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

2015.05.31 14:27

여은성 조회 수:1234


  1.요즘은 재미있는 글을 쓰려다가도 결국 이상한 소리를 하게 되네요. 글을 마치고 끝에 이걸 적으려다가 이런 걸 보고 싶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맨 위에 적어요.


 

 2.가끔 세상일을 주식에 비유해 보곤 해요. 물론 이건 순서가 바뀐 것이죠.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들이 삼라만상을 닮은 거지 삼라만상이 인간이 만든 걸 닮은 건 아니니까요.


 어쨌든 인생을 주식에 비교한다면? 대부분의 인생은 그냥 잘못 산 주식일 뿐이예요. 오를 거라는 희망이나 기대 따위는 버려야 하는 그런 주식들 말이죠. 잘못 산 주식을 대하는 방법은 하나 뿐이죠. 빠른 손절이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생이 잘못 산 주식이고 손절을 해버리는 게 낫다는 것을 깨달을 때쯤에는 손절하기가 억울하고 겁도 나요. 그간 견뎌야 했던 세월과 풍파를 생각해보면 이 종목...내 인생을 쿨하게 잘라버리기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예요. 손절을 하려면 아주 오래 전...나쁜 기억이 많지 않았을 때에 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던져버리기엔 이 주식을 너무 오래 들고 있었어요. 


 휴.


 그 누구도 내 인생이라는 주식에 신경쓰지 않아요. 내 인생 가격이 어떻게 되든 신경쓰고 연민과 애증을 느끼는 건 나자신뿐이죠. 이쯤 되면 이 주식은 팔 수 없는 거예요. 지금까지 들고 있던 게 아까워서라도 계속 들고 있든 정말로 오를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들고 가든 악에 받쳐서 계속 들고 가든 아니면 이 가격대라도 계속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계속 들고 살아가든 대개의 사람들은 그냥 자신의 인생을 계속 홀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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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희망이 샘솟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 주식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마음을 적시면 아주 잠깐 기분이 나아지곤 해요. 예전에는 그런 희망이 들자마자 싹을 잘라 버렸어요. 염세적이고 편집증적인 자들만이 살아남는 곳이니까요 이 세상은. 그런데 요즘은 그런 희망이 싹을 틔우는 걸 가만히 보며 내버려두곤 하죠.




 3.흠...2번은 뭘쓸까 하다가...위에 말한, 편집증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굳이 똑똑한 편인가, 똑똑하지 않은 편인가를 말해 보라면 저는 아마 똑똑한 편일 거예요. 그러나 대학을 졸업해 보니 그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전혀요. 사람은 스스로 여기고 있는 만큼은 똑똑하지 않고 남들은 내가 여기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거든요.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처럼 아주 똑똑하지는 못한 사람에겐, 세상은 똑똑함으로 살아남는 곳이 아니라 편집증적인 태도로 살아남아야 하는 곳인 거죠. 


 뭐 모든 건 부작용이 있다고 봐요. 똑똑함으로 살아남다 보면 교만해진다는 단점이 있죠. 교만함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히면 건너야 하는 다리가 무너질 다리인지 단단한 다리일지 구분하지 못하게 돼요. 흠. 내가 건너야 하는 다리가 견고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이 다리는 내가 건너는 다리니까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큰소리를 치며 다니게 되죠. 


 편집증적인 태도로 살아남다 보면 그 태도를 생존에만 적용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도 적용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죠. 이건 분리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그냥 스며들듯이 침범해 오는 거죠. 그리고 안전하고 행복해야 할 일상마저도 오염시켜 버리고 마는 거죠. 옛날에 듀게에 썼는지 모르겠네요. 주위의 또래 친구...아니 이젠 아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삶(life)인지 생존(survival)인지 잘 알 수가 없을 때가 많다고요. 어떤 사람의 인생에는 삶은 아예 없고 일어나서 잠드는 시간까지, 모든 게 생존을 위한 것뿐이예요. 일하는 시간이 아닌 이동하고 식사하는 순간까지도요. 그런 사람에겐 가까이 가고 싶지가 않아요. 싫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과 한 자리에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휴.


 요즘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저는 70대 30, 90대 10 같은 게 별 의미가 없다고 봐요. 인생의 99가 좋아도 1의 나쁜 것이 있으면 그 1을 신경쓰느라 99의 좋은 것들을 좋아할 수가 없는 거죠. 사람들은 그런 태도를 버리라고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어쨌든 현대 사회에서는 삶과 생존의 비율이 늘 공존하고 있죠. 다른 사람들처럼 삶을 즐기는 나와 생존하는 나를 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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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려 했는데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올라서 써봐요. 김밥천국의 스페셜메뉴가 있었는데 돈까스와 쫄면, 김밥을 한번에 주는 메뉴였죠. 4500원이었어요. 당시에 먹을 수 있는 최고로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는데 그걸 한 번 먹으려고 작정한 날은 다른 끼니를 굶어야 했어요.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어요. 그 스페셜메뉴는 다른 메뉴처럼 생존을 위해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시키는 게 아니라 그걸 시키고, 기다리고, 먹는 동안만큼은 알 수 없는 고양감과 작은 행복을 보장해 주는 그런, 한 끼 이상의 무언가였으니까요. 


 글을 쓰고 보니 그 스페셜메뉴가 다시 먹고 싶네요. 김밥천국이 아니라도 난립하는 비슷한 가게에서 비슷한 메뉴를 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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