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어에  썩 능통하지 못합니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전공자도 아니고 교양영어 수준으로 문법강박증에 시달리는 평범한 실력이지요. 그럼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영어권 유럽에서 몇 년 살고 왔다는 이력이 플러스가 되어 해외관련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겐 상당한 긴장감과 부담감을 주는 동시에 그만한 성취감을 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 현장(출장)체질이고 실전에 무척 강하다는 거에요. 그나마 다행이지요.

  

   그건 그렇고, 영어의 세계는 얼마나 방대하고 깊고 오묘한 지, 아직도 모르는 단어, 숙어가 수두룩하고 그때마다 손바닥 만한 수첩에 깨알같이 적습니다. 틈나는 대로 다 마스터 하고 암기해야지 하고.  그런데 초기의 결심과는 달리 그렇게는 못했어요. 그럴 시간에 틈마다 듀게질 하느라;;; 어쨌든 올해도 다 저물어 가는 마당에 저의 무식을 고백하자면, 이 일을 하면서 안 건 아니지만 저는 영단어 '행복'에 비교급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무척 충격을 받았습니다. 행복은 명사형과 동사형이 있을 뿐 고정불변의 감정적 고유명사가 아니던가 믿었던 제게. Happier-더 행복한. 아, 맞아요. 저는 이것을 처음엔 원래 인간들이 타인과의 비교를 동력으로 살아가느니 비교급이 있을 수 있겠구나. 이것이 다른 사람보다 행복한 상태말고, 자신의 이전보다 더 행복한 지금의 상태를 비교할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바보였어요.

  

  그로부터 한참 뒤, 이번이야말로 정말 '버락 오바마' 의 '버락' 을 '버럭범수의 버럭' 쯤 으로 착각하고 있다가 그게 실명이라는 사실을 최측근으로부터 듣고 제 무식의 극치에 야유와 비난을 받던 기억보다 더 놀라운 것은, 행복의 최상급을 뜻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습니다. Happiest-가장 행복한.

 

    비교급이 있으면 당연히 최상급을 생각했어야 하건만 그보다 더 늦게 이 단어를 접하고 저는 스스로의 무식을 부끄러워 하기보다는 조금 울었던가요. 가장 행복한, 이라는 상태는 제겐 마치 한 번도 경험도 본 적도 없는 상황인 것 같고 사실은 그것은 늘 과거일 뿐이었던 것 같고. 앞으로 저의 인생에는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에. 얼마전, 어쩌다가 예전 게시판의 제가 쓴 글들을 다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의 일상이 절망적이었음에도 나는 이런 뚜렷한 생각을 이런 빛나는 느낌을 가졌었구나, 이제 죽어도 다시 이런 글을 쓰지못할 거라고 직감하는 지금의 내 삶은 충분히 불행하다고.

 

    모피와 다이아에 환장하는 속물답게 다른 모든 부분은 실컷 탐하고 과잉으로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공급해대면서  한 번도 행복을 탐해보지 않았다고 자부한 내 자신의 정신적 허영에 대해, 나는 그렇게 천박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위무 하던 제 허위의식에 대해 통렬히 자아비판하고 반성합니다. 저는 늘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보다 춥고 어둡고 냄새나는 것들이 눈에 먼저 밟힌다고 말한 적 있고, 이것은 태생적으로 앞으로도 그러할 테지만, 이미 충분히 크고 좋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그보단 역설적으로 불쌍하고 외로운 나 자신을 연민하는 고질적 습벽으로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나 자신을 기만하던 시절들에 대해 겸손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차갑고 무심하고 오만했던 건 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저한테 그렇게밖에 방어기제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제 자신이었다고요.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저도 이미 견딜 수 없을 만큼 벌을 받는 날들이었다는 것만은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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