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은 곽재식님의 소설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에 등장하는 소제목들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어제 모처럼 거하게 마셨다고 할만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 짧은 수면을 취한후에 출근했습니다. 얼굴은 붓고 입에서는 술냄새가 진동을 하고 표정은 시무룩해졌지요. 어제 글에도 썼지만 11시부터 있는 곽재식님의 특강에 갈까 말까 출근할때 부터 고민을 하다가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외근한다고 휙하니 나오는데 아무도 뭐라고 물어보지를 않더군요. (뭐.. 원래 뭘하는지 잘 물어보지 않는 직장에 그러한 포지션이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그리하여 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량하고 대학생들은 발랄한 신촌하고도 연세대학교 백양관 강의실에 가보았습니다. 두시간동안 곽재식 작가님의 특강을 듣고 부랴부랴 후다닥 구입한 역적전에 사인까지 받아 사무실로 돌아왔네요. 제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묻고 싶었던 질문은 다음을 위해 아껴 두겠습니다. 


두시간의 특강 내용은 "듀나의 SF소설을 통한 자아의 발견"이었는데 제가 특강을 들으며 발견한 건 SF 전문 소설가이자 영화 평론가인 듀나님에 대한 애정과 관심과 팬심과 덕심같은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저렇게 좋아해주고 내가 쓴 글에 열광해 주고 심지어 그걸 대중앞에서 강의까지 해준다면 나는 그 보답으로 상대방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것인가..같은 문제를 심도깊게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했구요. 


간만에 앉아본 강의실의 대학생들은 제가 학교 다닐때랑 크게 달라진게 없더군요. 조는 사람들이 좀 있고 엎어져 자는 여학생들이 나란히 두명 있었고(사이좋게 엊저녁에 클럽에서 무리라도 한건 아닐지..) 강의실에서 선글래스를 쓴 학생도 있었습니다.(쌍수가 의심되더군요..) 그와중에 CC임이 분명한 한 커플은 나란히 앉아서 강의 도중에도 서로에게 친숙활동을 하는 것이 못내 신기했습니다. 


일반인 청강이라 앞자리에는 앉지 못하고 맨 뒷자리를 차지하니 공부만 했던 학창 시절에 비해 이렇게 다양한 군상을 관찰할 수 있다는게 신기했습니다. 나이들어 뻔뻔해져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곽재식님을 실제로 본 소감이나 강의의 내용 같은 건 고이 혼자만의 감상으로 넣어두겠습니다. 그래야 업무째고 다녀온 보람 같은것이 있을 것도 같고.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많은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 듣고 허기가 파도처럼 덮쳐와서 학생 식당에 가 라면을 먹었습니다. 해장에는 라면이죠.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라면이 끓여지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마침내 주어진 1,500원짜리 계란 라면을 먹었는데 마치 공장에서 끓여진 라면의 표본 같은 것이 있다면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맛이 있지도 없지도 계란이 보일락말락하지만 그걸 가지고 항의하기도 애매한 라면이었어요.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절묘한 물조절까지 기계가 하더군요.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비결은 백종원씨가 설파한 것처럼 "물을 조금 적게 넣을 것. 혹시 물이 많다면 된장 반스푼" 이었던 겁니다. 


라면을 다 비우고 해장도 조금 한후에 사무실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유독 여대생들이 이뻐 보였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이 전반적으로 연세대 여학생들의 평균 미모가 향상된 탓인지 봄이라 그런건지 화장술 혹은 의술의 발전이 이토록 빠른 것인지 아니면 선택적으로 이쁜 여학생들만 기억에 남은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만 봄, 대학생, 좋은 날씨, 팬심 가득한 특강 같은 것이 어우러진 오늘은 좋은 날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13일의 금요일이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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