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바낭- 한국은...

2013.06.18 02:37

언젠가 조회 수:2952


1.

귀국하고 나서 생긴 일입니다.

대형 여행가방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왔기에 팔이 저려왔습니다. 체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요...


여행 가방을 끌고 지하철까지 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고 택시를 잡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택시 잡기도 왠지 눈치가 보입니다.

왜냐면.. 택시가 사람을 고르거든요.

택시 기사 아저씨가 무슨 로또도 아닌데, 어떤 기사 아저씨는 매우 친절하시고, 어떤 기사 아저씨는 매우 퉁명스럽거나 화를 버럭버럭 냅니다. -_-...?

전에도 여행가방을 들고 택시에 탈 수가 없어서 택시 트렁크에 태우려 했더니 택시 기사 아저씨가 화를 내시더라고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뭐라뭐라 버럭버럭거리는데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왜 내가 짜증난 얼굴을 당하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아저씨는 'ㅇㅇ동 가나요?' 했더니 인상을 쓰면서 '여 오지말고 저쪽 가서 타소' 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냥 글로 써놓고 보면 별 느낌이 안 와닿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당했을 때는 굉장히 당황스러웠죠. 아니 내가 화날 일을 물어봤나요 아저씨...


택시 하나 잡는데도 사람 참 피곤한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택시 기사 눈치도 봐야 하고.

다행히 이번에 탄 택시 기사 아저씨는 화를 내거나 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2.

부산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생긴 일입니다.

가방이 장난 아니게 무거웠기 때문에(게다가 빈 손이 없을 만큼 잔뜩 가방을 여럿 싸들고 와서) 버스의 짐칸에 가방을 넣으려니 팔이 저려서 힘이 들어가질 않았습니다.

에이 할 수 없다, 도와달라고 해야지 하고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초로의 버스 기사 아저씨는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피곤했기 때문에 뭐라고 했는지는 잘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대략 화를 내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습니다.

당황해서 웃는 얼굴인 채로 '네?' 하고 되물었더니 또 버럭, 하시더군요. 그다 못 넣으면 우짤낀데, 나중에 내릴 때는 내가 못 넣어 준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의 디폴트 표정인 웃는 얼굴인 채로 네네, 죄송합니다, 하고 버스 기사 아저씨님의 친절함에 굽신거리고 버스 좌석으로 갔지만 마음은 참 불편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못할 요구를 했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뭐 고작 일년 일본에 있었지만 너무 일본식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일본에서는 승무원이나 기사 아저씨한테 부탁을 할 때, 그런 식으로 화난 얼굴이 돌아올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오히려 이쪽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들 하시죠. 버스에 타고 내릴 때도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란 말이 늘 들려오고. 

내가 제3국인이었다면 분명 일본은 또 오고 싶은 나라겠지만 한국은 절대 다시 오고 싶은 나라가 아닐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크게 신경쓸 일이 아니죠?

오히려 남에게 친절을 기대하는 쪽이 건방진 편이겠지요.


저는 사람의 감정에 민감해져 있는 탓일까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을 때 화난 얼굴이나 무표정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그래가지고 인생 어떻게 살겠냐는 핀잔이 저절로 생각나는군요...

그래요... 살다보면 온갖 일을 다 겪겠지요. 세상은 무섭고 끔찍한 일도 많으니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죠. 이깟 일쯤 아무 것도 아니고 어디 일 축에나 들어가기나 하겠나요.

나약한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겠지요.

강하게 살아야 하는데, 늘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한국에 오면 언제나 표정이 굳어집니다.

그리고 또 그런 소리를 듣겠죠, 넌 왜 언제나 불퉁해서 화내고 있냐고.


다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요...

후쿠오카에 갔을 때는 말을 거는 모든 사람들이 다 친절하고 웃는 얼굴로 답해줘서 참 좋은 도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땅은 내 고향이지만 왜 이리 낯선지요.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라는 시구가 떠오르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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