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 라는 이름에 대해서 제가 좋아하는 언니는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애초에 제가 심농의 소설을 겨우 몇 권 읽고 감탄했더니, 언니는 열 권도 넘게 다 읽고는 나도 나도 재미있었어, 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시리즈를 언급했더니 본인 취향은 아니라는 말과 일본문학이 대체로 좀 그런 것 같다, 고도 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추리소설 팬이지만 그 분은 특히 엘러리 퀸의 팬이거든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편 '짐승의 길'을 읽다가 문득, 그 언니와 그 언니의 말이 생각나면서 귀족적인 엘러리 퀸과 마쓰모토 세이초의 인물들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지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 이해가 되었어요. 상황이 자꾸만 나빠질 때 자존심 하나로 고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 애초에 '짐승의 길'을 택한 사람들과는 다르지 않겠어요. 사람 별로 다르지 않다는 말에 보통 주억거리면서도 그러나 얼마나 사람이 달라질 수 있는지, 아주 작은 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를 들어서 사람은 정말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곤 하는 저도 지금은 그런 인물들이 현실적으로 슬픈 것 같아요. 말 하나도 조심조심, 차분하고 지성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법도 없이 조심스럽게, 만나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 언니는 엘러리 퀸의 팬인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외롭다든지 괴롭다든지 하는 말들을 여간해서 그대로 뱉어내는 법이 없죠.


 사실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짐승의 길'은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야기야 대뜸 재미있었어요. 다미코는 뇌연화증에 걸린 남편을 위해 고급온천여관에서 숙식하며 일하다가 때때로 집으로 돌아가면 이상하게 욕망에 찬 남편의 바람 피웠냐는 추궁 아래 성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그야말로 언제 상황이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 짐은 무거운데 이제 겨우 서른 초입이거든요. 그런 사람에게 어느 날 돈 많음직한 신사인 손님이 나타나 연애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대신에 딸린 상황은 다 정리해야 한다고 하면 그 때부터 희망의 순간에 놓이는 거죠. 동기가 생기면 소설에서야 범죄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다미코가 남편을 죽이는 일까지 순식간에 벌어지고, 그 다음부터 이야기가 좀 얄궂어요. 그러니까, 일류호텔 뉴로얄호텔의 지배인인 고타기는 2년이나 호텔에 묵고 있는 장기체류자인 하타노 변호사에게 다미코를 소개하고, 그들에 이끌려서 다미코는 기토 고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기토 고타는 할아버지로 고급주택에 다미코의 남편처럼 뇌연화증으로 누워서 장수하는 방법으로 젊은 여자를 끌어안고 희롱하는 변태적인 일을 일삼거든요. 그렇다고 여자를 제대로 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희롱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비위가 좋아도 이건 확실히 일본소설이군, 싶어집니다. 이렇게 음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야 어떻게 사회파 추리소설로 나아갈 수 있는거지, 싶어졌어요.ㅠㅠ


 그렇지만 상하 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상권을 읽다 말고 오후에 총총 길을 건너다가 다른 일로 우울해하다가, 아, 희망이라곤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버틸 때 인간의 길이라든지 짐승의 길이라든지 라는 걸 생각하고 고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뼛속까지 고고한 인간일 거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여기가 지옥이라고 외칠 때,  영혼을 걸고 그럭저럭 시간을 끌어안고 버티면서 너무 많이 타락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겠죠. 마음이 절망에 서서히 지쳐가다가 얕아질대로 얕아져서는, 그 다음부터는 아주 얄팍해져서 염치라든지 자존심이라든지 꿈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 때가 오지 않을까...울고 불고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일테죠.


 "정상적인 대답이군요...도구가 되라는 말을 들으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발을 일으키지요. 하지만 다미코 씨, 저는 당신에게 영원히 도구가 되어 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이라고 했을 텐데요."

 고타기가 다미코에게 한 말입니다. 아주 작은 암시만으로도 다미코는 넘어왔습니다. 고타기는 다미코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다미코의 상황을 훤히 알면서, 영원이 아니니까 괜찮지 않냐고, 어차피 지금도 짐승처럼 버티고 사는 다미코에게 희망 비슷한 걸 제안해요. 그래서 다미코가 잠깐 누군가의 도구로 살기로 한 것이 남편과 같은 상황, 오히려 더 나쁜 조건이라니 어떻게 봐도 사실 기막힌 이야기죠. 


