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6 00:14
이런 영화입니다만.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고 개봉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듀나님 리뷰(http://www.djuna.kr/xe/review/12301027)를 보고 흥미를 갖게 됐는데. 마침 iptv에VOD로 올라와 있더라구요. 그래서 냉큼 봐 버렸죠. 최대한 스포일러 없게 적겠지만 아주 미약하게 흐름과 분위기를 예측할 수 있을만한 힌트라도 보기 싫으신 분은 주의해주시구요.
아니 생각을 해 보세요.
영화의 기본 설정이 "남들 눈엔 안 보이는 무언가가 너를 죽일 때까지 끝없이 쫓아온다. 이걸 무찌를 방법은 없고 니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해서 그 사람에게 넘기는 것 뿐인데 만약 네가 넘긴 사람이 그 무언가에게 죽으면 다시 네게 돌아온다" 라는 겁니다.
이건 뭐 호러판 아메리칸 파이 같은 영화를 1, 2, 3, 4 넘겨가며 시리즈로 찍어도 남을 법한 설정 아닙니까. ㅋㅋㅋ 뭔가 분위기가 막 떠오르죠.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섹스라니 야하고 막장스런 엽기 호러 영화를 만들어서 시작부터 끝까지 화면을 맨살과 살점들로만 가득 채워도 모자랄 법 한데. 이 영화는 절대 그런 방향으로 가질 않습니다.
시작부터 이런 분위기는 충분히 감지가 됩니다. 이름 모를 어떤 소녀가 '그것'에게 희생되는 장면을 도입부로 깔고 있는데. 생전 본 적도 없고 초장부터 속옷만 입고 뛰어다니다가 대략 3분만에 죽어 버리는 그 소녀가 너무 불쌍하고 그 장면이 너무 슬퍼요. =ㅅ=;;
그리고 바로 뒤에 주인공과 친구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뭐랄까... 미국 10대 청소년들의 삶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인디 필름을 보는 기분을 줍니다. (사실 듀나님 리뷰 대충 읽은 것 외엔 아무 정보 없이 봐서 한동안 '영어 더빙한 유럽 영환가?' 이러면서 봤습니다;) 절대로 10대들 우루루 몰려 나오는 미국 호러 영화 같지 않고 심지어 호러 영화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이야기 굴러가기 시작하면 또 뜻밖에도(?) 꽤 긴장감이 넘치고 또 무섭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기본 설정에서 예상되는 분위기나 전개를 요리조리 피해가는 영화였던지라 명색으로만 호러 간판 걸고 지루하게 전개되는 청춘물이 아닐까 잠깐 의심도 해 봤습니다만 그렇지 않아요. 호러를 제대로 해 줍니다. 다만 추잡 & 난잡하지 않고 뭔가 공감 가능하면서 주역들에게 진지하게 감정 이입할 수 있게 해주는, 살짝 느릿한 듯 하면서도 할 건 다 하는 호러인 거죠.
기본 설정이 설정이다 보니 섹스씬이 몇 번 나오긴 합니다만 특별히 노출이 강한 씬도 없고 애초에 야한 느낌을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판권을 사서 야한 속편을 만들어 달라!! 그리고 그 와중에 여주인공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결단을 내리는 장면 또한 어찌나 처연한지 처음 설정을 듣는 순간 이러쿵 저러쿵 예상했던 게 막 미안해질 지경이구요;; 그리고 주변 친구들 역시 하나 같이 다 착하고, 진심으로 주인공을 걱정해주고, 쓸 데 없이 욕도 안 합니다. 네. 욕이 별로 안 나오는 미국 10대 영화에요. 그야말로 레어 아이템.
암튼 뭐 그래서 결론은 재밌게 봤다는 겁니다.
유플러스 vod로 4000원이니 속는 셈치고 한 번 도전 해보셔도...
물론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ㅋㅋㅋ
사족 1.
주인공에게 저주를 떠넘긴 벼락 맞을 녀석이 나올 때마다 장기하 생각이 나서 웃었습니다. 문어 짬뽕 먹고 싶...;
사족 2.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쫓아다니는 '그것'의 컨셉이 일단 주인공에게만 보이고, 하지만 실체가 있어서 나름대로 공격 비슷한 것도 가할 수 있으며, 아주 느려서 참으로 피하기 쉽지만 쉬지 않고 다가오는 데다가 잡히면 확실하게 죽는다는 건데. 문득 '극단적으로 비효율적인 무기를 가진 끔찍하도록 느린 살인마' 생각이 나더군요. 그 영화를 각잡고 진지하게 만들면 어떻게될지 괜히 궁금해졌습니다.
