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분 사진이 올라온 다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서 감정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요. 그 기자분이 ‘비키니 사진을 올린 여성들에 대한 비난이 과도하다고 생각되어서’(기사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에는 여전히 ‘그 얘기가 아닌데’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 기자분의 사진이 다른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희석하는 문제가 있다고도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 기사 밑에 달린 ‘아, 어머니...’라든지 ‘눈 버렸다’ 등의 댓글을 보면서는 이 기자분이 나타내고 싶어 하는(그럴 것이라고 제가 생각하는) “쿨”함을 알 것 같아서 그 댓글들에 대해서만큼은 반박하고 이 기자분이 이런 사진을 올릴 자유를 옹호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죠.

 

어쩌면 나꼼수팀이 사과를 안 하는 게 나을 것도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나꼼수팀과 함께 그들의 농담을 즐기면서 자발적으로 비키니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에 대한 반응 또한 즐거워할 어떤 여성들의 자유랄지 권리랄지 그런 게 제약되는 결과 또한 바라지 않거든요. 어떤 분들은 그 사진을 올린 여성들이 남성중심적 관점을 내재화한 것이라고도 하시지만, 저는 그런 식의 주장은 별로 생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생각이 정말 내가 주체적으로 한 것인지 외부의 영향을 받아 어떤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하고 있는 것인지를 따진다는 건 그렇게 확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저는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했던 많은 사람들은 사진을 올린 여성들의 행위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그 사진을 성적인 농담과 섞어 요청하고, 사진이 올라온 뒤에는 성적인 발언들로 맥락을 부여한 나꼼수팀과 일부의 반응들을 문제 삼았다고 생각하기에, 애초의 문제제기나 그 동안 이루어진 논쟁이나 사과요구 등이 모두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꼼수팀이, 그리고 나꼼수팀의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여성들을 포함한 청취자들이 계속 이렇게 즐기겠다고 한다면, 싫은 사람들은 안 듣는 수밖에 달리 뭘 더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처음 문제제기 했던 분들이나 공식사과를 요청한 공지영 씨나 (그러니까 어떤 분들이 ‘나꼼수까’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꼼수에 애정이 있어서 그랬던 거잖아요. 그동안 나꼼수를 지지해왔고, 앞으로도 같이 하고 싶으니까, 이런 부분들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고쳐달라, 이렇게 요구했던 거죠.

 

이게 다른 성희롱 상황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이, 학교나 직장, 어떤 동아리 등의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면, ‘싫은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 되잖아요. 문제제기한 사람이 그 공간에서 해온 것들과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박탈당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나꼼수 같은 경우는 안 듣는 것이 어떤 피해를 낳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만, 계속 나꼼수 애청자이고 지지자였던 사람이라면 결코 유쾌할 수 없는 결론이겠지요. 아마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저는 나꼼수를 초창기에 서너 번 듣고 만 사람이라 그럴지도요.

 

물론 남는 문제는 있어요. 나꼼수팀과 여성들의 ‘비키니 시위’ 방식이 정치적 운동에서 여성들을 주변화, 대상화하는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의견이죠. 사실 이 부분은 이번 비키니 사진건만으로 논의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즉, 누적된 경험들과 김용민 씨의 ‘20대 여성들의 정치의식’ 발언 등의 그간의 역사를 함께 검토하지 않으면, 제대로 논의하기 어렵다는 거죠. 저는 이 부분에서의 문제의식에 많이 공감합니다. 어떤 여성들과 남성들이 그간의 진보진영의 운동방식에서 ‘여성’이 들러리 세워지는 걸 계속해서 보고 겪었다면,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비키니 사진을 재미있는 시위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함께 운동해온 여성들을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욕망한 것 아니냐’고 묻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걸 쓰느라 다시 확인했는데, 주진우 씨는 이 사진들을 ‘비키니 시위 사진’이라고 하지 않고, ‘가슴 응원 사진’이라고 썼더군요. 꼬투리 잡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가슴으로 응원하면 안 되냐?’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대해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욕망하는 것은 무조건 문제냐?’는 반론이 나온다면, 그 부분이 한국사회의 성문화(?) 섹슈얼리티 문화(?)라는 맥락과 얽혀서 복잡해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퍼센테이지로 따질 수는 없지만, 많은 여성들이 <성적인 시선과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동시에 비하와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당연하게도 <>표시 안의 두 상황은 필연적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경험적으로도 틀린 명제가 되는 것은 비키니 사진 건을 옹호하는 사람이든 비판하는 사람이든 공히 바라는 바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 말도 안 되는 연결고리는 어떻게 해야 끊어지는 것일까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죠. 꼴페미네, 페미니스트들도 자신들의 보수주의를 반성했네, 이런 말들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페미니스트들만큼 여성들의 성적 자유와 해방을 원하는 이들도 없을 겁니다. 근데 이 작업이 너무 어려워요. 너무 오랫동안 여성들은 ‘인간’으로서보다 ‘성적 존재’로서만 취급당해왔거든요. 그러니 ‘내가 원할 때에만 성적 존재가 되겠다’는 주장은 무성적이거나 보수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지고(ex. “너는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 “좋으면서 내숭은.”), ‘나는 주체적인 성적 존재이다’라는 주장은 누군가의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ex. “노출은 성폭력을 유발한다.”) 진퇴양난 속에서 힘겹게 목소리를 내온 것이 현재 페미니즘 안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서로 상충하기도 하는 목소리들인 거죠.

