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 부러울 때

2014.06.11 02:49

니베아 조회 수:3801

지난 주말에 퀴어퍼레이드로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들썩였습니다.
해묵은 동성애 지지/ 반대(?) 논란 부터 일부 종교 단체나 보수단체 사람들에 대한 얘기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이성애자들도 열린 마음으로 퍼레이드를  참여하거나 관람하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도 동시에 확인할 수가 있었지요.


하지만 정작 퀴어인 저는 그 자리에 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게이라고 해서 꼭 가야하거나 참여해야할 의무가 있는 건 전혀 아니지만
저도 올 해는 애인과 함께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었거든요.

가지 못 하게 된 이유는 애인이 나름 심각한 수술을 했기 때문입니다.   병원의 위치도 그렇고 애인의 가족들이 애인을 간병하거나 돕기가 애매한 상황인지라
거의 매일 애인 곁에서 간병을 해야 했고요.

가족이라지만 나이가 많으셔서 본인 몸을 챙기기도 어려우신 애인의 어머니나
직장을 나가야하며 자신들의 가족이 있는 애인의 형제들은 사실 큰 도움이나 잦은 방문은 어려웠고,
매일 간병을 해야하는 건 친한 후배라고 그 쪽 가족들에게 알려진 제 몫이었습니다.

오늘로 보름 정도를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병원에 있다가  오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데
하루 하루 갈 수록  이 쪽으로서의 삶이 많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애인과 연애를 한 지 십 몇 년이 됐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서로의 삶에서 한계를 긋고 그 선을 넘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애인의 가족들에게 저는 앞서 말한대로 그냥 친한 동생일 뿐이고
제 가족들에게 제 애인은 주기적으로 만나는 게임 동호회의 멤버 중 한 명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나이차가 꽤 있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나 설정을 붙이기도 어렵거든요.

당연히 둘 다 집에 커밍아웃을 할 상황은 아닙니다. 할 생각도 없고요.
용기가 없다거나 그런 문제보다도... 서로의 부모님들에게 줄 충격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그리고 가족의 상황 들 때문에 아마도 2~30년이 지나도 같이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도 해보질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 상황이 나쁘다거나 힘들다고 여기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이번 처럼 큰 일을 겪어보니
정말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참 부러운 거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하게 됩니다.


지난 주는 연휴가 꽤 좋았던지라 저희 가족의 경우엔 여행을 갔습니다. 일찍이 한참 전 부터 가족들에게 여행 일정이 공지된 상태였구요.

그런데 저는 그 여행에 동참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애인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다 입원을 했고
꽤 심각한 수술을 해야할 상황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부모님 및 형제들에겐 다른 이유를 둘러대면서
함께 가지 못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오래 전 부터 계획된지라 당연히 안 좋은 소리를 들었지만  가족들에겐
저는 평소와 똑같은 즐거운 얼굴로 아무 일도 없다듯이 웃으며 즐겁게 여행 잘 다녀오라고 손이나 흔들어줘야 했지요.

예전에 형제들의 배우자가 건강이 좀 안좋거나 일이  생기면 부모님이나 가족들은 당연히  서로를 걱정하고 챙겨주었지만
저는 오히려 평소와 다른 현재의 생활 패턴 때문에 가족들이 의심을 할까 걱정하며 몰래몰래 애인이 있는 병실을 오가고 있습니다.

형제 내외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됐을 때, 다른 가족들이 현실적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시거나  위로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애인이 상태가 매우 안 좋고 갑작스런 장기입원으로 인해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까  생계 걱정을 하는데도 
저희 가족에게 제 애인의 존재는 그냥 갑작스런 불행한 일을 겪은 이름도 모르는  온라인 동호회의 한 타인일 뿐이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저는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아는 사람이 이런 저런일을 겪는 다고 지나가듯이 말을 할 뿐이고
돌아오는 말은 무신경하고 당사자들이 듣기엔 상처가 되는 말들이었죠.

수술이 결정 됐음을 문자로 받았을 때,  애인이 있는 병원을 가는 지하철에서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좀 충격적인 결과였던지라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데도 계속 눈물이 흐르고 소리내서 울었습니다.

수술실에서 나오고 거동도 못하는 애인을 곁에 두고 여행을 간 가족들에게  같이 못 가서 미안하다고 전화를 하는 상황이 참 위화감이 느껴지더군요.
만약 제 애인이 저희 집의 사위나 며느리 였다면 이랬을까....  다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여행을 갈 수 있었을까 라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가족들에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가끔 건너 건너 얘기나 전해듣는 생판 남인 존재가 바로 제 애인이기에
그런 반응이나 이런 현실은 당연한 것임에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일을 종일 나가 있으면서  어디를 가있는지 무엇을 하고 왔는 지도  매 번 다르게 거짓말을 해야하고
같은 병실의  오지랖 넓은 환자들이나 그들의 가족들이   평범한 지인이 매일 와서 먹이고 씻기고 옆에 있는 모습의 이유를 물어 볼 때마다
설명해야 하는 게 피곤하고 지칩니다.


만약 저와 제 애인이 이성애자라서 모두에게 인정받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가족들도, 처음 보는 타인들도 지금처럼  서로를 대하진 않았을 거라는 점은 분명하니까요.




애인과 같이 살지 못 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도 괜찮았습니다.
형제나 지인들이 아이들을 가질 때도 부럽지만  할 수 없는 걸 알기에 또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리 힘든 상황이고 그 자체로 힘든데 가족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기는 커녕
일일히 변명하고 숨기고  아닌 척 하는 게 지칩니다.

저희가 부부였다면 혹은 인정받는 사이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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