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댄스를 배운지 열달째입니다.

처음엔 몸통을 아무리 흔들어도 힙스카프에서 짤... 짤짤... 빈약한 소리만 나길래 코인이 촘촘하게 달린 만원 더 비싼거 살 걸 하며 애꿎은 연장탓을 했지요.

그간의 피나는(?) 수련과정은 대체로 당사자에게만 의미있기 때문에 생략하고요.

여하튼 시간이 흘러 기초적인 동작들은 몸에 익었습니다.

검소한 가격의 힙스카프도 지금은 용케 촬촬촬촬촤륵촤륵 소리를 제법 냅니다.

기본 동작이 조금 수월해지니 이젠 자신의 관능미를 가늠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골반을 조금 더 밀고 당기거나 어깨를 세차게 굴려 포즈를 크게 하는건 연습하면 어렵지 않지만 표정이 가장 문제예요.

포부만은 이 교실의 팜므파탈인데 막상 음악이 시작되면 내 안의 세헤라자데가 급격히 쪼그라들거든요.

전면거울 속 춤추는 제가, 특히 내 표정이 어색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눈을 내리깔고 목 아래 동작만 쳐다보거나, 심지어 시선을 먼곳으로 돌려도 보았지요.

반면 우리 선생님의 춤사위는 몹시 관능적입니다.

특히 자신감있는 표정이 주변을 압도해요.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도도한 미소를 짓는 선생님을 보면 멋있어서 나도 모르게 침이 주르륵ㅠㅠㅜ

섹시한 표정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 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흠흠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거울 속 제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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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이른바... <남궁민 안보이면 안경써라. jpg>

그렇다면 이번엔 꽃같은 미소의 다른 수강생을 벤치마킹해서 치아를 여러개 드러내고 웃어보기로 합니다
...만 이것도 어색해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복잡한 스텝을 밟거나 혼자 동작을 틀리면 희뜬 표정이 영락없는 사람죽이는 인형 처키의 신부라 거울 보고 두 번 흥분하게 됩니다. (심약자를 위해 사진은 생략)

그밖에 연예인셀카에서 흔한 아련한 표정도 해봤지만 내가 하니 어쩐지 똥마려운 강아지같은 느낌이... ;ㅁ;


여러번의 시도 끝에 저는 차라리 무표정이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활화산같은 열정과 끓어오르는 정염은 모공 깊숙이 넣어두고서, 음악이 울리면 멍때리는 거울 속 나를 노려보며 혼수상태의 세헤라자데를 열심히 깨운다는 심심한 바낭이었습니다.

P.S. 1: 무플걱정에 이것저것 붙여봅니다.

사진은 오리엔탈 벨리댄스의 거성 안수야인데요, 올 초 내한공연도 왔어요.

찬조공연 끝나고 안수야가 조명 아래로 걸어나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무대가 끝나있음 ㅠㅠㅜ

그녀는 춤신입니다.


P.S. 2: 벨리댄서들이 왜 긴머리를 고수하는지 알겠어요.

머리채도 춤의 일부분이더라고요.

머리를 더 기르고 싶지만 두피염 때문에 그럴 수 없어 구슬피 웁니다.

내세엔 짐승처럼 풍성한 머리칼의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리 ㅠㅜㅜ

 



P.S. 3: 기왕 배운거 보람도 갑절이 되게 언젠가는 요 춤을 유용히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 대체 언제 어디에서 적절할까요? ;ㅁ;

회사 야유회나 아빠 환갑잔치에서 장기자랑으로 추는 상상을 하다 마시던 아이스커피를 뿜었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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