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구자

2023.08.16 13:02

돌도끼 조회 수:214

1985년 게임아츠에서 PC-8801 MkII SR(이름이 너무 길어서... 걍 SR이라고 합니다)용으로 발표한 횡스크롤 런앤건 게임. 게임아츠의 데뷰작입니다.

일본 8비트 컴퓨터하면 NEC의 PC-88이 짱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초기에만 해도 샤프나 후지츠쪽이 우세였고 NEC의 88시리즈는 성능에서도 시장에서도 밀리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 NEC가 마음먹고 다른 컴퓨터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그래픽/사운드 보강을 해서 내놓은게 SR인데,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킬러 소프트가 하나쯤 나와주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란게 역사에서 여러번 증명되었더랬죠. PC-88SR을 일본 시장의 지배자로 만들어준 킬러 소프트가 바로 이 '테구자'였다고 합니다.

이름이 괴상한데... 개발자들의 전작 및 좋아했던 게임 세 개에서 한자씩 따와서 적당히 변형시킨거라고 해요. 그리고는 또 있어보이려고, 영어 표기는 'THEXDER'라고 했습니다. 'Thexder'에 '테구자'.... 하나도 안맞잖아요!
그치만 게임 매뉴얼에 당당하게도 '미래에는 발음이 바뀌어서 요렇게 잃어용'하고 적어놨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게임의 제목은 사람들마다 제각각으로 읽습니다. 국내에서도 이런저런 표기들이 있는 가운데 '덱스더'가 아마도 대세였던듯...
저도 옛날에는 덱스더라고 했었는데 발음하기도 어렵고 해서... 지금은 걍 테구자라고 합니다ㅎㅎ

(근데 해외판의 음성지원 버전을 참고하자면 아마도 만든 사람들이 의도한 발음은 'Texer'였던 듯...)

나왔던 당시에는 상당히 충격적인 게임이었습니다. 컴퓨터 게임인 주제에 오락실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대형 캐릭터가 나와 뛰어댕기면서 시원하게 쏴제꼈거든요. 화면 스크롤도 당시의 컴퓨터 게임에서는 보기 드물게 시원시원하고 빠릅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변신로봇입니다. 그때가 '마크로스' 'Z 건담' 등이 나와 일본에 한창 변신로봇 붐이었던 때죠.
그러니 안넘어갈 수가 있나요ㅎㅎ 이 게임 하려고 사람들이 SR을 샀다고 해요.
하 지 만, 이 게임은 사실은 SR의 성능을 제대로 활용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고속 스크롤이 되는 것처럼 보이려고 눈속임을 동원했다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후에 SR 말고도 온갖 다른 컴터용으로 이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SR 이전의 88용 버전까지 등장해서... 이거 하려고 SR 샀던 사람들 피눈물 삼키게 만들었다는 전설이...

기본적으로는 로봇 형태로 뛰어다니다가 뛰어서는 지나갈 수 없는 곳이 나오면 비행기 모양으로 변신해야 합니다. 로봇일 때는 적이 자동조준 되지만 비행기 형태일 때는 총이 앞으로 밖에 안나가고 방향 잡기가 힘들어 공격하기 난감한 상황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드를 작동해서 잠깐동안 거의 무적 상태가 될 수 있고, 이 실드가 실은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합니다.
잔기는 없고, 움직이는 동안 꾸준히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고, 실드를 작동하면 에너지가 왕창 깎이고, 적을 파괴해서 에너지를 흡수해 보급해야 하는데 에너지를 주는 적은 얼마 안나오고, 공격하는데도 에너지가 소모되니까... 상당히 신경써서 에너지 관리를 해야합니다.

제작진이 낚시를 한게요... 처음 한두판은 아주 쉽거든요. 다른 게임들이 대부분 콩알탄을 쐈던 것과 달리 시원하게 내뻗는 레이저가 자동 조준까지 되니 신나게 쏴댈수 있는데다 첫판에 나오는 적들은 허약하기 그지없어서 제대로 조준되면 한방에 수십대(다소 과장된 표현)가 막 터져나갑니다. 쾌감이 장난 아니고 진짜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싶은데... 두어판 지나고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면 적들의 내구도가 인간적으로 진짜 심하다 싶을 정도로 급격히 올라가는데다 하나도 버거운 애들이 막 떼로 몰려나옵니다. 에너지는 늘 모자라고 거기다 길은 또 미로.... 이거 뭐 스트레스가 풀리기는 고사하고 죽지않으려고 기를 써야하는...

속았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때, 둘 중 하나 선택해야하죠. 포기하거나 오기로 끝까지 가거나... 포기한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가겠다고 붙잡고 한 사람이 더 많았으니 히트한 거겠죠ㅎㅎ

그시절 게임답게 끝은 없습니다. 끝판왕 비슷한 존재가 있긴 한데, 그거 깼다고 축하 메세지 하나 안나오고, 그냥 그대로 계속 진행합니다. 걔가 끝판왕이 맞는지도 불확실해요. 모든 스테이지를 다 돌았을 때 첫번째 판으로 다시 가는 것도 아니라서 무한 루프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계속하게 됩니다. 무한 루프 게임이 당연하던 시절이긴 해도 다른 게임들은 일단 한바퀴 다 돌았다는걸 확실하게 알수는 있었거든요.

