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퀘스트 5

2023.08.19 14:07

돌도끼 조회 수:200

시에라는 1980년에 '미스테리 하우스'로 그래픽 어드벤처의 시대를 열었고,
84년에는 '킹스 퀘스트'로 그래픽 어드벤처의 패러다임을 바꿉니다.

90년 '킹스 퀘스트 5'를 선보여 다시한번, 세상을 충격에 빠뜨립니다.

(전부 다 로버타 윌리엄스의 작품이었죠.)

'KQ5'의 충격은 대략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는데, 우선 용량.
크기가 거의 10메가 가까이 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지간한 게임은 2DD 디스크로 두장(합해서 1메가 미만)이면 정리되었고, 크기가 좀 크다고 해도 3메가 언저리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때에 'KQ5'의 저 어마어마한 덩치는 상식밖의 것이었습니다. 디스크 장수도 거의 2HD 10장에 육박해, 플로피에서 바로 실행은 되지만, 인성수련할 게 아니면 하드디스크가 사실상 필수였습니다.

두번째는 인터페이스의 충격이었습니다.
어드벤처의 시작이 키보드를 통해 컴퓨터와 인간이 필담하는 형식이었고, KQ1이 텍스트 의존도를 줄이고 본격적인 그래픽 어드벤처의 틀을 만들었지만 그래도 명령어 입력만큼은 키보드를 통해서 직접 쳐넣는 방식을 유지했습니다. 이 '키보드로 직접 타이핑한다'는게 어드벤처의 대표적인 정체성이었고, 이게 빠지면 어드벤처가 아닌겁니다ㅎㅎ.
그러다 후배인 루카스아츠가 '공포의 저택'으로 참신한 포인트앤클릭 방식을 제시했는데, 이 루카스아츠의 방식도 실은 화면 아래 미리 포진해 있는 단어(텍스트)를 마우스로 찍어서 조합하는, 그러니까 타이핑 과정을 반자동화시킨 거지 텍스트 명령어를 입력한다는 기본 틀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려면 일단 문장을 만들어야합니다.

근데 KQ5는 아예 대여섯개의 그래픽 아이콘만으로 게임의 모든 걸 콘트롤합니다. 어드벤처 게임의 콘트롤에서 텍스트를 완전히 몰아내버린 거죠. 진짜로, 그래픽으로만 진행되는 어드벤처 게임이자 진정한 포인트앤클릭입니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아 얼마안가 모든 게임들이 다 따라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드벤처는 키보드와 작별하게 됩니다.

세번째는 옙, VGA 쇼크입니다. 88년 'KQ4'에서 영화음악 수준의 사운드를 선보여 사람들을 놀래켰던 시에라는 청각에 이어 이번엔 비주얼 쇼크를 선사했습니다.
VGA는 나오긴 87년에 나왔지만 90년이 될 때까지 일반에 보급은 별로 안되어 있었죠. 80년대말부터 이런저런 게임들이 VGA를 지원하기는 했어도 숫자도 많지는 않은 편이었고, 시장 사정을 고려해 하위호환을 신경쓰고 있던터라, 그냥 있으면 더 좋은(하지만 돈 많이 드는) 고급 옵션이었습니다. CGA나 흑백 허큘리스 쓰는 사람도 어지간해선 큰 문제없이 게임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KQ5는 VGA 전용. 없으면 안돌아갑니다. 안돌아가면 까짓거 안하면 그만....하고 외면할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스샷이라도 한번 보면 도저히 눈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KQ5는 진짜, 당시 기준으로는 눈을 의심할 정도의 그래픽을 보여줬습니다. 이때껏 나왔던 VGA 지원 게임들 중에 이런 건 없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넘어가버렸죠.

KQ5를 하기 위해서는 대용량을 감당할 하드 디스크, 포인트앤클릭을 위한 마우스, 글고 VGA가 필요했습니다. 덤으로 사운드카드(또는 미디)도 있음 더 좋고.
당시 컴퓨터 쓰는 사람들한테 이 네가지중에 어떤 것도 필수장비가 아니었습니다. XT 쓰고있던 사람은 아예 컴터도 바꿔야합니다. 그러니까 게임 하나 해보겠다고 대출혈을 해야하는 거죠ㅎㅎ 그런데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해버렸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이야 뭐 신작게임 하려면 컴퓨터부터 바꿔야하는게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그게 흔한 일은 아니었죠.

우리 친절한 시에라님께서는 그런 지출이 부담스러울 사람들을 위해 그래픽을 (많~~이) 다운그레이드시킨 저사양 컴퓨터용 EGA 버전을 따로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그치만, 안팔렸어요. 이 KQ5 EGA 버전은 인터넷 시대가 와서 온갖 사소한 정보들까지 공유되는 때가 되기 전까지는 아예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묻혀있었습니다.

바뀐 입력방식은 기존의 어드벤처 팬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텍스트 명령어를 입력하는 것이 어드벤처의 스피릿이라고 믿는 게이머들, 개발자들이 많았고, 시에라 사내에서도 반발이 있었습니다. 그럴만도 한게... 어드벤처 게임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하는 게임이거든요. KQ5의 포인트앤클릭 인터페이스는 머리속으로 해볼 수 있는 여러가지 상상을 아이콘 하나로 다 묶어버린 거라, 생각할 거리가 줄어들고 그만큼 게임이 단순해지죠.

그치만, 아이콘 인터페이스의 도입으로 그만큼 게임 난이도가 낮아지면서 장르 진입장벽도 같이 낮아집니다. 거기다 VGA와 미디를 동원한 그래픽과 사운드는 당시로서는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였으니까, 진입장벽 때문에 꺼리던 사람들뿐 아니라 평소에 어드벤처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대거 끌어들이게 되면서 결국 KQ5를 비판하던 사람들은 소수의견이 되었고 이렇게 시에라와 로버타 윌리엄스는 어드벤처의 패러다임을 다시 한번 바꿨습니다.

지금 어드벤처가 한물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언제가 전성기였는지를 떠올려본다면, 바로 KQ5가 나온 다음부터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드벤처 게임이라고 하면 머리속에 떠올릴 전형적인 모습도 KQ5 이후의 어드벤처들이죠.



근데... 세월이 꽤나 지나 콩깍지가 조금 벗겨진 다음에 보니까.... 단순히 게임만 놓고 봤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이 꽤 있어요. 4편에 비하면 게임 구성이 좀 심심한 편이고... 떡밥만 던져놓고는 회수 안하는 게 있다든가... 여기저기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게임이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첫번째 파트만 촘촘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근데 이부분은 여행 떠나기 전에 준비물 챙기는 부분이거든요. 뒷부분하고는 연결도 안되요. 이후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 뒤로는그래픽과 사운드에만 공을 들이고 게임 구성엔 신경을 덜쓴 느낌이 들어요. 그치만 뭐... 좋은 게임이란 건 단점이 없는 게임이 아니라 장점이 단점을 덮는 게임이니까요. 그정도는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게임이었죠.





흥미로운 점은, KQ1이 거의 처음으로 EGA 그래픽을 선보인 게임이었는데... (정확히는 PCjr 그래픽이지만 EGA가 PCjr의 그래픽 성능을 그대로 흡수했고 PCjr는 바로 망했기 때문에 사람들한테는 EGA 그래픽인 걸로 알려졌죠) EGA의 시대를 끝장낸게 KQ5.

시디롬 버전은 (그냥 생각없이 킬킬거리고 싶은 분 아니라면) 적극 비추합니다. 최상의 실행 환경은 IBM VGA 플로피 버전 + MT-32(구버전) + 빵빵한 스피커 조합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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