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2013.09.09 14:39

좋은사람 조회 수:1237

제목을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간단하게요. 

저는 새벽에 잠이 안 와서 듀게 글을 읽다가 요즘 든 생각을 간단히 써 봤는데 이게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네요. 


1. 

우선 저 개인적으로는 얼굴 모르는 남이 게시판에서 글쓰다가 어법에 틀리든 맞춤법을 틀리든 굳이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건 말씀드리고 싶어요.

매우 친한 친구/지인이라 저 사람이 어디 딴 데 가서 틀리게 쓰다가 망신이라도 당하면 좀 안쓰럽지 싶으면 친소관계에 따라 알려주기도 하고 그러겠네요. 

제 트윗 팔로워 중에 자기도 트윗 멘션으로 맞춤법 고치고 하는 사람 있어서 - 그 사람은 제 오프라인 지인도 아니지만 가끔 그 사람이 틀리면 알려 줘요. 

맞춤법 지적질은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틀린 맞춤법을 보면 거슬리고, 스트레스 받지만 얼굴 한 번 못 봤고 앞으로도 얼굴 볼 일 없는 사람들이

한글 맞춤법을 틀린다고 해서 굳이 고쳐주겠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기본적으로 전 게으르고, 친한 사람 아니면 별 관심없이 살아서 굳이 타인의 언어 생활을 친절하게, 내 스트레스를 못 견디니까 뭐 이런 이유로 고쳐줄 이유가 별로 없어요.


언어에 정서가 담긴다는 건 그런 의미겠죠. 

너와 내가 만나서 글로 소통하는 데에 친절함이 드러난다든가, 잘난 척이 드러난다든가 하는 거요.

글은 생각보다 정직해서 그 정서를 귀신같이 뿜어내더라고요. 


2.

며칠 전 제가 팔로우하고 있는 트위터러 한 분이 젓갈을 젖갈로 쓰셨어요. 그 분이랑 저랑은 멘션이 오간 사이도 아니고, 그저 제가 팔로잉을 하고 있을 뿐인 관계죠. 

그 분이 꽤 잘 팔리는 책을 쓰신 저술가가 아니라면 제 타임라인을 흘러가는 수많은 틀린 맞춤법 사용자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냥 무시했을 거에요. 대부분 그렇듯이요.

그런데 그 분은 교양서 저술가였고, 제가 공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안 틀렸으면 하는 맞춤법을 떡 하니 틀리신 거예요.

솔직히 좀 짜증났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썼던 것처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드러나다를 들어나다로 쓰고, 당최를 당췌로 쓰고, 착잡하다를 찹찹하다로 쓰고 있으니까요. 

저는 그걸 틀리게 쓰는 개인개인이 아니라 그런 글자가 통으로 여기저기서 보이는 게 스트레스입니다.  

그건 제가 그냥 말 그대로 맞춤법에 예민한 사람이라서예요. 

제가 틀리는 것도 가능하면 안 했으면 좋겠어서 자주 사전을 찾고, 블로그에 써 둔 글을 다시 되짚어 읽다가 틀린 맞춤법이 있으면 고칩니다.

누구나 그런 부분 하나씩은 있는 거요. 회사 동료가 멋진 수트차림에 흰 양말을 신은 걸 못 견디는 것과 같은 그런 종류의 예민함이요.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걸 안 하면 되는 부분이고, 그걸 안 고친다고 해서 또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부르르 떨 것도 없는 그런 부분이죠.

하지만 친한 사람들한테는 '아우, 흰 양말을 신다니 어쩌면 좋아~!'라고 말할 수 있고, 굳이 또 그걸 본인에게 지적할 건 없는 그런 부분 말입니다.


그래서 전 가족들을 좀 많이 괴롭힙니다. 티비 보다가 틀린 맞춤법 나오면 정말 적나라하게 뭐라고 하거든요. 

티비 보는데 내용과 관련 없는 자막 틀렸다고 궁시렁대는 걸 참아주는 가족들한테 고맙네요. 


그래서 지난 새벽에 듀게에 하소연 겸 글을 하나 적은 거죠. 

마침 맞춤법에 관한 글이 하나 있기에, 그 트위터러의  젖갈이 떠올랐거든요. 

맞춤법 지적'질'의 언어 폭력이나 강압이나 뭐 그런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러시 앤 캐시' 새 광고가 겉으로는 매끈하게 잘 빠진 게 오히려 좀 소름돋게 싫더라~"라는 수준의 잡담이었어요. 