 

‘나는 여성을 차별하거나 성폭력을 행사할 생각이나 의도가 없다. 단지, 성에 대한 엄숙주의에 저항하고, 성을 자유롭게 즐기고 싶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남성분들, 그리고 ‘나는 여성이지만, 이런 식으로 내 몸을 사용하는 것이 즐겁다’라고 생각하는 여성분들은 이번 비키니 사진 건에 대한 문제제기들을 위와 같은 맥락에서 한 번쯤 생각해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일단 사진제공자들과 그걸 받은 사람들 간에 서로 즐거웠다면, 그 자체는 괜찮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게 여성집단의 위치를 ‘성적 존재’로서만 묶어두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는 우려는 생각해볼만 하지 않은가요? 사진을 원한 사람과 올린 사람들 모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더라도 말이에요.

 

이건 생각해보면, 결국은 내 말이 맞을거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전 이 부분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나꼼수 비키니 사진 건은 위에서 우려한 것과 같은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여성들이 노출에 당당해지는 변화에 기여할 수도 있고, 혹은 일단 노출하면 시끄러우니까 여성의 몸을 더욱 꽁꽁 싸매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고, 방향은 여러 가지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방향을 만드는 것은 지그 순간순간들의 논의와 논쟁들일 것이구요.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모습은 이런 거예요.

1) 비키니 시위 혹은 가슴 응원이 남성중심적으로 전유되는 경우: ‘지난번에 나꼼수팀도 대박쳤는데, 우리도 이번에 여성들 비키니 시위 사진(혹은 가슴 응원 사진) 좀 기획해보자.’ 여성들에게 ‘너도 가슴 사진 좀 올려봐. 너 너무 성적으로 보수적인 거 아냐?’ 이런 말들이 아무렇지 않아지는 상황.

2) 이번 비키니 사진 건의 문제제기들이 맥락에서 떼어져 수학공식처럼 아무렇게나 적용되는 경우: 슬럿워크하는 여성들에게 ‘지난번엔 정봉주 석방을 위해 비키니 사진 올린 여성들 가지고 욕하더니 지들은 왜 다 벗고 나와?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야?’

 

그렇다면, 이번 일이 가져올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이건 저 혼자 생각하기가 어렵네요.

 

제가 비키니 시위를 가지고 상상할 수 있는 제일 유쾌한 모습은 일단, 더 다양한 몸들과 다양한 섹슈얼리티가 사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해요. ‘젊은 여성의 큰 가슴’만이 비키니 시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그런 분위기라면 그때는 이 시위의 부정적 효과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부정될 수 없을 겁니다.

 

혹시라도 ‘젊은 여성의 큰 가슴을 선호하는 것은 성적 본능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마지막으로 이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나꼼수에서도 비판한 적이 있었던 ‘빤스 목사’님의 발언이요. 이게 왜 문제일까요? 실제로 여신도들의 팬티를 내린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일종의 비유로 ‘내 신도라면 팬티를 내리라고 했을 때 내릴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고 하는데요. 이게 목사와 신도 사이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비판하는 건가요? 왜요? 목사는 성욕이 없나요? 아님 그런 말을 하기에는 목사가 너무 늙었나요?

 

정작 그 목사님의 여신도들은 괜찮다는데 왜 우리가 그걸 비판하죠? 설령 어떤 여신도가 진짜로 그 목사님 앞에서 팬티를 내린다 한들, 그걸 정말 원해서 한다면 어떻게 비판할 수 있죠? 그 여성은 정말 자신의 신심을 증명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그 목사님을 성적으로 유혹하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요.

 

게다가 성경에 보면, 신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잖아요. 아브라함은 정말로 아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제단을 만들고 아들을 바치려고 하구요. 그랬더니 신이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하죠.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들의 목숨도 요구할 수 있는 종교인데, 팬티 좀 내리라고 했다고 비난할 수 있나요? 비키니 차림까지는 용납할 수 있지만, 성기를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건 안 되는 건가요? 성기만큼은 안 된다는 시각도 시간이 지나면 보수적인 인식이라고 여겨지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했을 때 그 ‘빤스 목사’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실제로 성직자의 위치에 있는 남성들이 믿음을 이용해서 여신도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들이 상당한 현실에서 저 발언이 여성 신도에 대한 남성 목회자의 시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제로 여신도를 성적으로 착취한 적이 없는 ‘빤스 목사’로서는 자신의 발언이 대표사례가 되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겠죠.

