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인 소유

2015.12.29 13:50

오늘만익명 조회 수:1867

마흔이 되었을 때 회사에서 해 준 특별 건강검진때 발견한 ***을 지난 3년간 추적검사 했는데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전문의의 조언에 따라서 새해에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산정특례 해당되는 희귀질환인데 본인은 자각증상이 전혀 없는 이상한 경우라서 휴가를 위해 업무인수인계를 하면서도 뭔가 좀 묘한 기분이네요.

원래 상당히 건강하며 상대적으로 나이도 젊기 때문에 수술을 해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건 물론이고, 잘만 되면 아무 문제없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그래도 막상 수술한다고 생각하니 맘이 심란하긴 합니다. 물론 처음 발견하고 패닉에 빠져서 상담까지 받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인생이 생각한 것보다 짧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은 확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세상을 뜨게 된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까 했을 때, 사후세계는 별 관심없고 제 소유물들은 어떻게 될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을 줄여 이사할 준비도 하고 있기 때문에 물건정리 중이어서 제 소유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금융자산 및 부동산-당연히 부모님 앞으로 갑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분들이라 아마 궁극적으로는 형제자매에게 가야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부모님께 맡기고 싶군요. 직장생활 15년하면서 모은 돈이 대단한 금액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물질적인 재산 1호는 역시 돈이네요.

  2. 옷가지-방정리 하다보니 사계절 입는 옷 참 많습니다. 하지만 다 스파 브랜드라 누구 줄만한 옷은 아니고요. 신발이나 가방도 질은 좋지만 명품도 아닌데 아마 친지들에게 일부 나눠주고 어디 기부 해야 할 것 같군요.

  3. 책과 DVD, CD-제 진짜 재산은 이 세 가지이군요. 부모님 집에 살다보니 제 방 가구도 별로 내 것 같지 않은데 이것들은 정말 제가 모은 물건이자 가장 소중한 기념품들이기도 합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조카들에게 물려주면 이모를 기억해 줄까요. 원서로 모은 어쉴라 르귄 책들이나 한글자막도 없는 크라이테리언 DVD들을 얘들이 챙겨 볼지는 모르겠고요

  4. 회사에 있는 직업관련 책과 자료들-이건 직장동료들이 알아서 나누면 되겠습니다. 일가친척들에게는 별 도움 안될거구요.

  5. 이러고 나니 몇몇 잡동사니 외에 남는 건 어린 시절부터 모은 사진 앨범 몇 개와 학창시절 습작들, 개인편지와 카드 한묶음, 그리고 9*년부터 모은 영화리플렛이 전부군요. 이런 물건이야 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지만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겠죠.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뜻이 별로 없긴 했지만 이렇게 남는 물건이 없다고 생각하니 좀 그렇군요.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에이미 유언장만큼 세세하게 나누고 싶다가도(스위스제 오펜바흐 뱃노래 오르골은 오페라 좋아하는 큰조카에게;;;) 세상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심드렁하기도 하고요. 이러니 인생의 위기를 겪은 사람이 어렵게 모은 전재산을 기부를 하게 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된달까요.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아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할텐데 수술날짜가 다가올수록 싱숭생숭합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