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25 17:03
친구가 말했다, 글쎄 뭘 더 가진다고 해도 네가 몽블랑을 사고 계속 잘 쓰면서 행복하는 것 처럼 그렇게 기분이 좋을 거 같지가 않아. 난 그게 부러웠어. 네가 아 난 돈벌면 좀 좋은 커피를 사마셔야지 하면서 그게 너의 작은 사치라고 말했을 때, 그런게 있는 네가 부러웠어.
나는 가끔 농담으로 내 이상형은 백마탄 왕자가 아니고, 벤츠를 모는 남자도 아니고 나한테 몽블랑 사주는 남자라고 말을 하곤했다. 그 말이 농담 반 진담 반이었던 건 몽블랑이 비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걸 사주는 남자라면 나를 아는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는 아빠 물건 중 몇개를 어린 우리들 한테도 주셨는 데 (더 큰 뒤에는 제일 소중히 여기셨던 카메라와 시계는 남동생이, 아빠 방에 걸려 있던 사실 그냥 평범한 그림과 편지들은 내가 가지고 있다. 여동생은 아빠가 엄마한테 사준 유일한 멋진 선물인 진주 브러치를 가지기로 했다) 나는 엄마한테 아빠의 만년필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글을 잘 쓰셨다. 어렸을 때 유아 일기라든가 우리에게 (아니 사실 첫째인 나에게) 쓰신 편지들은 지금 읽어봐도 참 좋다. 아빠의 필채는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뭔가 읽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아빠의 만년필이 꼭 가지고 싶었다. 몽블랑이었다. 소중히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겨울 그만 떨어졌고,,, 부러졌다. 그 순간 내 심장도 부러지는 줄 알았다. 그 뒤로 언젠가 아빠가 가진 그 몽블랑을 다시 사야 겠다고 늘 꿈꾸워 왔다.
몽블랑은 없었지만 만년필은 많았다. 내가 워낙 만년필로 쓰는 걸 좋아하는 걸 아니까 누가 여행다녀오면 만년필을 사주거나 내가 사거나. 몽블랑이 얼마나 비싼지 알게 된 후, 사실 살려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지만, 펜하나에 그렇게 돈을 쓰기에는 어른으로 책임져야 하는 다른 일들이 훨씬 많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의 몽블랑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아서, 펜에는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는 소피아, 사실 나를 만나기 전에는 몽블랑이란 펜 메이커가 있다는 것도 몰랐던 이 친구 조차 출장가면서 들리는 공항에서 야 저기 몽블랑 있다 라고 말하고 했다.
지난 여름 벤쿠버에 출장갔을 때 호텔 바로 옆에 몽블랑 지점이 있었다. 소피아를 통해 나의 몽블랑 바라보기를 들었던 안드레아스가 저거 몽블랑 아니야? 라고 말했다. 몽블랑이네 했더니 도대체 가격이 얼마냐고 했다, (알고 있지?) 얼마라고 했더니 와우, 펜하나에? 란다. 뭐 가방하나에 몇백도 하는데 라고 말하니까 그래 맞아 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커피 공룡, 도대체 몇년동안 그 펜을 가지고 싶어했지? 내가 너라면 지금 사겠다. 오랫동안 가지고 싶어했던 거고 네 월급도 괜찮고, 또 살것도 아니고 (아닌가? 또 살거야??), 라면서 소비를 권장했다.
일을 마치고 어느 날 혼자 실크 원피스를 입고 현대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서 호텔 가기전 몽블랑 가게를 지나가다, 발을 멈추고 문을 열었다. 장갑을 끼고 일하는 사람들. 한 중국계 여성이 내가 가졌던 아버지의 만년필을 설명하자 아 그런 예전 모델이군요. 다행이도 예전 클래식 모델들이 다시 만들어졌어요. 이건가요? 라면서 하나 보여주었다.
사실 내가 아는 몽블랑 중에 두번째로 싸다. 농담으로 아빠가 비싼 몽블랑을 소유하시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아빠것과 아주 같지는 않다. 예전에 모델은 펌프질을 해서 잉크를 넣었는데 (늘 덕분에 손이 엉망이었다) 요즘것은 나사처럼 돌리기만 하면 된다. 파트론으로 바꿀 수도 있고. 손이 깨끗하다.
