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8 22:15
장문을 안 쓴지 정말 오래되었군요. 글쓰기란 정말이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만 되나 봅니다. 아니면 무언가에 분노할 때도, 다만 그 때는 글 쓰느라 다른 일을 제쳐놓게 되어서 고통받을 수도 있구요. 전에는 내부에서 즙 같은게 흘러나와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이제는 서걱서걱 희게 마른 허물을 뜯어내 부숴서 겨우 쓸 수 있는 기분이랄까요.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탈색되는건가 하는 씁쓸함을 느낍니다. 정말 낯선 거리가 되어버렸군요, 문장을 따라 걷는게.
아직 적응이 끝나지 않은 일을 합니다. 평이한 고민들을 하게 되구요. 결국 훈수 두기가 가장 쉬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보기도 하죠. 너저분한 자신에 대해 곱씹게 되기도 합니다. 일이란게 그 자체보다는 일 외의 나머지 시간을 갉아먹는다는 점에 있어서 고통스러운가 봐요. 좀 더 강하거나 부지런하다면, 가외의 시간들을 밀도 있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는데 그게 그냥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말하자면 주말 조차 온종일 자다가 월요일에 느적지근하게 나가는게 기본이지만, 퇴근 후에 카페에 가서 자기 직전까지 죽치고 무언가 하다가 들어가 바로 잘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는거죠. '나는 일을 했어! 그렇기에 무위의 시간을 보낼꺼야!' 하는 그 마음이란건 어디서 나오는걸까요? 가끔 정말 어른들(?)은 그런 것 없이 끝없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어떻게 그런게 가능한 걸까요?
자급자족이 가능해진 순간부터, 취미는 정말이지 온전한 취미가 되었습니다. 혹시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할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어졌으니까요. 그래서 가끔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리는데 그러면서 빨리 어떤 조급함이 빠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잘하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를 하는 시간 말이죠. 점수가 나온다거나, 어딘가 도달한다거나, 마감이 있다거나 하는 모든 것을 흘려내버리는 거에요. 굉장히 못 그리기 때문에 그림 자체를 만족할 수가 없지만,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으로 화도 안 내고 혼내지도 않는 상태로 즐겨보고 싶군요. 무엇을 목적으로 그려보는지 조차 모르겠지만요.
고통스러웠던 어떤 문제가 하나 해결이 되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최소 조건 같은게 있는데 저는 그게 그렇게 크지 않거든요. 한 번은, 최저 급여로 먹고만 살면서 공공 도서관 옆에 짱박혀 살며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허송세월 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나오는 일간지를 전부 읽고, 월간지도 맘에 드는걸 읽고 책도 읽겠죠. 그저 그것만 하면서 하루 먹고 하루 사는거에요. 그렇다 하더라도 별 불만은 없을 겁니다. 3교대 같은 일을 하게 되겠죠, 일에 숙달되면 머리를 쓰는건 다른 것에 해도 되는 그런 지겨운 일 말이에요. 여튼... 그러한 최소 조건 중에 지인 집합 같은게 있는데, 긴 시간을 거쳐 어떻게 잘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평생 살면서 서로 인정하며 살 최소 인원은 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니까 흔히 친구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 모임 말이죠. 저는 한 5명이면 충분한 거 같아요. (그도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연애를 바라본 적이 지금까지 없는데, 뭔가 어렴풋한게 흐릿흐릿한 그런 느낌이 최근에 있습니다. 전의 상담 이후로 다시 메말라버렸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감정이란게 완전히 없어져버리지는 않는듯 싶거든요. 아.., 아직도 불안정한 감각이 남아 있군요. 가끔 붕괴 되어버리는 자신이 못 미더워 남까지 가까운 틈바구니에 끼워넣는 민폐는 못 끼치겠다는 마음요. 여튼, 정말 늦어버렸다 싶을 때까지도 불타오르는 그런 감정은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남들은 그렇게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생기던데 말이죠, 하하. 뭐... 현재로서는 사람을 거의 많나지 않는 일상이라 빈도에 따른 확률 자체가 없는 거겠지만.
