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특별전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건 개봉 미정이길래, 우선적으로 봤습니다.


저는 재밌게 보았고,

거북목의 아콰피나를 좋아하신다면 추천입니다.ㅎ




영화 관련 정보를 많이 모르고 보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아래는

영화 내용 포함입니다.




1.

공개된 시놉은 이래요.

: 온 가족을 모이게 하기 위해 폐암 말기인 할머니에게는 비밀로 하고 가짜 결혼식을 급조하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영화


포스터와 시놉을 대충 보곤, 거짓말과 비밀이 눈덩이처럼 불거지는 코미디, 혹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류의 ‘결국엔 가족 이야기’인가 싶었어요. 하지만 그보다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쪽의 이야기네요. 어떤 면에서 빅피쉬도 생각나고요. 


예상과 달랐고, 새로웠어요. 동시대 현재의 영화임을 많이 느꼈고요. 




2.

동양계 서양인 2세대가 본토에 돌아와서 겪는 문화 충돌과 관련해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생각났어요. 하지만 그것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고, 보여주는 방식도 달라요.

거칠게 비교하자면, <크레이지~>는 ‘동양계! (서양인)’ 화자가 ‘너네(서양) 잘 모르겠지만 우리 사실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잘 살아!’를 보여준다면

<페어웰>은 (동양계) ‘서양인!’ 화자가 자신의 뿌리를 문득 자각하곤 타자화하며 생경해하는 느낌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어떤 장면들은 일부러 더 대상화, 타자화해서 담으려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불쾌하게 만드는 건 아니고요, ’이것, 서양 기준에선 이상해 보이지 않냐’ 라는 의도를 전달하는 장면들.)



2-1.

이 작품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한국 관객에게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해요. 

미국인이 아니지만 아시아인이지만 중국인은 아닌.


분명 어떤 장면들은 일부러 더 이질적으로 그려서 코미디를 의도한 듯한 것 같은데, 이게 (유교적이라) 그다지 이질적이지 않게 느껴진다는 거죠…; 



<크레이지~> 때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땐 좀 더 당황스러웠죠. 아시아인으로 묶이기엔 한국인인 나에게도 중국은 타자라서.


여튼 미국, 중국, 한국 각각 극장 분위기가 다를 것 같아요. 게다가 주연 배우 아콰피나 어머니는 한국계잖아요?



2-2.

제가 <크레이지~> 보다 이 작품을 더 좋아하는 건, <크레이지~>가 우리 아시아인은 너네들보다 최고!를 외치면서도 묘하게 중국인 아닌 아시안인은 배제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지 몰라요. 


그와 달리 <페어웰>에 제가 감응하는 건, 이 작품이

미국이 제1세계임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꾸준히 드러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그게 좋았어요. 가족 얘기도, 거짓말 트위스트 서사도 아니라, 결국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전 그게 많이 좋아요.


* 어쩌면 페어웰과 크레이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카테고리가 안 맞을 수도 있죠. 단지 최근의, 비슷한 소재, (제 식견 안에서) 몇 없는 작품들이라 제가 머리채 끌고 나온 것이기도.




3.

영화 후반부에 덧붙여진 영상,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창가의 방문자들을 생각하면,

주인공(혹은 감독 혹은 영화)은, (줄거리에서도 그런 선택을 했지만) ‘이쪽’ 문화의 어느 아름다운 면을 잘 받아들인 것 같죠. 그이가 그렇게 조화를 이룬 것도, 그리고 그 점을 ‘저쪽’ 관객들에게도 영화적으로 전달하는 것 같아 좋았어요.

(어디를 이쪽, 저쪽이라고 써야 할지 잠시 고민)




4.

할머니, 엄마, 여자 주인공이 남자들보다 좀 더 비중이 크고요. 그러면서 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전통을 상징하는 게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고 (그 캐릭터가 예를 들어 박근형? 배우였다고 생각해봐요, 아뿔싸… 그러면 가족들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대화가 많이 나올 수가 없다.)

집안 최고 어른이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 plus, 이모할머니고

할아버지는 진즉에 없으며 할아버지 대체재도 아닌 남자가 있고 (초반에 언급되는 이 분의 신체적 특징이 후반부에 어떤 반전을 가져오려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네요)


어머니는 (여타 편견과 달리) 감정적이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라는 점도 의미 있어 보여요.




5.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여러 장면들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면은 좀 더 사건적으로 보여졌으면 좋았을, 대사로 언급되는 몇 장면?

주인공 마음이 돌아서게 되는 중요 메세지가 언급되는 장면이 그렇고, 

할머니와 나누는 마지막 대화가 그랬어요. 


초반에 묘사된 주인공의 경제적, 진로적 상황의 떡밥이 어떻게 회수될까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이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숨기고 있는 이야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시놉에도 언급된 ‘할머니에게 본인의 위독함을 알리지 말라’이고, 또 하나는 주인공이 지원금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숨기는 것이에요. 

‘걱정할까 봐 얘기 안 했다’는 것이, 메인 플롯의 거짓말의 속성과 같아서, 그걸 부정해왔지만 이런 점이 실은 자신에게도 있다는, 그러니까 같은 맥락이라는 걸까요? 그런 거라면 고리가 좀 약한 것도 같아요. 이 부분이 대사로 흘러가는 동안 제가 집중력을 좀 잃어서 뭔가 놓쳤는지도…




6.

기가 막힌 미쟝센이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고, 어떤 장면은 조금 아쉽기도 해요.

하지만 신파적으로 힘줄 것 같은 부분을 그렇게 가지 않아서 좋은 부분들도 있었어요.


아콰피나 한 명에게만 의존하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아콰피나 얼굴 클로즈업이 적지 않았고, 그 표정을 보는 건 좋았어요.


골목을 걷는 의연한 떼씬이 집중적으로 몇 번 나오는데, 각 인물들의 표정과 그 복잡한 속내를 헤아려보곤 했어요. 범죄와의 전쟁 같은 길막 떼씬보다 밀도가 높음은 물론입니다. (비교하는 게 미안하군요)




7.

영화 자체는 꽤 재미있었는데, 돌이켜보니 (제게 개그 캐릭터로 인식되어 있는) 아콰피나가 개그를 시전하지는 않았네요. 오호.




8.

삽입된 노래가 존재감이 있어요. 음악 자체가 좋다기보다, 노래의 컨셉이 영화와 잘 맞아서 작품 의도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돼요. 엔딩 크레딧의 첫 번째 노래를 꼭 2절까지 다 들으시길 바라요.




VOD로 봐도 좋겠지만, 극장에서 한국 관객들과 보는 게 더 흥미로운 경험이지 않을까 싶어요. 정식 개봉하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다시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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