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제목을 지을 능력이 없어서 그냥 늘어놨네요.




 제가 심심하면 들르는 여러 사이트중에 '스레딕' 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홈페이지의 구성이나 모습, 그들이 취하는 어투는 일본의 2ch와 별 다를바가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스레딕이 좀 더 재미 없다는거겠죠.


 얼마 전 스레딕의 성인 게시판에서 일어난 소위 '인증 사진'이 인터넷 상에서 유포된 일이 있습니다.

 상당히 유명했던 사건이었던 만큼 많은 유입인원이 생겨났죠. 당연히 뭐만 유츨됐다는 소리만 들리면 소위 '앙망한다는' 그들의 유입도 늘어났습니다.

 한참 화제를 이룬 사건이 수그러들자 호기심에 들어온 사람들은 재미없다며 떠나갔는지 북적대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요상한건, 문제의 그들은 흥미를 잃지 않았다는거죠.



 스레딕엔 괴담게시판이 있습니다. 그곳에 상주하는 사람들은 '자작이라고 외치지 않는 한 사실이라고 믿어준다.' 라는 암묵의 룰을 지키고 있었구요.

 괴담은 특히 그편이 재미있죠.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떠나 텍스트에 상상력이 가미되었을때 갖게되는 생명력은 엄청나니까 말이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증해라'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집이 이상하다.' -> '집 사진을 인증해. 그럼 믿어주지.' 

 '소리가 들린다.' -> '녹음해서 인증해라.'

 'USB를 주웠는데 이상한 사진이 있다.' -> '내용물 인증해라.'

 

 당연히 인증이 제대로 올라올리는 없습니다. 괴담은 말 그대로 괴담이니까 말이죠. 인증을 하면 하는대로 상상력이 배가되겠지만, 안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애초에 '괴담'에 인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죠. 하지만 그들은 꾸준히 인증을 요구합니다. 인증을 하지 않으면 괴담을 시작한 유저에 대한 인신모독이 가해지죠. 

 열심히 이야기를 보던 사람들은 인신모독을 해대는 유저를 향해 비난을 하기 시작하며 글쓴이에게는 위로를 행합니다. 그럼 이번엔 위로를 행하는 유저들을 향해

 인신모독이 들어갑니다. 가서 보고있으면 버라이어티하기 그지 없어요. 어느덧 괴담으로 시작되었던 글타래(그곳에선 '스레'라고 합니다만..)는 키보드 배틀의 장이 되었다가

 '이건 아니다. 묻자.' 라며 다른 유저들에 의해서 묻혀버립니다.

 처음엔 쓰다만 소설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드는겁니다.




 '이거...글타래 주인에 대한 질투인가?'



  

 스레딕의 텍스트는 대부분 '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디 풀어놓을데가 없어서 이곳에 썰 풀려한다. 듣는 사람들 있나?' 라는 형식으로 시작됩니다.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는 것으로 글이 시작되면, 당연히 사람들은 '들어주기 위해서' 글타래를 선택하고 들어옵니다.

 이윽고 글타래 주인이 풀어놓는 이야기에 대해 사람들은 '무서웠겠다.' '힘들었겠다.' 등등의 리액션을 취합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찬찬히 진행됩니다. 주인의 이야기와 호응하는 유저들이 적당이 어우러지며 글타래가 구성됩니다.

 이런 호응은 글타래 제목의 옆 글 갯수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200~400 정도 되면 꽤나 호응이 좋은 편인거죠. 이 정도 호응이 나타나는 글타래에는

 기다렸다는 듯 그(혹은 그들)이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요구하기 시작하죠.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증거'를.


 글 주인이 증거를 내지 않으면 '이봐! 안그래도 내가 의심하고 있었지. 이건 어떻게 봐도 자작인데 어떻게 이런 글에 속아넘어가냐? 이런 XX들..' 이라

 말하기 시작합니다. 

 '주인이 먼저 자작이라 이야기 말하기 전까지..' 뭐 이런 것도 없습니다. 이야기의 전개와 구성이 허술해서 그냥 봐도 자작인데 무슨 자작 선언을 기다리냐는 반응이죠.




 .......이게 아무리 봐도  '왜 저따위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는 관심을 가득 주면서 내가 하는 말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건데?'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더군요.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 해보자면, 저렇게 말싸움을 하는 과정중에 '아! 나 관심받고 있어! 이 글타래 주인이 받을 관심을 내가 받고 있다고!!' 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더란 말이죠.


 그러면서 동시에 교회를 다니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도 오버랩 되더군요.



 

 문제의 그들도 기독교(한국 특유의 기복신앙이 지배하는...)도, 그 진원지는 비슷한 곳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관심 말이죠. 타인이 나에게 가져주는 관심.

 그러다보니 뭔가 둘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독교는 그 관심의 갈구를 '절대자'에게, 문제의 그들은 관심의 갈구를 일부에겐 신처럼 모셔지는 '그 분'에게.

 그 절대자를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을 알리길 원하고, 문제의 그들은 고인에 대한 능욕을 '인증'을 함으로 알리길 원하고....

 '해주실거야.'를 입에 달고 살게 되고...


 참, 오묘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교류와 관심을 '끊도록' 만든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던게 어느 시기 즈음이었나?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참으로 오묘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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