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샀던 윌리엄 포크너의 '나이츠 갬빗'(미행)을 읽었어요. 

1949년에 나온 책으로 1932년부터 1949년까지 발표된 여섯 편의 중단편 소설들, '연기, 몽크, 수면 위의 손, 내일, 화학적 실수, 나이츠 갬빗'이 발표순으로 묶여 있습니다.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문학동네)를 - '고함과 분노'(열린책들), '음향과 분노'(그 밖의 출판사) - 읽을 때는 예사롭지 않은 장애를 지닌 인물의 특성과 작가의 문체가 결합되어 매우 독특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문장에 쉼표와 대시( - )가 많이 사용됩니다. 이런 쉼표의 잦은 사용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고 끊어지는 인물의 어수선한 사고의 흐름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그럴 듯했어요. 또 지시어가 무엇을 지시하는지 애매하게 느껴지는 점도 상황과 어울리며 적절하고 절묘하달까 그랬습니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민음사) - '내가 누워 죽어갈 때'(부클래식) - 역시 일가가 겪는 상식적이지 않은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구성원들 내면의 웅얼거림 같은 것이 작가의 문체와 어울렸고 묘하게 빠져드는 면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이전에 읽은 위의 두 소설에서 내용과 문체가 어울리는 포크너 소설의 맛을 보게 되었고, 내용이 갖는 특유의 막막함에 매력을 느꼈고, 호감을 가지며 작가의 이름을 머릿속에 갈무리 했지만 읽는 동안은 페이지 넘기기가 쉽지 않았고 자주 앞 부분으로 돌아가서 확인해 가며 읽는 수고가 따라야 했습니다.(호, 요 문장 쓰고 보니 포크너 문장스럽습니다? 제가 영향을 잘 받습니다.) 역자의 탓은 아니지 싶었으나 때로는 번역 탓도 하게 되고요. 작가가 어찌 썼든 안 그래도 어려운 소설, 번역의 과정에서 좀 친절한 다듬질이 필요했지 않을까 그래도 되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두 번이 아니고 지시어가 뭘 가리키는지 바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거듭되자 에라이 모르겠다, 심정으로 대충 넘어가게 될 때도 있었고요. 그 중에서도 매우 대충 읽어서 읽은 걸로 치기 어려운 소설이 '곰'(문학동네)이고요.

 

아마도 영어권 사람들은 문장에서 리듬감도 느낄 것이고 단어의 뉘앙스가 주는 분위기도 있을 거고, 술술 읽기 어렵다 해도 우리보다 이 작가의 소설들을 즐길 여지가 많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이츠 갬빗'을 읽으면서는 여기 수록된 여섯 편의 소설을 댁들도 추리 소설로 정말 즐겼냐고 물어 보고 싶었네요... 그러합니다. 추리 소설에서 이 작가가 그렇게도 즐겨쓰는 지시어가 뭘 지시하는지 혼동을 거듭하고 결국 이해를 못 하는 지경이 되자 읽어나가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가장 그랬던 작품이 표제작인 '나이츠 갬빗'이었고요. '그'는 앞서 서술한 이들 중에 누군가? '그것'이라니 무엇 말인가? 게다가 쉼표가 여럿 들어간 긴 문장에서 마지막에 서술어를 딱 봤을 때 이 서술어의 주인이 뭐였지? 대체 누구에 대한, 무엇을 설명하는 문장인지 길을 잃습니다.(ㅎㅎ 아니다 ㅠㅠ)

  

포크너를 많이 좋아하시면 당연히 이 소설집도 좋으실 겁니다. 저는 이 작가의 글의 특징이 이번 소설들에선 더 난이도가 높았고 다 읽고 난 후의 보람은 약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것이 아님이 확실한 것이 책 뒤에 신혜빈 옮긴이가 후기 끝에 각 소설에 대한 짧은 요약을 첨부했네요. '포크너가 설계한 미로에서 서성이는 독자가 있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면서요. 하하;; 하지만 세부가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지 큰 맥락의 줄거리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그리고 위에 제가 번역이 좀 친절했어야 한다는 불만을 썼는데 그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포크너 특유의 길고 복잡한 문장과 의식의 흐름 기법이 역시나 두드러지는 소설이라, 단순히 이해하기 쉽도록 문장을 매끄럽게, 짧은 길이로 토막 내지 않는 것을 번역의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포크너의 문장은 이해를 거부하는 듯 장황하고 난해해 보여도 읽다 보면 묘하게 구어체 같은 특유의 호흡과 리듬이 있다. 번역문에서 이를 구현하는 것이 번역자로서 세운 큰 목표이자 도전이었다.' 라고요. 음, 삼 년 동안 고생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편집자의 후기도 드물게 첨부되어 있습니다. '워낙'까진 아니라도 좋아하는 작가이고 추리소설에 대한 기대 등이 저와 비슷한 지점이 있어 조금 옮겨 봅니다. '이 책을 담당한 나는 이 책을 안고 있던 삼 년 간 포크너를 악마라고 불렀다. (중략) 끝나지 않는 문장들, 그 안에 얽혀 있는 미로 같은 서사, 불분명한 호칭들, 쉼 없고 장엄한 거인의 호흡 같은 진행, 은연중 읽히는 수법, 필력, 잘 따라가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지만 그런 의심에는 심드렁한 작가관...(중략) 개인적으로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고 그래서 고유의 문체에서 오는 어려움도 다루면서 내내 기쁠 것 같았고, 또한 포크너지만 문학성을 짙게 띠기보다는 추리소설이니 약간 대중성 있게 쉽게 풀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을 했는데 그건 오해라는 게 작업 초기에 바로 판명되었다.' 라고요. 


마지막에 수록된 '나이츠 갬빗'에 여섯 편 모두의 주인공인 개빈 스티븐스의 개인사와 얽힌 사건이 나오는데 포크너 자신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요. 1차대전 참전, 어려서 사귄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 나이들어 그 여자와 결국 결혼하게 됨. 포크너도 그랬다고 합니다. 순정남이었던 것인가, 마초남이었던 것인가, 미국 남부의 남자니 둘 다였을 확률이 높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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