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의 뮤직비디오 ETA 감상

2023.08.01 12:08

Sonny 조회 수:295

@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바랍니다.




이 뮤직비디오는 뉴진스의 Cool with you의 뮤직비디오 다음에 나왔다. 양조위의 출연으로 이미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충격을 다 준 다음에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뉴진스는 이미 버니즈 캠프에서 ETA를 안무와 함께 공개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실질적인 타이틀곡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뉴진스는 이 뮤직비디오를 단순히 뮤직비디오로만 내놓으면 되는 것일까. 사람들의 기대치가 끌어올려져있을 때 민희진은 이 뮤직비디오를 아이폰 14 pro의 광고와 동시에 런칭했다. 심지어 유튜브조차도 뉴진스의 뮤직비디오를 매개로 유튜브 자체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마케팅은 문화적인 방향에서 전무후무하다. 영원하고 불멸의 이미지를 지닌 시네마란 예술, 그리고 신화라는 텍스트를 활용해 뉴진스의 뮤비를 고전의 영역에 놓으려하는가 하면 그 반대 방향에서 쉴 새 없이 바뀌고 최고로 트렌디한 아이템의 상징인 아이폰과 뉴진스의 이미지를 결부시켰다. 이것이 예술적으로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각각 평이 갈릴 것이다. 그러나 마케팅적으로는, 압도적이다. 그냥 잘 나가는 아이돌이 아니라 제일 "쌔끈한" 것들과의 광고 협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트렌드리더로서의 이미지를 정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뉴진스다. 아이폰은 뉴진스다. 현재 1020이 가장 열광하고 생활 속에서 쿨한 것으로 활용하는 미디어와 핸드폰, 사이버 세계의 핵심 아이템들을 광고하는 주인공으로 나섰다. 이것은 단지 광고를 많이 하거나 광고비를 많이 받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다. 무엇의 어떤 이미지를 선점하고 대표하는지에 있어서 뉴진스가 다른 걸그룹들을 완전히 제쳐버렸다는 의미이다.


뉴진스는 함부로 티비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다. 이들은 전연령의 "국민적" 지지가 필요하지 않다.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그런 대상이 되는 것을 민희진은 오히려 경계한다. 왜냐하면 "최신"으로 이쁘고 잘 나간다는 뜻은 그 문화적 흐름을 쫓아오지 못하는 문외한들, 뒤쳐지는 이들의 존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예능의 트렌드를 장악하며 아예 판도를 바꿔놓았던 무한도전을 전연령층이 사랑했는가. 4050부터는 무한도전을 이해하기도 어려워했고 잘 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무한도전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신 예능으로 그 흔적을 남겼다. 박찬욱의 영화들은 늘 그 관객수가 봉준호의 영화들보다 적었지만 개봉할 때마다 엄청난 문화적인 여파를 남겼다. 세련되었다는 것은 늘 소수의 젊은 어떤 사람들이 그 이해와 만끽을 독점적으로 공유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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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적으로 이런 이미지를 점유해냈다면 뮤직비디오 자체로서는 어떤가. 이 뮤직비디오는 이번 Ep에서 영상 자체가 가사와 음악과 제일 조화롭게 배합된 결과물이다. 노래는 도입부에서부터 자동차 경적을 계속 눌러대는 이미지를 끌어내며 시작한다. 가사는 여성화자가 다른 여성청자에게 그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있으니 빨리 정신차리고 자신에게 오라고 독촉하는 내용이다. 뮤직비디오는 이 내용들을 충실히 반영하며 시작한다. 아이폰의 통화 대기 화면이 보이고 그 다음 뉴진스가 자신의 친구인 어떤 (외국) 여자에게 남자친구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때 뮤직비디오가 아이폰의 통화 신호음과 그 화면으로 보여진다는 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광고 영상이 아니라, 영화 [서치]의 내용처럼 기성세대가 접근하기 힘든 1020만의 독점적인 디지털 세계를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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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안에서 뉴진스는 어떤 수영장이 딸린 저택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다. 이들이 춤을 추며 노래하는 장면은 '친구의 바람난 애인을 고발하는' 서사에는 따로 편입되지 않지만 서사로서의 장면과 같은 장소를 공유한다. 파티장에서 그 나쁜 친구 애인을 보고 화를 내며 그걸 알려주면 바로 그 다음 장면에서 뉴진스의 안무가 진행되는 식이다. 그 전의 Cool with you에서는 이들의 퍼포먼스와 서사가 완전히 같은 톤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본다면, ETA의 퍼포먼스와 서사의 분위기는 나눠져있다. ETA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퍼포먼스는 신나지만, 서사는 점점 어둡게 진행되며 마침내 살인을 암시하는 장면으로까지 나아간다. (민희진은 이미 레드벨벳의 Peek-A-Boo에서 죽음의 이미지가 포함된 다크판타지를 선보였다)


