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저 아래 아카싱님 글과 마리이사님 글에서 댓글로 길게, 성매매산업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요.

 

어째 이야기 방향이 몇 해 전 제가 겪었던 일을 떠오르게 합니다.

정말 불쾌한 경험이었어요.

 

뭐랄까. 황당한 경험이었죠.

저는 아직도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제가 몇 년 전에 대학연구소 용역 아르바이트로 일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저와 같이 파견업체에서 단기 알바를 받아 사무소에서 만난 남자아르바이트생에게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첫 출근했고, 그 남자아르바이트생과 저, 이렇게 단 둘만 용역알바였고 나머지는 여성연구원들이었죠.

점심시간이 되자, 여성연구원들은 모조리 원래부터 점심 먹는 무리들끼리 삼삼오오 밥 먹으러 나가버리고(이른바 여성점심그룹),

그날 첫 출근한 저와, 저랑 같은 처지의 용역알바생 남자 이렇게 둘이 구내식당으로 점심 먹으러 갔습니다.

 

당연히 저는 그날 처음 만난 그 알바생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한것도 없었고, 뭐랄까, 상당히 데면데면한 상태였어요.

아, 밥 먹으면서 상대방이 자기가 나이 많다는 이유로 대뜸 하대하려고 하는 걸 제가 거절한 건 있었군요.

저는 만난지 얼마 안 된 사람과 대뜸 말 트는거 잘 못한다고,

말 놓고 싶으시면 놓으셔도 되지만 저는 계속 존대하겠다고 했던 것 같아요.

 

점심 먹고나서 자판기 커피 뽑아 마시고 있었는데.

그 알바생이 갑자기 화제를, 그 때 한창 단속이 시작됐던 '성매매특별법'으로 올리더군요.

 

같이 일하는 직장사람과 첫날 점심밥 먹고서 말하기에 썩 좋은 주제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저는 그런 거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그런 일에 관심이 없는거냐. 같은 여성인데도 여성 인권에 관심이 없는거냐. 너는 그런 쪽에 관심 많은 줄 알았다(아니, 첫날 만나서 뭘 보고?)'라고 말하더군요.

 

너무 빤히 들여다보이는 유도성 질문이긴 했는데...;;;

딱히 첫 출근한 사무소의 유일한 동료직원인 그 알바생을 아예 쌩 까고 대화도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마지 못해 대화를 몇 마디 거들었지요.

'나는 성매매단속에 찬성하는 쪽이다.'라고요.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내는 겁니다.

"이래서 여자들은 안돼. 같은 여자면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니까. 그 여자들을 거기까지 내몰고서 그 직업 마저 빼앗겠다는 거 아니냐. 그 애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 줄 아느냐. 그리고 그애들도 다 하나하나 대화해 보면 정말 좋은 애들이다. 여성부가 성매매단속하는 거 다 그렇게 단죄하려는 거 아니냐'

 

저는 밑도 끝도 없이 그 알바생이 왜 그런 말을 저에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좀 멍해 있었어요.

오늘도 댓글에서 몇몇 분이 펼치신 논리이긴 한데,

그때는 그게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더군요. 성산업의 성매매 착취를 방지하기 위해서 성산업구매자와 포주, 업소를 단속하는 거고, 윤락여성에 대한 보호와 구출의 개념으로 시행되는게 성매매단속법인데, 성산업의 착취구조는 빤히 무시하고서 단속법 때문에 윤락여성이 직업을 잃는다고 강조하다니요.

 

그때 들었던 생각은

;"머임마?"가 첫번째였고

두번째가 '근데 당신은 그 사람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죠.

 

제가 말을 못하고 있자,

그 알바생은 제가 자신의 논리에 압도된 거라고 생각했는지 별별 말을 다 하더라구요.

 

"까놓고 말해서, 너 같은 어린 여자애가 그 애(윤락여성)들을 잘 알겠냐, 오빠(자기가 나이가 많다는 걸 안 순간부터 오빠라고 지칭하더군요)가 더 잘 알겠냐?"라고 전문성을 강조하더니, "그애들이 갈데가 없어서 큰일이다.'라고 말을 맺더군요. 저도 괜히 알바하러 푼돈 받으며 그 자리에 있을게 아니라 여성들의 현실에 눈뜨고, 돈도 잘 받을 수 있는 그런 노래방이라도 가야할 것 같은 기세로 저에게 전도-_-를 하더라구요. 성매매의 윤리성에 대해.

 

성매매 옹호하시는 분들도 전도를 한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날 저는 기가 차서 그 분과의 대화를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겠더군요.

 

그런데....오늘도 이 게시판을 보니 조금 어이가 없어져서 묻고 싶습니다.

저는 적어도 우리 사회가 '성매매의 비윤리성'에 대해서는 합의가 되어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알바생과 같은 논리로 무장하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요.

 

성매매가 자발적 여성의 권리라고 말이지요.

 

저는 사실 그날, 그 황당한 의견 앞에서 마음으로는 그게 틀리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쏘아 붙이지도 못했어요. 왜, 정말 황당한 주장 앞에는 할 말이 없어지는 것 처럼요.

동시에 그런 말에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는 저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는데, 그건 마치 지하철 치한이 난데없이 붙었을 때 적절한 대응을 못한 자기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과 꼭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저런 주장을 실제로 여성에게 하는 것 역시 일종의 폭력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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