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던 사람은.. 남편이 유일합니다.

문득 이런 이야기들을 마냥 부끄럽게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도 지났고해서 한번 올려봅니다.

사실 지금은 더 이상 이런 이야기들이 상처로 다가오지 않을 정도로 여유도 있어졌다는 뜻일수도 잇겠어요.

한편으로는 i don't care님의 글로 인한 여파를 좀 줄여보자는 것도 있어요.

왜냐하면 그분의 돈이 넘치는 배경도 저의 가난한 어린 시절 만큼이나 그 사람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줬던 하나의 배경일 뿐이란 거죠.

그게 그 사람이 훌륭하다는 뜻도 그렇다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아니니까요.

아... 뭐 정신적인 외로움의 원인을 찾으면서 물질적인 조건들만 주욱 나열한다던가..

그정도 갖추진 못한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랑하는 유치함 같은건 물론 어리석다고 느껴지지만

뭐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역시 사람은 모든걸 다 갖출 수 는 없구나 하는 위로도 되구요.

무엇보다 저는 제가 다들 고만고만한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더군요.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저의 가난했던 어린시절 이야기.

사실 가난해서 고생했던건 저희 부모님이지 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덕분에 세상의 더 많은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한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의 학력은 중졸입니다.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중에 하나에요. 할아버지는 나름 지역에서 땅도 꽤 있으시고 살기 마냥 어려운 형편은 아니시거든요.

제가 아버지 어린시절을 본것도 아니고 막연히 줏어들은 이야기를 조합해보면 사실 그 땅 자체가 저희 아버지와 형제들이 학교 안가고 함께 농사지어가며 모은 땅인것 같기도 해요. 또 형제도 많으셨죠. 저희 아버지는 둘째인데 8명의 형제 자매가 있습니다. 그중 아래 셋은 형편이 나아져 모두 대학을 졸업했지만 위의 다섯은 그렇지 못했던것 같아요.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작은 아버지,  저에게는 작은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분을 대학까지 보내시느라 다른 형제들에게는 돌아갈게 없었다고 하더군요. 또 몸도 안좋아서 중학교도 대충 대충 다녀서 졸업장만 어떻게 겨우 따신것 같아요. 대신 동네 한약방겸 서당에서 한자 공부를 조금 하셨다는것 같습니다. 사실 제 학창시절 내내 아버지 학력란에는 고졸이라고 적었어요. 지금은 그게 무슨상관이야 라고 조금은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기도 하죠. 친구들 중에는 부모님이 대학은 물론 유학까지 다녀오신 분들도 있는데 사실 그들의 지적인 부모님이 조금은 부럽습니다만 저희 부모님이 못나서 그런것도 아니고 형편이 어려우셔서 그런걸 어쩌겠어요.

 

저희 어머니는 방직공장에 딸린 고등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영화 하녀에 나오는 여공들이 다니는 그런 학교죠. 어머니 집안은 예전에는 꽤나 양반집에 돈도 좀 있으셨던것 같은데 외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땅이 저수지로 수용되면서 재산이 엄청나게 줄어서 이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요즘이야 땅이 수용되면 벼락부자도 되긴합니다만 그당시는 그렇지 않았다죠. 웃긴건 그렇게 줄어 이사하신 땅이 또 저수지로 수용되면서 가뜩이나 줄은 살림살이가 더 줄었다는것 같습니다. 참 땅고르는 재주도 없으시지.. 어찌 그리 저수지로 수용되는 땅만 고르셨는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덕분에 어머니 고향에는 풍광좋은 저수지가 몇개 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양반이라 일은 안하고 술만드셨다고 합니다. -_-; 외할머니가 엄청나게 고생을 하셨죠. 도토리묵 장사를 하셨다던데.. 여하튼 엄청나게 가난한 나머지 엄마는 고등학교를 스스로 나오셔야했고 그 대안으로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런 학교를 그것도 겨우겨우 나오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군대를 다녀온 후 무작정 서울에 오셔서 운전을 하셨어요.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결혼도 하신것 같습니다.

