, 아빠는 한국에 있어"라고는 대답하지만 아이의 마음 속에 무언가가 남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 또한 아빠없이 엄마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다고 이런저런 애를 써보지만, 뭐랄까 이런 엄마 아빠 아이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말로 어떤 "완벽한 가족" 이라는 그림 앞에 서면 그 모든 노력이 엄청 거대한 벽 앞에 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이가 영화를 보고 온 저녁에 평소에 안 하던 "아빠랑 카톡할래" 하면서 카톡을 보내보고선 바로 답이 오지 않자 조금 낙심한 것을, 그러나 그 낙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근데 아빠 잘못보냈어요" 라고 마무리한 것을 보았을 때 아이가 생각보다 빨리 자라겠구나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수없이 부딪치게될 완벽한 가족이란 그림 앞에서 아이가 괜스레 상기하게될 상실감에 대처하기 위해 뭔가 대비책,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둘이서도 괜찮아" 로는 아마 부족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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