아, 그리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립니다. 한 시간이 60분인건 사기 아닌가요? 원래 100분이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가끔 개개인이 자율로 중력 조절을 할 수 있었음 좋았을텐데 싶기도 합니다. 잠깐 중력 우물에 들어가서 10일 정도 자고 와도 되고, 귀찮거나 지겨우면 한 삼사일 정도는 빨리 돌려버리고 말이죠. 중력 감압에 짓눌려 인간의 육체가 못 버티긴 하겠습니다만, 뭐 망상인데 어떤가 싶기도 하고. 그냥 요새는 다들 돈 많은 백수가 꿈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나쁘지 않네요, 장문도.
2015.06.18 22:20
2015.06.18 22:21
김전일_ 독서일기에 그런 부분이 나오지요. 꽤 부럽던데요.
2015.06.18 22:27
9급으로 시작한 친구가 이 말 듣고 한숨을 쉬었다는 거...칼퇴같은 소리 하고 있네...
2015.06.18 22:27
믿을만한 친구 다섯이면 반은 성공한 셈이네요.
2015.06.18 22:31
저는 그냥 정보 수정 하려고 피씨로 들어온 김에 주르륵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쓴 글 하나는 저장된 채지만 어쨌든 완결은 했고요. 생각의 단위라는 게 있다면 글 쓸 때 그 단위는 눈에 보이는 페이지의 크기만큼인 것 같아요. 장문 보니 반갑습니다.
일곱 살, 아니면 여덟 살이 되던 해의 연초쯤부터 오늘날까지 제 안에 고이 간직된 억울함이 하나 있습니다. 매일매일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학교에 가야 한다는 걸로 시작된 그 억울함이 아직도. 그렇다고 어디 매이지 않은 삶이 아사의 공포와 무관하기는 또 힘들죠.
친구가 몇 명이면 좋은가.
주제와 좀 빗나간 답변이 되겠습니다만, 넷 이상이 되면 묘하게 대결 구도가 짜여서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차라리 인원이 무지 많아지면 친한 그 넷이 모이기도 하는데 말이죠. 이건 그냥 모임 상황에 대한 이야기고,
역시 주제와 빗나간 답변이 되겠습니다만, 관계란 끝없이 변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셋이 아니라 사람은 바뀌어도 숫자는 셋 정도로 유지됐으면 좋겠습니다. 고정적인 다섯은, 아니 다섯이든 열이든, 불안해요. 숫자가 많아지면 조금 낫겠지만 너무 많다보면 깊이의 문제가 생길 테고요. 사람은 꼭 나쁜 쪽이 아니라도 어쨌든 변하는 데다가, 누구도 나쁘진 않은데 친구의 관심은 아들의 기말고사 성적에, 제 관심은 요새 새로 유행하는 바지에 가 있다면 대화가 너무 슬퍼집니다. 그리고, 네, 병들기도 죽기도 하더군요. 이걸 머리로는 알았는데 실감한지는 얼마 안 되었어요.
2015.06.18 22:55
김전일_ 현실은 그렇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런 이상적인 직업 없다는 것 ㅠㅜ
가끔영화_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거죠. 친구를 생각할 때 믿음을 고려 사항으로 둔 적이 없어 좀 색다른 기분이네요. 얼마나 아느냐, 는 자주 생각하지만.
문_ 사실 예전에는 이 정도 길이의 글을 장문이라고 하진 않았을텐데 말이죠 하하. 요즘에 스크롤 주의! 장문 주의! 경고를 보고 들어간 후에 읽는 글들과 트위터에 익숙해진지라 이 정도를 장문이라 칭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도착지가 보이지 않는 거닐음을 통해서는 다른 풍경이 보이네요. 보통 단문은 생각했던 것에서 끊어져버리니까요.