부엌딸린 한칸짜리 단칸 사글세방에서 결혼 살림을 시작하셨지요. 자세한건 모르지만 구멍가게도 잠깐 하셨나본데 자본이 없으니 물건을 하나 팔리면 하나 사오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 가게가 잘될리는 없고.. 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고 계셨을 무렵 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셨나봅니다. 어느 할머니가 다치셨다는 것 같은데 가난한 살림에 합의금 같은걸 낼 돈이 있을 턱이 없고.. 아버지는 결국 감옥에 들어가시고 임신한 어머니는 혼자 남게 되었죠. 이쯤에서 저희 아버지의 운전 실력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저희 아버지는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운전을 잘하십니다. 운전을 잘한다는게 과속을 한다던가 길을 빠르게 간다던가 하는 걸 이야기하는게 아니에요. 과속, 신호위반, 불법주차 딱지 하나 떼시는 일 없이 안전 운전 하십니다. 가끔 제가 회사 동료들의 차를 타면 엄청난 과속과 차선 변경 등에 벌벌 떨면서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어야 하죠. 버스 운전을 그만두신지도 20년이 넘으셨는데 버스 운전 하시던 이후에는 사고 한번 낸적 없으세요. 하지만 생업으로 하는 운전, 그것도 사람들이 우르르 타고 내리는 버스 운전은 좀 다르셨겠죠. 여하튼 어머니는 아이를 낳으러 고향으로 내려가셨어요. 양수가 일찍 터졌는데 그게 양수인지 모르셨나봐요. 4kg의 우량아였던 저를 양수도 없이 낳으셨지요. 그래도 자연분만 하셨답니다. 급하게 찾아간 시골 할아버지 의사가 자연분만 신봉자셨다더라구요. 어머니는 그렇게 저를 혼자 낳으셨어요. 아버지는 감옥에 몇달 정도 있으셨던것 같아요. 사실 제가 이걸 안건 스무살이 넘어서 입니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오고 당장 일도 힘들고 쌀도 떨어지자 아버지랑 어머니는 아버지 고향에 내려가 농사일을 도와주셨다고 해요.마침 추수 기간이어서 일손이 많이 필요했나보더군요. 저희 할머니는 80이 넘으신 지금도 큰아들만을 엄청나게 좋아하시는데 아버지 말로는 큰아들을 낳고 할아버지께서 6.25 전쟁에 나가셔서 할머니가 큰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시집살이를 몇년간 하셔야했기 때문이라고, 그만큼 애틋한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찬밥 신세인 저희 어머니는 짧은 기간이지만 엄청난 시집살이를 하셨죠. 하필이면 제가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그래서 애기 시절 동네 아주머니들이 평강공주라고 불렀던 예민한 아기여서 애 울린다고 또 엄청나게 구박을 하셨답니다. 전 왜 그모냥으로 빽빽 울었는지 참 한심합니다. 제가 지금 정신을 가지고 어린시절로 돌아간다면 좀 안울텐데 말이에요. 어머니는 저를 보면서 집안 일꾼들 아침 점심 저녁 새참 등등 하루종일 밥을 하고 아버지는 농사일을 하셨죠. 그렇게 추수가 다 끝나고 품삯을 받아 돌아가려는데 할머니는 쌀을 주면 무거워서 가져갈 수나 있냐며 먹을꺼 한되박만 가져가라고 하셨답니다. 어머니는 그 말이 너무나 얄밉고 더러워서 쌀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저를 데리고 아버지와 다시 서울로 돌아오셨구요. 뭐하러 가서 그 고생하셨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당장 먹을것도 없으셔서 가신 걸테니 그 사정이 오죽했을까 싶기도합니다. 아이러니 한것은 그토록 저희 어머니를 서럽게 만들었던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금 저희 아버지가 돌보고 계시다는 거겠죠. 그토록 아꼈던 큰아들, 농사 짓는다고 땅을 물려받은 넷째아들, 대학을 나온 다른 자녀들이 아니라요.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는 제가 식히려고 놓아둔 목욕물에 퐁당 빠져서 온몸에 화상을 입었어요. 방앞이 바로 좁아터진 부엌이라 끓여놓은 물을 식힐 자리가 없었답니다. 전 왜 하필이면 오두방정을 떨며 방에서 뛰어나와 그 물에 퐁당 빠져버렸는지.. 저는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을 했고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가 죽는줄 알았답니다. 위기는 넘겼지만 아직 한참은 더 입원에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돈이 없다고 아버지가 걍 데리고 나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때 좀 더 오래 입원해 있었으면 제 몸에 흉터가 훨씬 줄어들었을 텐데 하고 안타까워하시죠. 지금도 흉터때문에 짧은 옷은 안입는데 지금이라도 성형수술 비슷한걸 해볼지 흉터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할거 다하고 잘 살고 있으니 귀찮은데 걍 살지 지금도 가끔 고민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제가 그동안 하나하나 줏어들은 이야기를 조합해서 재구성한 것이고 이제부터는 제가 기억하고 있는 제 어린시절 이야기입니다.

제가 7살 무렵 저희는 여전히 집 입구에 부엌이 딸린 단칸방에서 네식구가 살았습니다. 주인집에도 저와 한살차이가 나는 남매가 살았는데 아마 저희 어머니와 그 주인집 아줌마와 나이도 비슷했겠죠. 한사람은 주인집이고 한사람은 뒤쪽 단칸방에 세사는 처지였겠지만 말입니다. 어느날은 제가 주인집에 달린 베란다에서 놀다가 주인집 고추장 항아리를 실수로 밀어버렸습니다. 고추장 항아리는 반층 아래 마당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죠.  전 그날 정말 엄청나게 혼이 났습니다. 전 어렸을때 부모님께 혼이나면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타입이었고 그날도 잘못했다고 엉엉 울면서 혼이났죠. 그런데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신 한마디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나한테 잘못했다고 하지말고 주인아줌마 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빌어라" 사실 그냥 평범한 말일 수도 있지만..  저희 어머니가 잘못했다고 비는데 이렇게 반응하는 분이 아니었거든요. 제가 이렇게 혼난적도 처음이었구요.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혼이 나고 있는건 부주의하게 고추장 항아리를 깨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집' 고추장 항아리를 깨먹었기 때문이라는걸요.

