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있음] 인사이드 아웃

2015.07.11 16:11

잔인한오후 조회 수:1452

부제 - 우리는 왜 어린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것에 열광하는가.


(이 글은 어제 저녁에 쓰여졌습니다.) 도저히 이 글을 쓸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 쓸 것이라 억울해서 씁니다. 일주일 야근에, 내일 모레도 출근해야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을 본 소감을 이렇게 흘려버린다면 전 저를 용서하지 못할테니까요. 제가 [인사이드 아웃]을 얼마나 기대했는지는 주위 사람들도 잘 모를겁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셨던 [유미의 세포들]도 흡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DJUNA님이 소개해준 (이름을 까먹어버린) 70년대 외국 드라마를 보니 이 소재는 끝없이 변주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튀어나오는 천사와 악마 등의 흔한 예를 들지 않고도 엄청나게 많은 서술과 도전들을 찾아 볼 수 있죠. 그래도... 픽사가 만드니까 기대하고 볼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제게 있어서 자신만이 가지고 있던 상상 속의 밴드를 누군가가 (대신?!) 나서서 실제화시키고 그 콘서트에 참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인구학 쪽으로는 (아무도 '아이만 낳지 못하게 한다면 간단하게 재난물을 만들 수 있을 텐데요, 혹시 그런게 있을까요?란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아 상심하게 되었지만) [칠드런 오브 맨]이 제게 있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심리학에서 그런 창작물이 라이브로 두 개나 (하나는 [유미의 세포들]) 볼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하, 스크린을 잡아먹을듯이 보면서 그 광활한 실체화를 흥겹게 즐기고 왔습니다. 자아분할된 인격들을 (여기에서는 단적으로 감정들에 포커싱을 맞췄습니다만) 깔끔하게 그려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은 소녀들이 창작물에 나오면 걱정부터 됩니다. 대부분, 그들은 고통받을 것이고 어쩌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행복해지겠지만 가끔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밀크특공대] 혹은 [나루타루] 같은 괴작까지 가지 않더라도, 영원히 고통받는 소녀의 모습은 수많은 창작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두 명의 소녀가 동시에 (혹은 3명의?) 고통 받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긴장을 좀 푸는 정도로 타협이 되는 이중 구조죠. (결국에 우리는 행복을 울리고서야 만족합니다.) 갈등이 일어나야만 하기 때문에 등장 인물들은 언제나 고통 받을까요? 글쎄요, [1Q84]나 [모모], 혹은 듀나님의 단편 몇몇에서도 편향된 결과를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억지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상당한 아마추어 만화가들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녀들에 대한 가학성향은 어떤 의미를 도출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인기까지 있죠. 저는 그래서 이런 도식도 세워놓고 있어요. 인기 작품이 되려면, 1. 매력적인 인물을 그린다. 2. 그/녀를 괴롭힌다. >>> 3. 증명완료!!)


이런 조류에 제 입장은, 이런겁니다. 고통을 맞이할 때 안전하게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주인공은, 우리에게 소녀 정도 밖에나 없는 거죠. 다른 이들이 섬세한 감정 변화를 나타내기엔 문화가 가로막습니다. 우습게도, 남자는 죽을 때까지 3번 울어야 한다, 이런 것 말입니다. 누군가와 내놓고 공유하지 못하는 여러 감정들을 대신 자유롭고 다양하게 표출하기에 만만한 대상이 소녀인 겁니다. 여러모로 복합적인 심정이 들지만, 저는 요새 감정을 조율하고, 지휘하여 인물들로 4중주 정도만 연주해줘도 헤벌레 하면서 보는데, 이건 뭐 만찬이 따로 없더군요. 감정은 매우 논리적이기 때문에 그 조율이 틀어지면 깊게 파고들질 못 합니다. 요즘에는 식사하러 가서 틀어놓은 TV의 드라마에서 두 명이 나와 서로의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만 봐도 울컥!하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고급이 아니어도 되었지만, 그렇다고 뭐 싼 음식만 먹는다고 비싼 음식이 비싼 맛이라는걸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요.


감정들은 결정 기구 안에 갖혀 있으며, 거대하게 펼쳐진 인식지평은 (처음에는) 풍경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들 각각이 개인의 인격을 나타내기보단, 그들 사이의 구조가 (감탄할만한 부모의 의사결정 기구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인격을 이룹니다. 그리고 특정 행위와 인간관계가 개인의 정체성이 되죠. 픽사는 끊임없이 지나가는 여러가지 농담의 소도구 들을 통해 "여기까지 설정해놨어! 하지만 다 짜르고 드라마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어!"라고 변명합니다. 아마 인크레더블이나 UP!과 마찬가지로 절대 2편이 나오지 않을거라는게 너무 슬픕니다. (혹시 나옵니까? 야호?) 감정이란 누구에게나 있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며 다양한 정보들로 영향을 받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서도 제가 그런 것에 대해 너무 둔감해 그런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어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그 도구를 주인공 삼아 영화를 찍어주시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보면서 느꼈던 복합적인 감정을 설명하고 싶은데, 그건 이런 식으로 되는게 아니겠지요.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헛소리를 하고 있지만, 영화를 볼 때는 눈물 흐르는 걸 내비 두면서 형용할 수 없는 ... 다양한 주체들과 객체들의 정보가 끊임없이 여러 의미로 쏟아지는... 거기에다가 감정도 함께 흩뿌려지는...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최근에 봤던 영상들이 경험이라기보단 관측과 가까웠기에 더 좋았어요. 처음에는... 슬픔이 기쁨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기쁨이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죠.


... 아무래도 경험은 공유할 수 없는게 맞나봅니다. 그냥 몇 번 더 보는 걸로 만족해야겠군요.


(... 정말 이렇게 감상을 못 적을 수가 있다니. 왜 감정적인 감상에 대해서는 언제나 핵심에 도달할 수도, 서술할 수도 없는 걸까요.)

(뭔가 참을 수 없이 창피해서 글을 지웠다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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