 

나꼼수팀은 성직자-신도의 관계처럼 지위를 이용하여 청취자들이나 지지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할만한 권력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비키니 시위와 관련해 문제제기한 사람들도 나꼼수팀이 직접적으로 여성 지지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할 목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을 거예요. 다만, 성직자들이 여성신도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이 빈번한 상황에서 ‘팬티 발언’이 불편한 것처럼, 정치적 운동에서 여성들이 자주 주변화되는 것을 겪고 지켜본 사람들이 ‘비키니 차림의 가슴 사진을 통한 시위나 응원’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이 부분은 김용민 씨가 20대 여성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참여를 두고 한 발언에 대한 평가나 판단은 하지 않고 썼습니다. 발언의 내용을 제가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라서요. 그 발언과 상관없이도, 즉 나꼼수팀의 행적과 상관없이 다른 정치적 운동에서 그러한 일들이 많이 발생해왔다면, 이러한 문제제기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저 스스로 ‘나의 불편함의 기반이 성적 보수주의일까’를 성찰해본 내용입니다. 마지막에 ‘빤스 목사’ 이야기를 해서, 이 글을 끝까지 다 읽으신 분들 중에는 결국 나꼼수 까는 결론 내리려고 이렇게 길게 썼나? 하고 짜증이 난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결코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빤스 목사’의 발언에 대해서도, 다시 원점에서부터 질문을 던져서 생각을 정리해본 거구요. 나꼼수팀을 ‘빤스 목사’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두 발언들에서 똑같은 강도의 불쾌감을 느끼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그 메커니즘이 정말 전혀 다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까 다른 글을 보니, 나꼼수팀은 원래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애초에 밝힌 사람들이었고, ‘성인군자’가 되어야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그 코멘트를 보고 또 생각해봤죠. 내가 나꼼수에게 기대한 수준이 ‘성인군자’씩이나 되는 거였던가. 그건 아니었거든요. 여자 가슴 사진보고 코피팡~할 수 있죠. 성적으로 자극되는 건 물론이고, 여성들로부터 이런 응원을 받는다는 것에 으쓱할 수도 있을 것 같고, 하여튼 신나고 즐거울 수 있어요. 그걸 문제 삼는 것이 아니에요. 시위의 방식으로 그런 코피 터질 만한 상황을 기획하고, 그 결과를 만끽하는 행위가 기존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대우에 의도치 않게 일조할 수 있는 위험을 알아달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원하는 건 결국 ‘사과’인 걸까요?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네요. 처음에는 쿨하게 인정하고, 쿨하게 사과하고, 껄껄 거리고 웃으면서 이번 일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논쟁이 너무 격렬해지고, 그 와중에 각종 뻘타들이 난무하여 마음들이 잔뜩 상하고, 막 그래놓아서 말이죠. 어제인가 나온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니, 문제제기 하는 것이 의미있다고까지 하면서도 이런 일로 나꼼수가 사과를 하게 되면, 특유의 막나가는 정서가 없어져서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쫄지마, 나꼼수’하고 응원해주는 걸로 끝맺는 글이었어요.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분이 나빴던 이들에게 사과하고, 의도치 않았지만 발생할 수 있는 효과들, 그런 위험을 일일이 고려하여 행동하는 것이 ‘쪼는’ 것인 걸까요? 사과하고 배려하면서는 유쾌할 수 없는 걸까요? 저도 답은 몰라요. 모르지만, 적어도 이렇게 열심히 생각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답을 찾는데 도움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일어난 수많은 논쟁들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에 반대합니다. 또, 나꼼수팀이 이 문제의식들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등 떠밀려서 사과하느니 차라리 ‘에이씨바,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불쾌했다는 분들한테는 미안하긴 한데, 사과하면 사진 올린 분들을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뭐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겠으니 배째라’, 뭐 이러라는 건 아니고, ‘한 번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이랬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인데, 그런 진지함은 나꼼수와 안 어울린다고들 하겠죠? 게다가 이런 사안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고, 다른 현안들을 다루어야 하고, 우리는 MB라는 큰 적을 앞에 두고 있고...

 

뭐, 그렇네요. 왜 이리 길게 썼담. 사실 하루 종일 이 생각하느라 딴 일이 손에 안 잡혔어요;;; 그만큼 저에겐 중요하게 느껴지는 화두였거든요. 하루 종일 생각한 걸 쓰다 보니 더 줄일 수가 없었단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심지어 이렇게 쓰고도 더 쓰고 싶은 주제가 남아있어요ㄷㄷ 성적인 보수주의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일까, 성적으로 개방되는 것이 진보일까, 그렇다면 그 개방성의 한계는 어디까지인 걸까, 뭐 이런 생각들도 좀 했는데, 이건 논점에서 벗어나는 것도 같고, 이것까지 쓰는 건 차마 못 할 짓이라서;;-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 요기까지만 해봅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