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 남겼던 잡담들을 포함한, 

리피피, 지붕위의 바이올린, 자브리스키 포인트, 엑시던트, 
모퉁이가게, 몬티 파이톤의 성배, 윈터스 본 잡담.



1.
먼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리피피
절대로 밝고 희망찬 내용이 아니었는데도, 
누아르 특유의 허망함이나 짜증스런 암울함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이 사람들은 이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주인공들의 "구질구질함"보다는 강도 행위에 몰두하는 프로페셔널리즘에 집중했기 때문일까요.

근데 영화 중반 그 유명한 강도 장면에서는 깜빡 졸아버렸습니다.
장면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그날 너무 피곤했기에... 아쉬워요. 언젠간 다시 봐야지.



2.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영화는 발랄한 뮤지컬인척하면서 엄청 진지하고 민감한 문제들을 잔뜩 다루고 있습니다.
그걸 다 능구렁이처럼 안고 가는 건, 원작의 힘보다도 노먼 주이슨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유튜브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한 장면을 보고, 더욱 그 생각을 굳히게 되었죠.


Everything's Alright의 1973년 영화판. 노먼 주이슨 감독.



예수랑 유다를 서로 삐진 양아치처럼 만들어버린 
(아마 2000년) 공식 공연기록영상판 Everything's Alright



적어도 저에게는 위 두 장면이 천지차이로 느껴집니다.
근데 아래쪽을 더 좋아할 분도 계시려나...


그리고 지붕위의 바이올린에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부지 테브예를 연기한 토폴이 
당시 겨우 삼십대 초반이었다는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게 당시 스틸.


그리고 이게 최근 사진. (2009년)



세상에, 최근 사진이랑 도저히 매치가 안되잖어. 
최근이 더 젊어보일 뿐더러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군요.
단지 수염 때문이 아니라... 얼굴살이 빠진 탓이려나요.

당시 토폴을 늙어보이게 만들기 위해 노먼 주이슨 감독의 흰수염을 뽑아서 토폴 눈썹에 붙여줬다는군요.
imdb의 trivia를 보면 친절하게도 왼쪽에 7가닥, 오른쪽에 8가닥이었다는 정보까지 나와있습니다.
이거 정말 믿어도 되는 일화일까요.




3.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악명에 비해 의외로 괜찮았던 영화. 
사실 저는 안토니오니 영감님 작품들 별로 안좋아하는 편입니다. 
근데 이 영화는 그분의 다른 "걸작"들보다 오히려 맘에 들더군요.

뻘하게 만나 뻘하게 헤어지는 이야기 구성도 쿨해서 좋았고,
그 유명한 라스트도 스크린으로 보니 신나더라구요.





이날 자브리스키 포인트를 본 4명의 공통된 반응. 
"그러고보니 이 영화 라스트씬은 수십번봤는데 정작 이 영화 본 거 처음이야." 
그리고 또 다른 반응이
"이 영화 잭 니콜슨 나오는줄알았는데 아니네?"
('여행자'에 잭 니콜슨이 나오죠. 저도 헷갈렸어요. 역시 안토니오니 영감님이 미국서 만든 작품.) 

이 영화 제목은 항상 헷갈립니다. 자브"라"스키 포인트인줄 알았는데
자브"리"스키 포인트가 맞다는 사실.






4.
엑시던트는 미션 임파서블팀이 살인청부업을 하는데 
맥가이버 스타일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상황을 만들어내는 내용…

…으로 시작하더니 갑자기 히치콕 스릴러가 되는 영화. 

어찌보면 기대를 배반하는 걸 수도 있지만, 
후반부 긴장감이 워낙 좋아서 몰입하게 됩니다.

근데 필름포럼의 엑시던트는 아무래도 아나몰픽 소스의 디지베타였던 듯. 
블루레이도 나온 영화를 극장가서 SD화질로 보는 건 확실히 좋은 기분은 아니죠.



5.
모퉁이가게의 두 주인공은 구식 로맨틱 코미디의 캐릭터들이긴 했지만, 
지금 기준으로 봐도 거슬리진 않고 호감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여자주인공의 수동적인 모습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걸 상쇄할만한 매력이 있었고,
뭐 수동적인 걸로 따지자면 제임스 스튜어트도 마찬가지인지라.
하지만 역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안절부절 캐릭터 마투첵 사장님.

두톱 주인공을 내세운 플롯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양한 인물들을 고루 다루더군요.
요새 만들어졌다면 - 유브 갓 메일이 그랬듯이 - 두 주인공에게만 촛점을 맞췄거나,
아님 거꾸로, 좀 더 커다란 백화점을 배경으로 러브 액추얼리같은 스타일로 만들어졌을 듯 합니다.