다들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먹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떤 자신은 늙지 않고 언제까지나 애라고 생각합니다. 잘 .. 구슬리는 수밖에 없죠.
아... 그래요, 사람은 변한다는걸 명제가 아니라 실감으로 받아들일 때 참 시큰하죠.. 그리고 사람은 죽는다는 것도, 정말 진한 글씨처럼 다가오는 경우가 생기더군요. 믿기지 않거나 믿기지만 그런 일일 줄 몰랐다거나요. 정말 희한하게도, 아니면 정말 당연하게도 사람 각각과 어떤 식의 조합이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고, 특정한 균형이 이뤄지는 모임에 익숙해졌다가 그걸 잃어버리면 상실감이 심하더군요. 셋은 참, 생각해볼수록 좋군요.
2015.06.18 23:56
잔인한 오후님, 장문의 글 오랜만이에요.
(글이 많이 편안해졌어요. O.O 그냥 술술 읽히는데요?? 전에는 온갖 고뇌로 글이 엄청 복잡했었어요. ^^)
뭔진 모르겠지만 고통스러웠던 문제가 해결되셨다니 다행이에요.
잔인한 오후님이 환한 햇살 같은 그녀를 만나시길 빌며... ^^
Copeland - You Are My Sunshine
2015.06.19 00:39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적이 있었죠. 그냥 알바해서 딱 인터넷 요금 내고, 게임비 조금이랑 먹고 살정도만 벌면서 하고 싶은 게임 실컷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죠.그런데 한가지 간과한게 인간의 욕심이더군요. 먹고 살정도만 하기로 했는데 먹고 싶은것도 많아지고 살다보니 가지고 싶은것도 많아지더라 이겁니다. 그리고 게임마저도 하고 싶은게 많아지더라 이겁니다. 나름 대충 살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인간적인 욕심에 끌려다니게 되는거죠. 인간적인 욕심에서 벗어나기는 참 힘듭니다 이건 아무리 마음의 수련을 한다해도 죽을때까지 벗어나지 못할거 같기도 하구요.
시간이 빨리 가는건 사기인게 맞습니다만 재미없을때만 느리게 가는게 시간이라서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건 곧 재미 없다는 소리라서 빨리가도 좋으니 재미있는 일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재미만 있다면 시간이 빨리가는것 쯤이야 감수 하겠습니다.
2015.06.19 01:26
underground_ 곡 잘 들었습니다. 복잡함이 사라진건 아닌데 거기까지 도달하려면 좀 더 잉여력이 필요합니다. ㅋㅋ
Neo_ 백수 생활을 꽤 오래 해봤는데, 늘 새롭고 재미있고 짜릿하더군요. 지속가능만 하다면, 그리고 누군가에게 민폐를 지속적으로 끼치지만 않는다면 영원히 그렇게 살아도 만족을 할 수 있겠더군요... (보통 이런 결론은 내질 않던데...) 저는 불만족보다는 노후와 관련된 불안감 때문에 떠나오긴 했는데, 앞으로 욕심의 비용이 증가할지 궁금하긴 합니다. 돈을 쓰는 것도 써본 사람이 쓸 수 있는지라.
빠른 시간에 대해선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사실 그렇죠. 저는 이제 즐거운건 됐고 지루해도 고통스럽지만 않으면 빠르던 느리던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에서 쓴 걸 봐도 대충 다 스킵하고 편안히 쉬고 싶다는데 능력을 사용하는군요. 하기야 무한한 시간만 있으면 모든 일이 마감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을테니. 시간이 터무니 없이 부족할 때는 재미있을 때와 마감이 많을 때인데, 전 후자인가 봅니다. 하하.. 일에 치여 사는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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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공무원 하고 칼퇴근해서 책만 읽고 싶었다던 장정일이 생각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