결국 플레이어의 운명은 한가지 뿐이예요. 지쳐서 죽는거... 참 무상한 게임이죠.ㅎㅎ

88에서 히트하고 이런저런 컴퓨터로 이식된 후에는 MSX와 패미컴용으로도 나옵니다. 패미컴 버전을 만든게 무려 스퀘어! 근데 하드웨어 한계 때문인지 테구자의 상징인 쭉쭉 뻗는 레이저를 다른 게임들과 같은 콩알탄으로 바꾸는 바람에 게임 감각이 달라져버렸고, 그래서 오랫동안 쿠소게 취급을 당해 스퀘어의 흑역사가 되었습니다.
MSX 버전은 컴파일!에서 이식했습니다. 이건 국내에서도 히트했죠. 원본인 88 보다 이쪽이 더 명작이라고 봐요. 하드웨어 스펙이 88보다 많이 딸리는 MSX이지만 그게 그리 거슬리지 않고, 음악은 MSX의 PSG 사운드가 더 경쾌합니다.
단점은 롬팩의 용량 한계 때문에 스테이지가 많이 잘렸다는 거지만, 원판의 스테이지들은 비슷비슷한게 반복되는게 많았던 터라 그리 아쉽지도 않습니다.


일본 컴퓨터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는 이 게임은 미국의 컴퓨터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시장 조사차 일본에 왔던 시에라의 켄 윌리엄스 사장님이 테구자에 꽃혀서는 열겜하다가 이거면 미국에서도 통하겠다 싶어 미국 컴퓨터로 이식합니다. 당시 미제 게임이 일본에 이식되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일본 게임이 태평양 건너가는 일은 많지 않았죠. 그리고 미국에서도 대박납니다. 시에라 게임 전체를 포함해서도 역대급 대박이었다고 해요. 미국 컴퓨터 시장에서도 이 게임은 충격적인 물건이었으니까요.

글구... 이 게임을 시작으로 게임아츠의 액션게임들 미국 이식판을 계속 내는 동안 시에라는 자숙하게 됩니다. 80년대 중반까지 시에라의 미술/음악 수준이 썩 높은 편은 아니었잖아요. 일본 게임들과 너무 비교되는 자기네들 게임의 겉모습에 자괴감을 느낀 시에라는 그때부터 A/V 방면에 집착하게 되었고, 미디를 비롯한 각종 보조장비를 동원해 미국 게임의 음악 수준을 화끈하게 끌어올립니다.(미술 수준도 끌어올리는 데는 거기서 몇년 더 걸려야했지만요.)

시에라 이식판은 애플IIGS용이 먼저 나왔는데 그래픽 사운드(GS)쪽으로는 88과는 비교가 안되는 고급 기종이었으니 초월이식을 합니다. 그걸로 끝. 사실 이 시에라라는 회사, 다른기종으로 '이식'하는 거 진짜 못합니다. 그래서 테구자의 GS판은 시에라가 직접 한건 아닐거라고 사람들이 수근거려요. 그외 기타 기종들은 (88은 비교도 안되는 고성능 기종에 이식하더라도) 잘해야 88과 같은 수준이거나 그보다 못합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후진게 IBM PC 이식판입니다. 근데 IBM PC 호환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많은 옵션이 존재하니까... 통상버전은 EGA로 88과 거의 비슷한(약간의 열화가 있음) 그래픽을 보여주지만 사운드가 망.
탠디모드에서는 해상도가 낮아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탠디가 MSX와 비슷한 성능의 PSG를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IBM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소리를 들려줍니다. 사운드도 비슷하고 그래픽도 저해상도가 되면서 탠디 버전은 MSX 버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어찌되었건 일반 모드보다는 나으니 이게임을 도스박스로 한다면 탠디로 세팅을 맞춰놓고 하길 권장합니다.
아님 뭐 해커들이 이런저런 모드를 짬뽕해서 도스박스 디폴트 상태에서 바로 실행시켜주는 패치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시에라 버전의 매뉴얼은 게임 진행 팁만 좀 실려있고 게임 배경 스토리는 일체 안나와있습니다.(걍 외계에서 날아온 디게 큰 돌덩이를 막으려 용쓴다는 단순한 건데 그거 몇자 적는게 뭐 그리 수고스런 일이라고...) 그래서 양덕들 중엔 아직도 이 게임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시에라로서도 뜻깊은 게임이었던지라 95년에 시에라 단독으로 윈도우 95용 리메이크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치만 괴상한 양키센스가 발휘되어서 이게 어디가 Thexder냐? 싶은 게임이었다는....

테구자가 'Z 건담'의 영향을 받은 게임이었다면, 반다이에서 낸 'Z 건담' 컴퓨터 게임은 테구자의 클론이었습니다. 근데 겉모습만 베꼈을 뿐, 쿠소게의 명가 반다이 게임답게......(그나마 MSX판 '건담' 보다는 나았다는 걸로 위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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