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도 우울증을 운동이니 심리치료니 명상이니 종교 등으로 완전히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요. 우울증과 관련된 제 모든 관심사는 이런 쪽에 집중되어 있기도 하고요. 제가 얼마간 치료받은 병원 역시, 인지행동치료, 심층심리치료, 명상(MBSR), 비폭력대화프로그램 등 각종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풍성한 곳이었어요. 저는 MBSR, 즉 인지치료와 결합된 명상 프로그램을 이수할 목적으로 그 병원을 찾았고요.

 

하지만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저는 항우울제를 먹어야 했어요. 병원을 찾은 그 날도 제 상태는 최악이었고, 우울증 환자 전형적인 '구부정한 등, 움츠러든 몸, 찌푸린 혹은 무감각한 인상, 내리깐 시선, 관리 안 된 외모 (우울증이 심해지면 머리 손질 의상 체크 화장 따위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세수, 목욕 등도 하기 힘들 때가 많아요.)' 상태였어요. 쓰다보니 우울증 환자들이 밖에 나가기 힘들어하는 것도 백번 이해가 되어요. 저런 상태로 어디를 나가고 싶겠어요. 설상가상으로 폭식증까지 겹쳐서 살까지 왕창 쪘다면 그것은 바로 히키코모리로 가는 지름길. 하여튼 제 꼴을 본 의사는 당연히 항우울제를 처방했고,  저는 군말 없이 약을 받아서,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먹었죠. 명상을 배우러 간 병원이었지만, 이미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각오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병을 치료하겠다는 결심을 진심으로 한 상태였기 때문이겠죠. 정말 약 먹는 걸 빼먹은 적이 없어요. 우울증 부작용에 비실거리며 쓰러져 자다가도 의사선생님이 약을 먹으라는 시간이 되면 꾸물꾸물 일어나서 칼같이 약을 먹었죠. 제가 매일 정/신/과/약을 먹는 꼴을 보신 부모님이 우울해하신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건 덤이었어요.

 

처음 처방받은 약은 프로작이었어요. SSRI계열 항우울제 중 가장 유명한 약이죠. 두통약이 여러 종류가 있듯, 항우울제도 여러 계열이 있어요.(TCA, MAOI, SSRI, SNRI, NaSSA 기타 등등.) 나중에 나온 종류일수록 효과도 좋고 부작용이 덜한 편이지만, 어떤 환자들에게는 과거에 쓰였던 케케묵은 약이 효과를 발휘하기도 해서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럽죠. 원래 최초의 항우울제는 항우울제로 만들어진게 아니래요. 몸의 다른 부위를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약인데, 환자들에게 투여했더니 환자들 기분이 현저히 개선된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항우울제로 쓰이기 시작했대요. 뭔가 비아그라 탄생스토리 같죠? 프로작이 유명세를 탄 후 보통 항우울제가 세로토닌의 뇌내 수치를 풍성하게 만든다 정도로 알려져있지만, 어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수치를 오히려 낮추기도 하고, 타켓으로 삼는 뇌내호르몬도 다양해서 실상 이 약들이 뇌에서 어떤 작용을 하여 우울증상을 완화, 차단하는지 정확하고 세밀한 메커니즘은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피터 D.크레이머 박사님 책에 보면, 항우울제들이 '항'우울 효과를 보이는 궁국적인 효과는 아마 '신경재생촉진'인 것 같다네요. 세로토닌의 수치를 올려서든, 혹은 줄여서든, 또는 다른 뇌내 호르몬을 통해서든, 결국 항우울 효과를 보이는 다양한 약들은 뇌세포들이 과도한 스트레스에 괴사되는 것을 방어하고, 새로운 신경재생을 촉진시키거나 그것을 돕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는거죠. 그러니까 둘러 둘러 말하면 항우울제는 '단점이 아주 많은' 신경재생촉진제인 것이죠.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항우울제를 먹는 것이 훨씬 편해졌어요. 항우울제를 먹으면 쪼그라죽어가던 뇌세포가 다시 살아나고, 말라붙어가던 뇌세포의 가지들이 다시 피어나고, 해마나 전전두엽에서 새로 생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기 뉴런들이 좀 더 편하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렇게 극적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상상을 하니 약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들더군요. '우울증을 방지하는 약이다.'에서, (부작용도 많고 단점도 많고 의도했던 바도 아니지만) '신경재생을 촉진하는 약이다.' 쪽이 훨씬 긍정적이지 않나요?

