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해삼님의 미술관 글을 읽고 http://djuna.cine21.com/xe/?mid=board&page=5&document_srl=1721905

댓글 쓰다가 3년전 추억에 잠겨서 어느새 사진폴더를 열고 한장한장 넘기고 있더라구요. 결국엔 쓰기 버튼을 누르고 말았네요.



 

 

 

 

 

 


방명록에 끄적끄적 흔적을 남기기도 했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제 앞에 와서 이렇게 앉아 있다가 풀 속으로 슥 사라진 강아지.

배가 고픈건가 싶어 가방에 있던 과자를 줘도 관심도 없고 그냥 이렇게 앉아만 있었어요.

앨리스의 시계토끼처럼 이 강아지를 따라갔다면...!





두모악은 개인 갤러리라서 작품이 많지도 않고 그리 넓은 곳도 아니에요. 작품만 보고 나온다면 10분이면 족하겠지만 저는 분위기에 취해서 2시간 정도를 사진찍으며 걷고, 풀과 꽃 앞에 쪼그려 앉아 시간을 보냈어요.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혼자 온 사람이든 여럿이 온 사람들이든 평온함에 물든건지 모두들 조용히 감상하더군요. 사진 하나하나 공들여서 감상했어요. 바람결 따라 눕는 풀, 흔들리는 구름과 나무, 부드러운 제주의 오름들. 흙과 돌과 바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들 투성이. 

고작 복잡한 몇몇의 문제로부터 벗어나려 서울에서 가장 먼 제주 땅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지만 어차피 며칠 뒤 뻔뻔한 얼굴을 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이 모자란 인간은 감당못할 아름다움. 갤러리 안에 사람은 없고, 무척 고요해서인지 사진을 보고 있는데 명치 쪽이 저릿저릿 해지면서 울고 싶어졌어요. 눈물을 펑펑 쏟아도 아무도 모를것 같았죠. 설사 안다 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것 같았지만 그러진 못했어요.

여기는 마치 한국도 아니고 외국도 아닌 제 3의 어느곳 같았어요. 이곳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하신  김영갑 작가의 결실이 이렇게나 아름다워서 그가 죽고 난 후 남은 사람이 오롯이 느끼고 새길 수 있는것이겠죠. 이 작고 소박한 것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요.

그 고즈넉하고 호젓했던 2008년10월의 햇살과 풍경을 잊지 못할거에요. 

 



밤에 숙소에 돌아와서는 김영갑 작가의 사진에세이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다가 잠들었는데 그때 마음을 건드렸던 몇몇구절을 옮겨봤습니다.

이 갤러리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내용도 있고 해서.

 



나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나,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지금 이 길이 정말로 내가 가야 할 길인가... 풀리지 않는 의문에 매달리다 보면 또다시 헤어날 수 없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럴 때는 도회지의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눌러앉아 여기까지 흘러왔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 이 길을 포기하고 다른 무엇을 선택한다 해도 그 나름의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다른 일을 선택해 환경이 변한다 해도, 나는 나이기에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혼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한다면 어디를 가나 방황하고 절망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분명 끝은 있을 것이다.  - p.64

 

2002년 여름 공사를 시작한 지 일 년여 만에 마침내 꿈에 그리던 갤러리가 완성되었다. 처음 문을 열던 날 따로 기념식을 하거나 번거로운 자리를 마련하지는 않았다. 전시 공간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운동장을 정원 겸 산책로로 조성하는 일이 아직 남았다. 넓지 않은 학교 운동장을 제주를 상징하는 것들로 채워 작은 제주처럼 만들고 싶었다.

갤러리가 완성되고 나서도 지인들의 걱정은 잦아들지 않았다. 누가 시골 갤러리를 찾겠느냐고, 관람객이 없어도 실망하지 말라고 지레 위로했다. 실망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시골 마을 폐교를 이용해서 갤러리를 만들었다니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것일 테고, 한두 달 발길이 이어지다 곧 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따로 사람을 들이지 않고 불편한 몸으로 직접 관람객을 맞았다. 가을이 되지 관람객이 두 배로 늘어났다. 겨울에는 평일에도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갤러리를 지켰다. 관람객들의 반응이 예상 외로 뜨거웠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제주의 아름다움을 모아 폐교 운동장을 정원으로 가꾸었다. 나무와 억새, 야생초를 옮겨 심고, 밭가에 버려진 돌을 실어 와서 돌담을 쌓았다. 꾸미지 않은 듯 꾸며서 제주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원의 모습이었다.

갤러리를 통해 내 영혼을 뿌리째 뒤흔든 제주의 아름다움이 모두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수록 신명이 났다. 정원 산책로를 만드는 일도 계속 되었다. 돌담을 쌓았다가 허물고, 허물었다가 또 쌓았다. - p.195,196

 

몸은 부자연스러워도 정신만은 자유롭다. 힘든 몸으로 사진 갤러리를 열었다는 애기를 듣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네 번 다섯 번 찾아온다. 그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귀울인다. 몸이 허락하는 한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이다. 건강할 때보다 더디고 힘이 들지만 그들이 찾아와준다면 나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십여 년 동안 모아운 많은 이야기들을 이제 하나 둘 꺼낼 준비가 되었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피어난 너도바람꽃처럼, 고통의 끝에서 무사히 봄을 맞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두려움 없이 나아갈 것이다. 한겨울 중에 움트는 봄의 기운을 나는 보았다. 자연의 훔안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온몸으로 보고 느꼈다. 자연의 오묘한 조화와 그 경이로움을.

살고 싶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도 아니요, 죽고 싶다 해서 쉽사리 죽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적은 내 안에서 일어난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을, 희망의 끈을 나는 놓지 않는다. 사람의 능력 밖의 세계를 나는 믿는다. - p.24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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