몽블랑을 사고 나서 혹시라도 이 만족감이 사라질까, 혹은 다른 몽블랑을 소유하고 싶을 까 걱정했는데 지금도 매일 매일 쓸 때 마다, 종이위에 스케이팅 하는 것처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팬 감촉에 기분좋고, 다른 무엇을 더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나면 된다. 내가 가지고 싶은 건 collection 이 아니라 의미이다. 나와 아빠와 추억을 이어주는 물건.
동료들이 그렇게 비싼 만년필을 어디다 쓰냐고 하는데, (그거 뭐 숨겨다니는 거 아니야?) 거기다 농담으로 쇼핑리스트 쓴다고 했는데 사실 매일매일 어디를 가던 가지고 다닌다. 일기도 쓰고 편지도 쓰고 미팅 있을 때도 가져가고. 집에서 일기를 쓰고 있으면 선물이가 엄마 선물이도 라고 말한다. 아직은 안돼 라고 말하니까 착한 선물이는 응 이라고 대답하는데, 아마 아이도 크게 되면 저 펜으로 엄마가 내 유아 일기를 다 쓰셨네 라면서 가지고 싶어하지 않을까? 펜하나에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연결되어 있다.
2015.08.25 17:12
2015.08.25 20:52
감사합니다. :)
2015.08.25 17:14
저는 몽블랑 하면 항상 이거부터 생각나요.
2015.08.25 20:53
이거 뭔가요? 맛있어 보이네요
2015.08.26 05:12
몽블랑입니다. 맛있습니다.
2015.08.25 17:21
2015.08.25 20:53
저희 아빠 글이 훨씬 더 좋아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쓰셨어요
2015.08.25 18:06
2015.08.25 20:54
손으로 쓰다보면 아 글을 쓰는 게 이렇게 손이 아픈 거였구나 할떄가 있어요. 천천히 생각이 글자로 쓰여지는 게 좋아요
2015.08.25 20:35
저도 소중한 사람에게 몽블랑을 사 준 기억이 있네요.
늘 지니고 다닐게.라면 가슴팍에 꽂았던 이미지가 생각나서 가슴이 싸르르해지네요.
그 사람 아직 그 몽블랑을 가지고 다닐지..ㅎㅎ
2015.08.25 20:54
아니 저의 이상형이셨군요 하하
2015.08.25 22:28
2015.08.25 23:38
전 정말 볼펜에는 별 관심 없어요. 볼펜은 왠지 제 것이라는 느낌이 안들어요. 만년필은 저의 일부분 같은 느낌 그래서 좋아요.
몽블랑 사세요 (ㅎㅎㅎ, 친구처럼 소비를 종용하고 있습니다.)
2015.08.25 22:34
2015.08.25 23:38
감사합니다. 선물이는 정말 선물이에요 하하
2015.08.25 22:37
필체가 아름다운 사람은 그림만큼 사람을 매료시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악필이라도 읽을 재미가 있는 편지를 써주는 사람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추억이네요.
2015.08.25 23:39
네 정말 그래요 그래서 갈수록 제 글씨체가 나빠지는 게 불만이에요
2015.08.25 22:55
와.. 좋다
왠지 카페 공룡님께 고맙네요.
2015.08.25 23:39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8.25 23:16
행복한거죠 다른 것 보다 더 많이 행복의 의미를 주는 것.
2015.08.25 23:40
네 행복은 작게 크게 순간 순간에 있네요
2015.08.25 23:51
2015.08.26 08:36
내 윗대에서 내 생을 관통해 후대까지 이어지는 나와 함께하는 그런 물건 하나가 있다는 건...정말 따뜻한 일인거 같습니다.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2015.08.26 09:34
정말 공감 가고 마음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커피공룡님 주변 분들이 그 가치를 알아줬다는 것도 감동적이구요.
2015.08.26 10:22
2015.08.26 10:54
와,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8.26 14:02
눈물이 납니다....
참 좋아서 눈물이
날 뻔 했어요.
저두 갑자기 일기 쓰고 싶어지네요.
행복해 하셔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