이 지점에서 뮤직비디오와 노래의 지향점은 각각 분화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래는 '네 남자친구가 바람피고 있는데 아직 안오고 뭐하니...!' 하며 초조해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는 노래 가사의 내용을 따라가는 듯 하다가 마침내 바람피는 남자친구를 만나서, 차로 치어 죽여버린다. 뮤직비디오에서 뉴진스는 오지 않는 친구를 계속 기다리지 않는다. 마침내 만나서, 그의 범행을 목격하거나 공모한다. 뮤직비디오는 ETA 의 가사 이후의 내용일 수 있다. 마침내 도착했을 때 뉴진스가 그 친구를 위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 괘씸한 남자친구를 응징하는 순간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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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섬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뉴진스 멤버들]


조금 다르게 해석해보자. ETA의 뮤직비디오는 뉴진스가 친구의 연인이 바람피우는 걸 목격하고 알리자, 그 친구 본인이 혼자 그 남자친구를 찾아나서기로 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은 뉴진스를 만나지 못했고 뉴진스는 이 친구를 아직도 기다리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뉴진스는 '내가 빨리 뉴진스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하는데'라고 초조해하는 주인공의 환상은 아닐까. 그가 터널을 지날 때에 옆에 앉아있는 뉴진스나 경찰관으로 등장하는 뉴진스, 마지막에 도달하는 어느 언덕에서 차 옆자리에 앉아있는 뉴진스는 전부 환상이다. (특히 경찰관으로 등장하는 민지는 이상할 정도로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남자친구를 치어버린 나를 뉴진스는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만들어낸 환상들이 지금 주인공의 곁을 맴돌고 있다. 이 뮤직비디오의 내용대로 노래를 해석하면 ETA는 뉴진스가 친구를 기다리는 내용이 아니라, 자신을 기다릴 뉴진스를 상상하며 남자친구를 죽여버린 어느 여자의 이야기다. (저 경찰차 씬은 특히 히치콕의 [싸이코]를 참고한 느낌이다)


어느 쪽의 해석이든, 뉴진스는 어떤 여자의 실패한 연애를 보고 있다. 그리고 뉴진스는 이미 망쳐버린 연애의 주인공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때 연애 VS 뉴진스의 맥락이 생겨난다. 어떤 남자와 연애를 할 것이냐, 아니면 우리 뉴진스와 놀 것이냐. 혹자는 이 노래의 구슬픈 멜로디를 근거로 이 노래는 레즈비언 화자가, 바보같은 남자와 연애하는 자기 친구를 짝사랑하는 노래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 해석도 일리가 있으나 나는 이 뮤직비디오를 연애를 말리거나 중단시키며 자신들과 놀자고 하는 뉴진스의 초대장이라고 해석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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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질문을 이어가보자. 이 뮤직비디오는 왜 점점 톤다운되고 있을까? 뉴진스가 퍼포먼스를 펼치는 시공간적 배경은 환한 낮의 어느 저택이다. 그곳에는 시종일관 종이꽃가루가 휘날리고 모두가 즐겁게 파티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왜 자꾸 뮤직비디오는 주인공을 쫓아가며 수영장의 물 속으로, 어둠 속으로, 숲속의 외딴 도로로 점점 고립되어가는 것일까. 밝게 춤추는 퍼포먼스의 배경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뮤직비디오는 일관된 톤으로 이 복수또한 흥겹고 유쾌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 뮤직비디오는 점점 더 외딴 곳을 향해 질주한다. 마침내 절벽 끝까지 가면서 뮤직비디오는 완전히 막바지에 다다른다. 심지어 뮤직비디오의 말미에 뉴진스는 어둠 속에서 춤을 추다가 갑자기 움츠러들기까지 한다. 더 이상 퍼포먼스를 태연하게 할 수조차 없을만큼 분위기가 안좋아졌다는 듯이.


뉴진스와 파티에서 노는 것은 밝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연애를 하는 것은, 바람피우는 남자를 만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기분에 빠지는 일이다. 그것은 뉴진스의 생기발랄한 퍼포먼스로도 구원할 수 없는 일이며 그저 곁에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같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즉 이 뮤직비디오는 여자애들에게 남자애와 연애를 하는 게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뉴진스에게 언제 올 거냐고 계속 재촉을 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뮤직비디오는 여자애들에게 연애를 하는 대신 뉴진스와 같이 놀자고 하는 게 핵심메시지이다. 이 뮤직비디오는 뉴진스의 또 다른 팬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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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뮤직비디오는 단순히 남자아이를 죽이고 복수하는 내용이 아니다. 뮤직비디오 속의 주인공이 남자만 상상하며 질투에 괴로워했는가. 남자와 같이 있는 다른 여자를 상상하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차로 남자친구와 다른 여자를 한꺼번에 치어버렸다. 이 뮤직비디오는 연애 자체를 부숴버린다. 이것은 뉴진스가 여름에 내놓은 납량특집 뮤직비디오다. 여자애들아, 함부로 남자랑 연애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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