 그리고 이야기가 꽤 길어요. 다미코의 살인이 살인이 아닐까 의심하는 제법 민첩한 히사쓰네라는 형사가 등장해 금방 따라붙고요. 뭐 크게 승진이라거나 하는 것을 탐낼 수 있는, 야심에 찬 형사는 아니라 다만 제법 수사도 잘해서 인정도 받지만 그것 뿐으로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 하는, 그래서 이상한 투지와 오기로 가끔 덤벼보는 그런 형사입니다. 대단한 공명심도 없이 단지 다미코가 아름다워서 한번 안아보고 싶은 욕망으로 다미코 뒤를 쫓다 꽤 깊숙이까지 들어가버리는 이 형사도 어떻게 보면 현실적이지요. 실력은 있지만 그렇다고 정의라는 걸 입에 올리기엔 현실에서 히사쓰네는 그저 일개 형사거든요. 흑막의 실력자, 그러면서 변태 바보 영감같은 기타 고타와 그의 오른팔 격일 하타노 변호사가 어떤 사건들을 만들며 사회를 움직이는지 암시하는  뭐 그런 사건들이 이어져요.

 

 하권부터는 꽤 즐겁게 읽었습니다. 인물들이 많아지고 사건들이 전개되면서 좀 넓어지는 시선도 느껴지고, 변태적인 이야기만 하려는 건 아니구나 확실하게 안심도 됐지요. 그리고 소설을 읽다가 앗, 하고 혼자 굉장히 즐거워지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작품 속의 흑막의 실력자야 기타 고타이지만, 작품 전체의 흑막의 실력자야 마쓰모토 세이초 겠지요.

 // 대여섯 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현수교는 십 미터 앞에 있다. 그는 큰 맘 먹고 현수교에 발을 올려 놓았다. 이 다리를 건너는 것 말고는 달리 맞은편 기슭으로 건너갈 방법이 없다. 높이는 십 미터 정도 될까. 걸어가니 다리가 흔들린다. 그 때마다 아래에 있는 강이 흔들렸다. 맞은 편에서 동네 아이 두 명이 장난치며 걸어왔다. 히사쓰네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이 다리, 건너가도 괜찮니?" 그는 그 아이들에게 물었다. 두 아이는 웃어댔다...//

 이 부분! 이 문장들에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인물들은 가엽게도 짐승의 길로 어느 순간 들어가 버리거나 혹은 건너지 말아야 할 다리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너가버립니다. 여기서 걱정할 건 그런 게 아닌데도 위험을 예상하면서도 뭐 괜찮을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북돋으면서 사건에 깊숙이 들어가버려 어디쯤에 자신이 있는지도 모르는 히사쓰네가, 다리 하나를 건너며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그리고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마쓰모토 세이초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앗, 하다가 웃었습니다. 인간이란 보통 이렇게 어리석죠. 한 치 앞을 잘 몰라요.


 마쓰모토 세이초를 읽는 맛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어느 틈에 읽다가 발견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인물들은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있는 엘러리 퀸 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날 것의 인물들, 대체로 인간으로서 바닥의 인물들입니다. 누구 하나 선한 의지 자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데 그들이라고 짐승의 길을 영원히 가버리고 싶었겠나요..잠깐, 그리고 나면 다시 멀쩡히 인간답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죠.

 실은 단편들의 마쓰모토 세이초에서 좋았던 것은 그의 가난하고 가방 끈 짧은, 그리고 늦된 데뷔로 엄청난 양의 작품을 쏟아낸 세이초의 삶의 이력이었고, 동시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 몇 가운데에서 시대를 잘못 만나 비애를 알아버린, 이미 실패한 인물이 갖는 씁쓸함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인물들이란 대체로 이렇게 실제 현실에서 선택이라곤 없다가 희망으로 범죄를 일삼아 인간의 길에서 멀어져버린 사람들일거라고.. 인간의 길은 아마도 아주 좁고 가느다란 거라고 이제 겨우 생각하는 제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에서 감탄하는 이유입니다.

 오랜만에 긴 글이 쓰고 싶어서 게시판에 써봅니다. 책 뒤에 평론을 쓰신 조영일님의 글도 재미있었어요. 휴가 때 한번 읽어보셔도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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