 

이런 항우울제는 먹은 즉시 효과가 나지는 않아요. 보통 2~4주 정도 후에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죠. 아마 새로운 뉴런이 생겨서 신경계에 통합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략 그정도가 아닐까 싶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죠. 그런데 항우울제에 동반되는 부작용들은 약을 먹는 직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항우울제를 먹다가 쉽게 포기한다고 하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제 경우는 약을 먹는 그 날 부터 항우울제의 효과를 실감하기 시작했다는거에요. 불안증세가 완화되고 마음이 안정되더군요.  처음에는 플라시보효과도 의심했지만, 저의 면밀한 관찰과 의사선생님의 판단 결과 약의 효과가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좋은 징조였어요. 덕분에 우울증 약에 대한 거부감이 더 줄어들었으니까요. 또 항우울 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되기에, 기쁘기도 했어요. 보통 항우울제를 먹는다고 해서 모두 다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래요. 누군가는 반 정도만 항우울 효과를 경험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60~70%가 효과를 본다고 하는데, 하여튼 핵심은 '어떤 이들은 항우울제에 반응하지 않는다'가 되죠. 그런데 저는 항우울제가 어떤 방향으로든 효과가 있더라고요.

 

하지만 부작용이 심했어요.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위가 저리고 계속 체한 듯 꽉 막혀있고, 그 덕에 피곤해서 일상생활이 힘들고, 근육에 미세 경련이 생기고 안구가 떨리고(-_-). 하여튼 몸 상태가 이상했어요. 이 상태로 평생을 지내라고 한다면 견디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약을 먹겠다고 생각했고, 기왕이면 유명한(-_-) 프로작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군요. 결국 이 주 정도 복용 후 약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다음에 처방받은 약 이름은 까먹었어요. 안 유명해서 외우지도 않았으니까. SSRI 계열의 약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한데.  하여튼 밤에 복용하도록 되어 있고, 긴장완화와 수면유도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요. 수면유도 효과는 거의 없는 편이었지만 (전 수면제를 먹어도 3~4시간씩 깨어있기도 하니까요.) 프로작보다는 부작용도 덜 해서 계속 복용했고, 결과적으로 제 우울증상은 빠르게 호전이 되었습니다. 제게 맞는 약이었던 셈이죠.

우울증 수기 중 국내에 번역 된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인 <한낮의 우울>에 보면, 중증우울증환자인 저자가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이 구구절절 서술되어 있어요. 우선 알아둬야 할 것. 의사는 우울증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투여할 때 어떤 약이 효과를 보일지, 또 최소한의 부작용과 최대한의 효과를 보이는 약이 어떤 약일지, 미리 알지 못한다는거에요. 결국 항우울제가 환자들의 뇌에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완벽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고, 우울증의 근본 원인 역시 아직 밝혀진 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 정신과 선생님 중 한 분은 '뇌에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약을 계속 먹고 싶냐??'며 심리치료에 잘 따라가지 않던 저를 질타하셨더랬죠. 빨리 심리치료 받고 치유되어서 약 끊고 싶지 않냐고. 하여튼 상황이 이러한지라 특정 약이 특정 우울증 환자에게 적합한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환자가 직접 먹어보고 의사와 함께 부작용 여부와 효과 여부를 살펴보는 것 뿐이에요. 또 특정 약을 찾아낸 후에도 용량 조절을 잘 해야 해요. 한 알을 다 먹으면 지나치게 무기력해진다면 반알만 먹고, 이게 효과가 약하다 싶다면 2/3알로 늘리고 하는 식으로. 이 과정이 몇 주는 족히 걸릴 것은 뻔한 일이에요. 당연히 이 기간 동안 환자의 굳은 투약 의지(-_-)와 자기 관찰, 환자가 약을 먹도록 계속 유도하면서 환자 반응을 세심하게 살피고 약의 종류와 용량을 조절하는 의사의 경험과 기술이 필요하지요.