얘기 나왔으니 말인데 전 이 유브 갓 메일이 어떻게 해서 이 영화의 리메이크라는 건지 이해가 안됨.
설정 빼고 비슷한 부분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아니, 남자 주인공을 제임스 스튜어트의 캐릭터와 마투첵 사장의 캐릭터를 믹스한 사람이
유브 갓 메일의 톰 행크스 캐릭터가 되려나요.

아, 여기서 모퉁이 가게의 영화 전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 종료된 작품이라 올라온 모양. 화질은 그리 좋지 않지만요.






6.
몬티 파이톤의 성배를 극장에서 볼 때는 웃음이 빵빵 터질 걸 기대했는데...
그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기분좋게 키득키득.
코코넛 말발굽 소리를 극장에서 우렁차게 듣는 건 감동적인 경험이죠.
킬러 토끼나 다리 건너기 퀴즈를 비롯해, 
대부분의 장면들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잘 먹히는 유쾌한 개그였습니다.
'인생의 의미'나 '브라이언의 삶'도 극장에서 볼 기회가 왔으면 좋겠네요.




7.
윈터스본은 가슴에 풍덩풍덩 돌을 던져 울림을 주는 영화일 거라 기대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건조하고 스토리 전개도 불친절한 편이더군요.
주인공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 -> 누군가를 만난다 -> 위험하다 -> 근데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이런 패턴이 매번 반복되다보니 단조롭다는 느낌.
이런식으로 정보가 차단된 이야기 전개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더해주기 위한 장치였을까요?
그 모호함이 이야기에 풍취를 더해준다기보다는 오히려 모자르게 만드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원작도 본래 그러했는지, 각색을 위한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반면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주인공은 소문대로 대단했습니다.
엄청나게 폭발적인 연기력이라거나, 세세한 디테일을 구사한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만,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때까지, 그 단호함을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데서 감동을 줍니다.
사실 그 단호한 모습 때문에 영화 초반엔 감정 이입하기가 좀 힘들었지만요.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니 
올해 개봉하는 '엑스멘 퍼스트 클래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어제까지는 전혀 기대가 안되는, 보더라도 의무감으로 보게 될 영화였는데 말이죠.
(전 엑스멘 2편 이후 브라이언 싱어가 떠난 3편은 아주 "짜증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울버린은 재미있게 봤지만 어차피 시리즈와 "별개"라고 생각하며,
퍼스트 클래스의 감독인 매튜 본이 만든 '킥애스'로 말하자면 
장르 비틀기로 보나 액션 자체로 보나 그저그랬던 "밍숭맹숭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배역도 아니고 미스틱(!)으로 등장한다죠. 제니퍼 로렌스 만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9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5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559
107936 살아 있는 식빵들의 저녁 [1] 샤유 2011.01.25 1465
107935 [마감:)] 아가씨들, 마카롱과 순대국 독서모임 같은거 어때요. [18] Paul. 2011.01.25 3109
107934 설휴가(?) 몇일 받으셨습니까? [5] chobo 2011.01.25 2228
107933 자살충동이 심한 사람에겐 어떤 방법이 도움이 될까요? =_= (무거운 이야기) [14] whitesun 2011.01.25 3273
107932 맨날 퍼나르다가 처음으로 취재한 기자 [3] 사과식초 2011.01.25 2307
107931 결국 김혜리 양 사기친 것 맞네요.. [33] 잉여공주 2011.01.25 9246
107930 <혈투> (박희순 진구) 예고편 [3] fan 2011.01.25 1450
107929 우정바낭 [4] 사람 2011.01.25 1292
107928 사회 도덕이 사라진다는 기사 내용과 관련하여 [1] 유디트 2011.01.25 1522
107927 (종료)음악방송합니다.(Pop) JnK 2011.01.25 1052
107926 원래 이직(예정)이면 이런가요... (본문 펑) [13] togemaru 2011.01.25 2665
107925 여러 가지... [13] DJUNA 2011.01.25 3276
107924 떡 매니아의 슬픔 [12] 자두맛사탕 2011.01.25 3141
107923 아이돌 잡담들 [13] 메피스토 2011.01.25 2619
107922 포청천이나 볼까요 [2] 가끔영화 2011.01.25 1308
107921 카라사태는 점점 더 요단강을 건너가네요.... [9] 디나 2011.01.25 3536
107920 엄마와 사는법 [6] dl 2011.01.25 1910
107919 카라사태의 배후 문자 공개. [4] 자본주의의돼지 2011.01.25 4242
107918 아비꼬 종로점 오픈기념 방문 ㅡ 날계란 얹어달랬더니 쌍노른자. [5] 01410 2011.01.25 3676
» 1월에 본 영화들 - 리피피, 지붕위의 바이올린, 자브리스키 포인트, 엑시던트, 모퉁이가게, 몬티 파이톤의 성배, 윈터스 본 까지. [10] mithrandir 2011.01.25 241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