사족 3.
20여년전, 분신사바 놀이가 전국을 강타하던 무렵에 분신사바에 탁월한 소질을 가진 제가 다니던 학교 선배 누나가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누군가가 보인다고 헛소리를 하다가 어느 날 그 사람이 교실 안에 있다며 소리치고 뛰쳐나가 학교 도서관 문을 걸어 잠그고 울부짖다가 정신병원에 끌려갔다... 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역시 이 영화의 악령을 보다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저 얘기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수업 중에 갑자기 윗층에서 무슨 고함 소리가 막 들리다가 앰뷸런스가 와서 누군가 실어갔던 일은 기억을 합니다. 그게 그 얘긴진 모르겠고...;
암튼 이런 악령은 동서양을 초월해서 인기 있는 도시 전설 소재인갑다... 싶습니다.
2015.05.06 02:21
2015.05.06 09:14
전 극장에서 보고 뒤통수 맞은 느낌이 들었어요. 나름 호러 매니아 초급 수준으로 좋아하기도 하고, 시놉시스만 보면 어설픈 틴에이져 호러 같아 그닥 기대없이 우연히 보러 간거였는데 보고나서 집에 올때도 계속 뒤 돌아봤고. 일주일동안 영화의 환각에 시달렸어요. Ost도 끊임없이 듣고. 한번 더 보지 않으면 이 환영에 더 시달릴 것 같아 한번 더 보려 했더니 상영관이 새벽 두시 ㅡㅡ 이렇게 밖에 없더라구요.. 무튼 다운로드가 풀리지 않아 아쉬워 하던 차였는데 iptv로 나왔었네요! 요근래 보기드문 매혹적인 호러였어요.
2015.05.06 09:39
2015.05.06 10:17
처음 보고난 뒤엔 영 찜찜...차라리 도끼 들고 설치는 제이슨 같은 놈이랑 치고받고 싸워서 죽든 아니든 승부를 내는 게 낫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곱씹을수록 괜찮은 영화에요. 자매들끼리도 사이가 너무 좋고 친구들도 여주인공을 버리고 달아다는 대신 함께 물리칠 방법을 찾고 옆에서 지켜준다고 하는 게 찡하고 사랑스럽더군요. 너네가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십대니까 그런 거라는 냉소 같은 건 날릴 수도 없었어요.
2015.05.06 10:56
timeinabottle/ 네. 무려 한글 자막까지 달린 유튜브 히트작이죠. ㅋㅋ
mana/ 저도 기본 설정만 놓고 보면 딱 전형적인 하이틴 호러 무비 같았는데 듀나님이 호평을 하셔서 호기심에 보고 참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냥 재밌다... 를 넘어서 뭔가 분위기가 독특하고 좋았어요. 물론 기본적으로 무섭기도 했구요.
잡음/ 주로 호러나 스릴러가 그런 것 같은데... 아무래도 머리 싸움 내지는 반전 같은 걸 넣기 좋아서가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류의 영화가 아니어서 보면서 계속 읭? 읭? 이러고 있었네요. 설정만 보면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같은 영화가 나왔어야 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보름달/ 저도 딱 보고 나선 그냥 재밌네... 정도였는데 자꾸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하면 할 수록 괜찮은 영화였다 싶더라구요. 다 보고 나서 생존자들의 이후 삶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걱정-_-해준 호러 영화는 처음이에요.
2015.05.06 21:37
2015.05.06 23:02
듀나님 추신도 재밌었어요. 왜냐면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동성 섹스는? 쓰리썸은? 난교는? double penetr......;;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거 자체가 잘 만든 영화라는 뜻이겠죠!
그리고 문득 생각한 건데, 90년대였다면 이 영화를 에이즈에 대한 공포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괴담도 있지 않은가요? [에이즈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괴담.
물론 에이즈 자체야 이제는 '흔한 난치병 1'정도지만요.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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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숟가락 살인마 말씀인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