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만에 이용한 싱가폴 에어의 기내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은 정말 좋더군요.  여름에 이용한 아시아나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전체가 다 on-demand 방식이고, 비디오도 오디오도 편수가 엄청나서 보고싶은 것만 골라도 열 시간 남짓의 비행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에요.  좌석마다 있는 스크린도 꽤 큽니다. 단점은 이걸 보느라 잠을 못잔다는 점.  어쨌든, 고르고 골라서 미국-한국 노선에선 셜록 세 편을 다 봤고, 한국-미국 노선에선 미국에서 보기 힘든 걸 보자는 생각으로 방자전, 시라노 연애 조작단, 2010년판 오오쿠를 봤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동안 딱 한 편 본 영화가 쩨쩨한 로맨스였는데, 같은 시기에 본 한국 영화 세편 모두에 우연히도 류현경씨가 나오더군요.  이 배우만 한정하자면, 쩨쩨한 로맨스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방자전은 기내용이라 많이 잘렸는지 감정선이 잘 이어지지 않더군요.  영화 자체에 대해 뭐라 얘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요.  야한 장면이라곤 조여정의 등, 류현경의 어깨가 나온 게 전부거든요. (응? 뭔가 아쉬워 하는 것 같네?) 조여정은 잡지모델을 하던 시절부터 쭉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렇다할 보람이 없었는데 (특히 이휘재랑 우리결혼했어요에 나왔을 때는!!!!!! 이건 뭐!?!?!?! 내가 이러라고 그동안 주목하고 있었던 게 아닐텐데?!?!?!? 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요. 휴.) 지금까지 맡았던 중에 제일 어울리는 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궁금한 건 방자가 30세 근방이면 춘향이는 도대체 몇 살? 설마 16세는 아니겠죠.


(아래는 약스포 포함)


쩨쩨한 로맨스는 눈오는 밤, 강남에서 밤 10시정도에 혼자 봤습니다.  아아... 짙은 우울함의 그림자가. 그래도 다행인 건, 평일이었어요.  여자분들이 친구들과 많이 보시더군요.

쩨쩨한 로맨스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내용상 빈 곳들이 좀 있는데, 편집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은 부분도 있고, 시나리오가 원래 그렇게 쓰여졌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있습니다. 

다림의 실체에 대해 정배가 반응하는 방법은 스크루볼 코메디의 남녀 캐릭터가 좋아지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일면 분명히 처녀 판타지를 품고 있어서 어떤 부분에서는 '이게 뭐야!' 싶기도 하더군요. 다림의 글로 배워 말로 하는 섹스 허세도 좋은 부분도 있는 반면,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대강 넘어간 것 같은 부분도 보였어요.  이제와서 어디가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하지만 최강희는 반짝거리는 부분을 꽤 많이 보여주더군요.  특히 옆집 오빠가 치던 피아노곡이 들리던 부분에선 '뭐 이런 구식 대사가 다 있어'하다가도 최강희가 연기하는 걸 보면 '그 대사를 살리네'하는 생각이.  이선균은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었는데, 캐릭터의 감정 변화가 너무 기계적이어서 할 수 있는 게 좀 한정되어 있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멋있으라고 넣은 장면들 보다는 찌질한 생각을 하는 부분이 오히려 괜찮았죠.  그동안 드라마에서 괜찮은 남자 역을 하는 건 많이 봤쟎아요.  그러고 보니 최강희, 이선균은 두번째로 만난거군요.  2008년의 달콤한 나의 도시에 이어서.

정배 아버지에 얽힌 얘기는 좀 이상해요.  그림도 이상하고, 액수도 이상하고, 번듯한 갤러리 관장 아저씨가 무슨 조폭 사채업자 같은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사실은 그 아저씨가 입은 반팔 남방, 동네에서 아저씨들이 여름에 나무 그늘 아래서 장기 둘 때 입을 것 같은 그 남방, 그게 정말 거슬렸어요.

아, 추가로 최강희가 입은 보일까말까 아슬아슬한 옷들을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 입었으면 도대체 어떤 분위기가 났을까 싶더군요.  예를 들어 함은정이라든가 빅토리아라든가. (이걸 왜 궁금해 하지!?!?) 최강희니까 그렇게 입고 나올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한국영화 세 편 중에는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제일 좋았어요.  영화를 다 본 후에도 희중이 어떤 사람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요.  그게 영화의 단점은 아니에요.  단지 이 사람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걔 좀 이상해. 뭐가 뭔지 모르겠어." 라는 생각이 들 것 같은 느낌이죠.



마지막으로 오오쿠.  요시나가 후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니노미야 카즈나리, 시바사키 코우, 호리키타 마키, 타마키 히로시 등이 나옵니다.  타마키 히로시는 비중이 꽤 있는데도 특별출연이더군요.  일본에선 2010년 하반기에 개봉했고, 아직 DVD, 블루레이는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만화를 안보신 분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오오쿠는 쇼군을 위한 내명부, 하렘입니다.  이미 오오쿠라는 제목의 일본 드라마와 영화도 여러 편 있구요.  요시나가 후미의 오오쿠가 다른 점은 남녀가 뒤바뀌었다는 거죠.  쇼군이 여자고 오오쿠에는 삼천 명의 남자들이 있습니다.  만화 자체는 완결되지 않았고, 영화는 만화의 첫번째 에피소드를 다룹니다. 

이 영화의 제작 목적은 너무 분명해요.  삼천 명의 남자를 거느린 쇼군에 대한 (일단은) 결말이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화는 충분히 유명합니다.  상도 받았죠.  그러니까 얼른 예쁜 남자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아아,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시기와 질투로 아웅다웅하는 삼천 명의 남자들 틈에 있다면!!!! 이 그림에 타마키 히로시도 집어넣자!!!! 뭐 이런 겁니다.  시바사키 코우는 두 명의 쇼군 중 하나로 나옵니다.

사실 얘기 자체는 설정에서 기대할 수 있는것만큼 자극적이진 않아요.  일단 섹스에 미친 개망나니 쇼군이 나오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삼천명의 남자들의 아웅다웅은 김이 빠지죠.  (그래봐야 삼천명이 독수공방 하는 얘기일 뿐이쟎아요.)   요시나가 후미는 바로 그 김빠지는 아웅다웅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영화의 제작 의도대로 그 상황에 처한 니노미야 카즈나리를 보는 건 충분히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원작의 팬이거나 니노의 팬이거나.  둘 중 하나거나 둘 다인 사람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얘기.  그 외의 사람이 보면 좀 시큰둥 할 수도 있구요.

자극적인 오오쿠 얘기라면 2005년작 일본 드라마 오오쿠, 화의 난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개망나니 쇼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이야기거든요.  그래야 아웅다웅이 좀 의미가 있죠.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