 

전 어리지만 눈치가 없지는 않았는지 어렸을때는 항상 장난감을 보고도 "엄마 우리 나중에 부자되면 저거 사주세요" 라고 말을했답니다. 제가 생각해도 기특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어렸을때 저희 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셨어요. 그리고 이삿짐을 나르는 일톤 트럭 운전도 하셨습니다. 버스 운전은 하루 온종일 일하고 다음날 온종일 쉬는 그런 시스템인데 다른 버스 운전 기사들이 쉬는 날에 저희 아버지는 용달 운전을 하셨어요. 소위 요즘 말하는 투잡을 뛰셨던 거죠. 에브리바디 헤이츠 크리스 라는 미드에 보면 투잡을 뛰는 아버지를 가진 흑인 서민 소년인 크리스가 나오는데 크리스가 귀엽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투잡을 뛰는 아버지의 모습도 동질감이 느껴진달까 좋더군요. 심심하신 분들은 꼭 한번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어느날 부터인가 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면서 모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셨고 버스에 그 자격증의 강의 테입을 틀어놓고 들어가며 운전을 하셨죠. 그래서 결국엔 버스 운전은 그만두시고 그 일을 하게 되셨구요. 그 와중에도 때때로 아버지는 저와 제 동생을 자전거 뒤에 태우시고 한강이며 여기저기 공원이며 데리고 다니셨고 제가 국민학교 저학년때 언젠가는 간단한 수술로 일주일정도 집에 계셨는데 제가 사오는 고무찰흙으로 이것저것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양들을 만들어주셔서 매일 매일 하교길에 고무찰흙을 사오는게 신났을만큼 가정적인 분이셨죠. 사실 요즘은 우리 아버지 고집센 다혈질 꼰대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때도 가끔 있지만 이때를 떠올리면 저희 남편이 저희 아이들에게 이정도 아버지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저희집은 가난했지만 고생은 제가 아니라 저희 부모님이 하신거고 사업을 하신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흔한 빨간딱지 한번 집에 붙는다던가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다난다던가 하는 일도 없었고 가정적인 부모님 밑에서 행복하게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국민학교때 이후에는 형편도 점점펴서 집도 마련하고 다들 힘들었다는 IMF때는 집에 가장 돈이 많이 들어온 시기가 되기도했구요. 그렇다고 지금 수십억 부자가 된건 아니지만 끼니걱정 없이 백억 부자 이야기를 들어도 부럽단 생각이 안드니 이정도면 행복한 인생이죠.

 

고등학교땐가는 아버지가 모 대기업 임원이셨던 친구가 저를 배려한답시고 한 말에 상처를 받기도했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온통 잘난 집안을 가진 친구들 덕분에 위축된 기분을 느끼던 그래서 백만원에 육박하는 과외비를 온통 옷을 사입느라 다 쓰던 시절도 있었지만 살며보니 꼭 많은 돈이 많은 행복을 의미하는건 아니고 다 갖춘사람은 다 갖췄기 때문에 갖출 수 없는 것들이 꼭 있더군요. 그러니 지금 제 이야기를 들으시는 것처럼 그냥 지나가는 어떤 사람의 어떤 인생 이야기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폭은 한없이 좁죠. 제 주변만해도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고있고 쉬운 예로 요즘 결혼의 10%가 국제결혼이라는데 제가 아는 사람들중에는 10%가 아니라 1%도 되지 않으니 제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 세상인가요. 그래도 온라인을 통해서 신이내린 공기업에 다니는 분 부터 시작해서 편의점 알바하시는 분, 회사에 다니는 분, 가정주부인 분 등등 다양한 사람들을 많나게 되니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분이 잘먹고 잘사는게 마냥 그분 혼자 잘나서 그런것도 아니고 힘든분들이 힘든것 역시 마냥 그분들이 게으르거나 어리석어서가 아니죠. 그냥 다들 가지고 태어난 운이 조금씩 다른거고 또 그 운의 일부는 노력으로 앞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는거고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 다양한 경험과 인생을 체험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사는 모습을 엿보는 것도 좋지요. 그 글에 배려가 부족하다면 부족한대로 역시 사람은 다갖출수는 없구나 하고 생각하고 힘든 내용이라면 서로 보듬고 그런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겟죠. 기회삼아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었던 저희 부모님의 고생 이야기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사적인 이야기인데다가 무엇보다 제가 아닌 부모님의 고생이야기라서 상황에 따라 글을 내리게 될 수 있는것 미리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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