다행히 저는 두 번째 약이 잘 맞았고, 효과도 났지요. 아니 사실 부작용은, 프로작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했어요. 당시에는 약의 부작용이 심하면 그 불편함들을 의사에게 보고하고 상의해서 다른 약으로 바꾸거나 약의 용량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몰랐기 때문에 (나중에 알았어요. 약사를 하시다가 정신과의사가 되신 분을 만나서. 약 처방 기술이 탁월!)  군소리 없이 주는 대로 다 먹었던지라, 꽤 심한 부작용을 그대로 달고 살았어요. 불안완화 효과가 지나치게 과도해서 하루 종일 잠을 잤을 잤어요. 또 위가 체한 듯 딱딱하게 굳는 증세는 여전했고 (결국 항우울제 몇 달 먹고 난 후 위가 현저하게 약해짐. 나중에 위염 걸릴지도.) 뭐만 먹고 나면 체한 듯 속이 막혀서 피곤하고 졸려서, 뭘 먹는 것이 괴롭고 귀찮아서 자꾸 끼니를 거르다보니 빼짝빼짝 마르다못해 탈진해서, 교보 놀러가던 광화문 한 복판에서 쓰러질 뻔도 했지요. 그래도 약을 끊으라고 할 때까지 안 빼먹고 꼬박꼬박 잘 먹었어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약을 꾸준히 먹은 이유 중 하나는 살이 쪽쪽 잘 빠져서인 것 같기도 해요. 약을 복용할 때는 우울증이 생긴 후 지속적으로 시달려온 탄수화물 폭식증, 스트레스성 과식증상도 자취를 감추었거든요. 이런 병리적 성향이 아니라면, 전 원래 음식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에요. 간식으로 칼로리를 채우고 밥은 제대로 안 먹는 평범한(??) 한국 젊은이였는데, 탄수화물과 스트레스성 과식 용 간식을 먹지 않게 되니, 살이 쪽쪽 잘 빠질 수밖에. 거기다가 약물 부작용으로 위가 아파서 먹는게 귀찮아 밥도 거의 안 먹었으니. 뭐, 쓰러질 뻔한 사건 이후로는 건강을 위해 기본적인 끼니는 억지로 챙겨 먹었고, 우울증과 뇌의 건강과 영양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접한 이후에는 오메가-3부터 각종 좋은 음식들을 신경써서 챙겨먹기 시작했죠.

 

하여튼 몇 달 후, (전 장기복용은 하지 않은 케이스에요. 인지치료와 명상 후에 상태가 좋아지니 약을 끊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심층심리치료는 계속 받기로 했고요. 주변에 보면 20년 넘게 항우울제를 드신 분도 계시고 한 것을 보면, 제 경우도 좀 특이하죠. 아니면 그 병원이 특이하거나.) 의사선생님이 약을 서서히 줄이다가 이제 그만 먹어도 될 것 같다고 하셨을 때, 제가 오히려 약을 끊는 것이 무서워서 계속 먹으면 안 되냐고 간청을 했죠. 약을 끊고 나서도 금단증세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특히 부작용이 없어져서 아주 행복했어요. 우울증 삽화가 지나간 후라 기분이나 인지 능력은 정상 언저리로 돌아와있었고요. 항우울제는 중독증세-사후 금단증세가 없어요. 제가 몸으로 느꼈어요. 혹여 의존증 비슷한 것이 있다면,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다시 기분이 우울해지고 스트레스에 또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불안'이 있을 수는 있겠죠. 그것 이외에는 없었어요.

 
항우울제 효과는 단계적으로 온대요. 보통 초기에 수면, 식욕 관련된 이상이 호전되기 시작하고, 2~3주 정도 되면 활력이 생기고, 4주 이상으로 넘어가면 우울증의 다양한 증세들이 서서히 나아지는 식이라고해요. 다만 제 경우는 항우울제 투여와 인지치료, 그리고 명상과 영성서적 탐독이 동시에 이루어졌고, 명상 와중에 또 영성서적 탐독 와중에 '치유'에 해당하는 경험들에 크게 흔들리면서 큰 변화가 왔고, 또 병원에 가고 책을 읽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은 잠으로 보냈기 때문에, 제 몸 상태가 저런식으로 단계적인 회복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기억은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주의력, 기억력, 인지능력 등과 관련된 기능은 꽤 오랜 후에야 회복되었던 것 같아요. 하여튼 항우울제가 본격적인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오랜 시간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삶의 의욕, 목표의식, 자신감, 긍정적인 생각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또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혹은 해야겠다는 동기, 열정도 조금씩 살아났고요. 무엇보다 사람들을 마주보거나 세상에 나가는 일이 과거처럼 공포에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게 되었어요. 또 매일 책을 읽고 매주 시간 맞춰서 몇 차례 병원에 들르고 막 입양한 강아지의 배변훈련과 각종 뒷치닥거리를 하는 등, 평소 안 좋은 상태의 저라면 꾸준히 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을 일들도 큰 의지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기 시작했어요. 의사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중 하나가 기억나요. 환자 중 어떤 분이 부인과의 트러블, 직장의 대인관계에서 트러블 때문에 상담하러 왔는데, 항우울제를 같이 처방받으셨대요.  그런데 항우울제 효과가 나기 시작하면서, 직장에서 또 가정에서 사소한 부주의로 혹은 알면서도 고칠 에너지가 없어서 방치한 채 반복해서 저질렀던 실수들, 오류들이 현저하게 줄었다네요. 그러자 직장이고 가정이고 잘 돌아가기 시작하고, 부인이나 직장동료들과의 트러블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는거에요. 당연히 그 분의 심적 고통도 사라졌죠. 원인이 사라졌으니. 비슷한 일들이 저에게도 일어났어요. 자기관리 못 하고 알면서도 자꾸 오류를 반복하고 무언가 개선하려는 여력이 생기지 않고 사소한 실수가 쌓이고. 아무리 의지력으로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이 저절로 되기 시작했어요. 한참 과장해서 말하면, 아이큐가 80에서 120으로 갑자기 올라간 것 같은 느낌? 우울증 때문에 떨어졌던 주의력, 인지능력, 자기조절능력, 충동억제능력이 회복된 효과인가 생각했어요.