3.

그리고 몇몇 글들이 올라왔어요. 

전 맞춤법 지적질이 정당하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맞춤법이 300년 뒤에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할 절대 규범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앞선 글의 댓글에도 적었듯이, 

숟가락이 ㄷ받침이고 젓가락이 ㅅ받침인 걸 결정하는 규범이라면 지켜야 하는 게 맞지 않나는 생각이에요. 


말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있는 말의 뜻이 변하기도 하고, 말이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국어사전 편찬에 관여하시는 분한테 21세기 새로이 사전에 들어갈 말로 가장 유력한 건 뭘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분의 대답은 '샤방샤방'이었습니다. 아직 '샤방샤방'은 국어사전에 수록된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언중은 그 말을 매우 정확하게 자유로이 구사하죠. 

그걸 샤방샤방의 정서가 사라진 무언가 국어사전에 수록된 말로 바꾸어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사귀다는 사겨라고 말하고 쓰지만, 사귀어라고 써야 하는 동사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죄다 사겨라고 써요. (동일한 변화로 바뀌어-바껴 도 있죠)

사겨라고 쓸 뿐만 아니라, 사귀는 사이라는 말도 사기는 사이라고 쓰기도 하더군요. 이건 완전히 멘붕한 표기긴 했는데... 

사귀다라는 걸 사귀어가 아니라 사겨라고 쓰면서 사귀다 동사의 ㅟ발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더라고요.

우리 말 발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국어학자들 사이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부분입니다. 

풍부한 우리말을 위해서 사투리를 보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표준어 발음의 풍부함도 사라지고 있어요. 

(저는 사투리를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투리의 정겨운 표현이나 어미가 얼마나 다채로운 우리말을 만들어내는지 경험했어요. 

그렇지만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중들이 언어를 바꾸어 간다면 그에 따라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무작정 따라가야만 하는 걸까요? 


게시판에서의 개인적인 맞춤법 지적질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언중들의 언어생활의 규범에 관해서까지도 그 부분은 내가 굳이 지켜야 할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저는 좀 당혹스러웠어요. 


깃발 들고 이 말은 사전에 올랐으니 반드시 그렇게 써야 해!라고 외치는 게 아닙니다.

그럴 깜냥도 안 되고, 언어란 그런 방식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이 곳엔 소통이 안 될 만큼 외계어로 쓰인 글은 없습니다. 대부분 찌개를 찌게로 쓴다든가, 그런 종류의 것들이죠.

반쯤 놀림삼아 예로 들게 되는 '오회말카드' 같은 표기는 보기 힘들어요. 

멋진 수트에 흰 양말 신은 회사 동료 같은 느낌입니다. 

굳이 너 그렇게 신으면 좀 어색해, 매너가 아니라고 들었어 라고 지적하기도 그렇고, 그냥 무시하기엔 그 잘 빨린 하얀 양말이 눈을 부시게 해서 거슬리는 거요. 


4.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개인적인 글에서의 맞춤법 지적'질' 태도에 대한 이런저런 논의는 양편의 의견이 다들 납득하시지 않나 싶네요. 


글 내용과 전혀 상관없이 첫 댓글부터 불쑥 지적하고 사라지거나 하는 건 무례하다는 거죠. 

때로는 공개적으로 자기가 틀린 걸 지적받고 싶지 않을 수 있으니 굳이 남모르는 타인의 틀린 맞춤법을 고쳐주고 싶다면,

분위기 파악을 좀 하라는 거고요. 


그리고 틀린 맞춤법을 써서 남모르는 타인한테 지적을 받았다면, 기분 나쁜 부분이 있을 때 이래서 기분나쁘다든가, 

알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미끄러졌다든가 뭐 이런 얘기를 하면 좋다는 거죠. 

맞춤법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선생질'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해하면 좋고요. 


(+)

저도 카톡 채팅창이나 문자, 네이트온 같은 걸로 수다떨 때는 마구마구 틀리게 씁니다. 

두세 번 퇴고하고 인쇄하는 책들도 오탈자가 나오는데, 30분 가량 자판 두드린 글이 완벽하게 맞춤법 다 맞고 어법까지 정확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요. 

문장부호까지 완벽하게 다 맞게 쓰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 글로 가득한 게시판을 원하는 것도 아니에요. 가능하지도 않고요.

영화 자막에서 오역에 가까운 의역에 투덜대는 것처럼, 수시로 튀어나오는 틀린 맞춤법에 투덜댄 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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