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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있어요!!!


저는 후기글을 쓰면서 동림이 당연히 남파간첩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의견들이 달려서 조금 생각을 더 정리해보고자 추가로 글을 씁니다. 동림은 남판간첩이다 VS 남한 측의 인사가 북으로부터 회유를 당한 것이다 의 의견이 갈리는군요. 일단 영화에서 동림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플래시백이나 다른 명확한 정보가 나오진 않습니다. 


가장 큰 쟁점은 남파간첩이 안기부 해외팀 차장되기 VS 안기부 해외팀 부장이 간첩노릇 하기 중 뭐가 더 말이 되느냐는 것일텐데요. 둘 다 굉장히 낮은 현실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그래도 전자가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안기부 차장이 굳이 북한과 내통해서 대통령 암살을 꾸미는 대의나 이유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거든요. 만약에 남한 사람으로서 안기부 차장인 사람이 북한의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다면 왜 남한의 안기부로부터 등을 돌렸고, 그 회의로부터 암살을 결심하면서 '북한과 손을 잡은' 이유나 목적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서라면 본인이 안기부 차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준비하면 될테고, 북한과 손을 잡은 이유라면 그것이 분명히 묘사가 되어야 관객으로서 납득이 될 것입니다. 남한의 안기부 차장이 북한과 거래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 경제적 이익 같은 건 거의 없습니다.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요. 그렇다면 남는 것은 사상범인데, 남한에서 안기부 생활을 오래한 직원이 북한의 무슨 사상에 동조해서 자신의 모든 위치를 포기하고 북한을 위해 헌신하는지 그 변심의 계기가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북한에서 침투한 간첩이 안기부에 들어가서 차장까지 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왜 박평호가 동림 역할을 하는지는 더 명확해집니다. 북한 사람이 북한의 이익을 위해 남한의 지도자를 암살한다는 것은 당시 시대배경 상 전혀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이 경우에 의도가 훨씬 더 명확하죠. 아마 박평호가 굉장히 운이 좋게도 안기부에 잠입을 했고 그 때부터 안기부에서 승승장구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안기부의 고문 장면들을 어두운 얼굴로 바라보는 박평호의 반응은 단순한 회의가 아니라 '자신이 언젠가 당할지도 모르는' 그런 공포를 포함한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건 영화 외적인 이야기지만 이 부분을 이정재 본인이 출연작인 [신세계]에서 빌려온 것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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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호가 북한으로부터의 간첩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의 대칭적 구조로도 미루어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해놓은 인물은 황정민이 연기한 귀순 조종사 이웅평이라고 이 전 후기에서도 말했는데요. 그가 김정도와 대화하며 주장한 부분이 결정적입니다. 나는 국가를 배신하거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지도자를 고르고 버릴 수 있는 인민의 입장에서 선택을 한 거라고요. 이것이 제가 본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김정도는 남한 사람으로서, 남한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에게 반기를 들면서 그를 처단하고자 합니다. 박평호는 적화통일을 일으키려는 북측 지도자 김일성에 반기를 들고 전두환 암살을 최선을 다해 방해합니다. 이 행위를 이해할 때 박평호가 북한 사람이어야 자국민으로서 자국의 지도자에 반기를 드는 그 행위의 대칭이 정체성으로 완성이 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자신의 부하들을 처리하는 것도, 자신의 상관을 처리하는 것도 거의 대칭적으로 이뤄집니다. 박평호는 부하를 죽이고 상관은 죽게 되는 상황에 빠트립니다. 김정도는 부하를 죽게 되는 상황에 빠트리고 상관(안기부 부장)은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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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림의 정체성을 남파간첩으로 다시 한번 규정하고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생각해봤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남파 간첩이었다...  그는 남한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적이지만, 그의 정체가 밝혀지고 하는 일은 전쟁을 막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동림=박평호는 일종의 그림자 영웅의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남들에게 오해를 받고 구원자이자 가장 가까운 동지를 죽이면서도 그는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결과에 다다릅니다. 이 영화의 '믿을 수 없는 서술자'의 반전방식은 정체성을 초월한 영웅적 행위로 승화됩니다. 후에 그가 심판당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그는 완전무결한 영웅으로 승천합니다. 윤리적으로 그 끝맺음이 너무 말끔해서 나르시시즘의 의혹도 살짝 들긴 합니다.


남파 간첩이, 민주운동 열사의 작전까지 방해해가며, 남한의 대통령을 지키고, 자신은 끝내 처리 당했다... 이정재라는 배우의 이미지와 주인공의 위치 때문에 이 이야기의 이상한 아이러니가 오히려 가려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봐도 이 설정은 남파 간첩을 다루는 이야기로서 비현실적이라 느끼는 저를 오히려 돌아보게 됩니다. 간첩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쟁에 미친 사람이거나 강경파일리만은 없겠죠. 그러나 그 보편적 진리를 낯설게 받아들이고 북한군의 휴머니즘을 섣불리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강경파 혹은 전투광, 살인기계 같은 이미지 때문은 아닐지 자기점검을 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영화가 이웅평 귀순자를 보여준 것이겠지요. 체제로부터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본능은 모든 인간에게 다 동일하다고.


박평호를 북한인으로 놓았을 때 자유를 향한 이 망명의지는 더 선명해질 것입니다. 그가 남한인이었다면, 내통자의 정체성을 버리고 대통령을 지킨 영웅으로서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면 됐을 일입니다. 그러나 박평호가 북한인이라면 그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북한인이고 그는 단지 전쟁을 막고싶어서 일순간 조국에 반항했던 것이니까요. [헌트]의 이정재에게는 [신세계]의 이정재처럼 포기하고 몸을 담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는 북한이라는 국가와 인민들을 회의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박평호가 조유정에게 여권을 건네주는 엔딩이 다소 무책임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후세대에게 싸움을 계승시켜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싸움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그 말은 정작 싸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너무 무책임하고 정치적인 도피처럼만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박평호의 정체성을 생각해봤을 때 그의 피로가 비로서 실감이 됩니다. 그는 북한 사람으로서, 남한인을 위협하는 북한인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죄없는 남한인을 괴롭혀 북한인으로 만들거나 남한인으로서 죽게 만드는 원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유정은 이미 자신의 싸움에 휘말려 죽음의 위기까지 내몰렸던 사람입니다. 아무리 싸움이 숭고하다해도 박평호에게는 조유정에게 보상해야 할 책임이 있고 그가 맛보지 못한 자유의 대리자를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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