그제야 다시 깨달았어요. 내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내 성격과 인성과 습관의 문제라고 자책했던 책임의식없음 의지 약함 규율전무 절제력 없음 목적의식 상실 열정 없음 등등이, 정말로 우울증이라는 병에 깊숙히 영향 받고 있었다는 사실. 우울증을 호전시키는 단순한 알약 하나가 그 많은 이상상태를 개선시키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가 어쩌자고 약을 안 먹고 버텼던가 싶더라고요. 


그리고 약 먹은 것을 가장 감사했던 일. 약을 먹고 난 후에야 저는 제대로 '우울증에 좋은 일들'을 규칙적으로 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강아지 기르기, 운동하기, 명상하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노력하기 (이게 안되면 자기계발서적이나 심리치료서적들을 읽으며 방법이라도 탐독하기) 등등. 그 이전까지는 '달리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정말 움직이지 않아서, 아니 그 이전에 해야 한다는 생각, 하겠다는 동기가 전혀 생기지 않아서 시작조차 하지 않았거든요. 혹은 자기파괴적인 생각에 찌들어서 긍정적인 방향의 해결책들은 무시하고 쳐다보지 않았죠. 그런데 약을 먹고 난 후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면서, 정신과 약 이외의, 우울증에 좋은 다종다양한 활동들을 해야겠다는 생각과 동기가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막 입양한 강아지의 뒷치닥거리를 그렇게 인내심가지고, 잘 해 낼 수 없었을거에요.

 

하지만 결국 우울증은 완치가 증명된 질병이 아니며, 항우울제는 만능이 아니죠. 항우울제가 해 낸 것은, 최악의 병리적 상황에서 저를 건져서, 적절히 찌질한 평균 정상인들의 일상으로 복귀시켜 놓은 것이었어요. 우울증일 때의 상황이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럽기에, 거기서 사람을 끌어올리는 항우울제의 효과가 마법과 같이 느껴지긴 했어요. 특히 그 과정을 직접 겪어내고 회상해 볼 때는 더욱 그러하죠. 하지만 그렇게 돌아온 나의 자리는, 여전히 힘들고 스트레스 주는 일들 천지에 특히나 우울증의 여파로 조금은 더 망가진, 그런 자리였어요. 또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세상에 삐딱한 모습을 보이는 제 사고방식, 믿음, 태도의 틀도 변하지 않았고요. 항우울제의 복용은 우울증 삽화 치료와, 특히 뇌의 추가 파괴를 멈추는데 중요할 수 있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저는 심리치료와 기타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우울증이 자라기 좋은 제 심리적, 신체적, 주변 환경적 토양을 개선해야 할 책임이 있었어요. 유전적 요인, 어린 시절 양육 환경, 성장 시 우연한 스트레스 사건 등 외부의 요인 덕에 우울증이 생겼다 해도, 결국 그 자리까지 저를 몰아간 것은 저 자신이었거든요. 저는 그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었어요. 저의 모습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그리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도 저였어요. 거기서 빠져 허우적대는 인생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또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온전히 제 몫이었죠. 항우울제를 먹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그 기나긴 여정의 첫 발걸음에 지나지 않았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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