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긴 글이 될 것 같은데요, 글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먼저 한 문장으로 적고 시작합니다. “서로를 향한 평가적 태도를 버리고 중성적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훈련이, 한국인들에게 절실하다.”

한국인 오지랖 심한 거에 대해서는 뭐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명절때마다 취업했니, 결혼했니, 안 했습니다 하면 왜 안 하니, 언제 하니, 겨우 취업하면 어느 회사니, 뭐 하는데니, 연봉은 괜찮니, 결혼하면 애는 안 낳니, 일은 계속 할 거니, 애 낳으면 공부는 잘 하니… 이건 폭력입니다. 명절 전후로 이 오지랖 악습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관련해 정신과 진료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일시적으로 폭증하는것만 봐도, 이것이 서로에 대한 ‘관심’이 아닌 괴상한 악습이자 엄청난 심리적 폭력임을 알 수 있죠. 뭐 먼저 떠오른 사례가 명절이어서 명절을 언급했습니다만, 굳이 설이나 추석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일상 속에서도 오지랖은 쏟아집니다. 머리숱이 있네 없네 피부에 주근깨가 있네 없네 쟤는 옷을 어떻게 입네 쟤가 이혼을 했네 마네…

 

도대체 왜 이런 문화가 생겼는지 분석하려면 사회과학적 접근이 필요하겠습니다만 그건 제가 자신있게 적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므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유가 뭐건, 이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한국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그냥 내버려 두는’방법 자체를 잘 몰라요.

 

네, 맞습니다. 방법을 모릅니다. 살찐 여자가 비키니를 입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회사에 게이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되죠?라는 질문은 실제로 제가 흔히 받는 질문입니다. 역시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나이 많은 직장 여자 상사가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하고 다니는데 어떻게 생각해야할 지 모르겠다고요? 아무 생각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이걸 모르고, 그러니까 ‘그래도 된다는 거’를 모르고 거의 반사적으로 이것은 어떻고 저것은 어떻다고 쉴 새없이 점수를 매기고 다니는 분들이 계세요. 아니, 계시는 게 아니라 한국 사람 거의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인 대부분이 오지랖쟁이들이다’와 더불어, ‘오지랖을 부리는’이들 대부분이 ‘오지랖’이라고 하는 폭력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기보다 ‘오지랖을 안 부려도 된다’는 사실과 ‘그게 폭력’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몰라서’그러는 거다, 라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그리고 제 이 주장은 이것이 ‘교육’을 통해 개선될 수 있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확장되고요.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뱃살을 드러내고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은 여자를 보면 어떤 ‘감정’이 드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냐고요. 그럼 저는 이렇게 반문하죠. ‘평범한 몸매의 여성이 비키니를 입어도 과연 그냥 둘까?’ 정답은 단호히 ‘아니’입니다. 어떻게든, 뭐든 찾아내 ‘비평’을 할 것이 분명해요. 그리고 남이 뭘 입었건 굳이 들여다보며 자신의 소감을 이야기하는 게 어떻게 자연스런 사고과정이 됩니까? 물론 한 눈에 확 눈쌀이 찌푸려지거나 한 눈에 ‘와,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곧장 드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거의 건건이 그렇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사고방식의 작동 체계 중 일부가 건강하지 못한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것과 그것을 입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완벽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고요.

 

더 심각한 건, 오지랖을 부리더라도 정당한 평가의 기준을 들이대면 그나마 나은데 평가 기준 자체도 이상하더란 겁니다. 최근 인상깊게 읽었던 어느 피부과 의사의 저술을 보니, 백인들은 주근깨와 기미가 있는 인구의 비율도 많고 그 드러나는 정도도 한국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으나 그것때문에 시술을 받는 인구는 한국보다 현저히 낮다더군요. 다른 경로를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미용 목적으로 피부과를 찾는 이들 중 상당수가 아무런 시술이나 복약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라고요. 스스로를 비만이라 여기는 정상 체중의 한국 사람들이 상당수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요. 그리고 의학적 기준으로 ‘정상’뭐 이런 걸 떠나 ‘그냥 보기에 좋은가’여부로만 따져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충분히 예쁘고 피부에도 별 문제 없는 사람들이 ‘오지랖 폭력’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거울을 보는 광경은 너무나 흔해요. 이건 ‘미의 다양성의 존중’같은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이 ‘성형 대국’이 된 것이, 과연 한국 사람들의 외모가 박색이라 생겨난 결과일까요? 아무리 성형을 해도 어떻게든 당신의 자존을 갉아먹는 사회에서 그 어느 누가 ‘예쁠’수 있을까요. 그 누가 ‘잘 생길 수’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서로를 향해 가혹한 시선을 주고받는 동안 ‘진짜로 필요한 관심’들은 우선순위의 뒤로 밀리게 됩니다. 얼마전 자신의 학생을 감금해 무급으로 일을 시키고 심지어 1억원이 넘는 돈을 변호사까지 세워 공증한 뒤 돈을 벌어오도록 종용하고 유독가스로 호흡하도록 만들고 자신의 인분까지 먹인, 강남대학교 장호현 교수와 정에스더 등 그 일당의 일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죠. 그 학생을 구한 건, 해당 피해자의 피부 상태와 부상 정도, 사용하는 단어 등에 관심을 가지고 학대 사실을 확신, 도주를 적극적으로 도운 그의 학과 동기의 공이 컸다고 전해집니다. 만일 그런 의인이 ‘다리에 셀룰라이트 있는 여자가 짧은 치마 입은 거’에 대해 관심 많은 사람들의 절반이라도 있었다면, 그 학대 가해가 2년이나 지속되고 인분을 강제로 먹는 일이 서른번까지 지속되진 않았을겁니다. 아동학대 사건들도 마찬가지에요. 학대 아동들은 절대로, ‘우리 엄마가 날 바늘로 찔렀어요’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요. 이웃에 의해 발굴돼야 합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옆집 아이의 멍자국이나 의류 등의 위생상태’에요. ‘저 집 엄마 아빠는 왜 남자애한테 빨간 옷을 입혀 다니나’가 아니고요.

 

그 어느 나라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신경쓰면서, 그 ‘서로를 보는 눈’이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김연아 보는 심사위원들 눈’인 것이 이 나라 사람들입니다. 지나치게 가혹한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것은 ‘현실 직시’가 아닌 그냥 ‘나 자신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에 불과하며, 이 ‘오지랖’이 ‘폭력’이란 사실과, 남이 뭘 입건 뭘 먹건 몇 평 집에서 자건 ‘평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속히 모두가 깨달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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