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닭뼈다귀

2014.08.25 11:30

칼리토 조회 수:2228

아침부터 먹던 게 얹힌듯한 느낌이지만.. 그거야 읽지 않아도 되는 글을 읽은 제탓이고 기분 전환을 위해서 요즘 읽고 있는 책중에 달달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한꼭지 소개해 드립니다. 유익하다는 것은.. 연애를 하고 있거나 언젠가 여성 동지들께서 질문할 본질적인 궁극의 퀘스쳔에 직면할 모든 남성들에게 유익하다는 얘깁니다. 다음을 따라 읽고.. 잘 외워 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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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야?"라는 질문에 대해 제시하는 하나의 모범 답안이다.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어. 손이 꽁꽁 얼고 귀가 시려서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은 연신 귀를 주무르며 종종걸음으로 집에 오고 있었지. 그런데 멀리서 보니 집 근처 쓰레기 봉투 버리는 자리에 고양이가 있더라. 이 추운 날 쟤도 고생이구나 하면서 다가가니 뭔가에 열중했는지 사람이 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하는거야. 자세히 보니 음식물 쓰레기봉투 안에서 닭뼈다귀를 꺼내보겠노라고 아등바등하고 있더라고. 날이 추워서 쓰레기도 얼어붙은데다 매듭이 워낙 바짝 묶여 있어 뜻대로 안되는 눈치였지. 닭뼈다귀에 뭐 먹을게 있다고 저걸 못 꺼내서 안달복달일까 하고 마음이 짠하더라. 그래서 집에 들어가 사기 그릇에 고양이 사료를 담아서 나왔지. 문소리가 나자 황급히 달음박질 쳤던 녀석은 내가 그릇을 놓고 멀찍이 떨어진 사각지대로 들어가니 그제서야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 사료를 먹기 시작하더라고. 눈치를 살살 보며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웃긴 건 녀석이 사료를 다 먹고서 다시 쓰레기 봉투로 돌아가서 끝내는 닭뼈다귀를 꺼내더라고. 이미 내가 준 사료로 배가 꽉 찼을텐데도 말이지! 살 한점 안 붙은 닭뼈다귀를 입에 물고 의기양양하게 사라지더라니까."

 

"그래서? 그게 지금 내 질문이랑 무슨 상관이야?"

 

"나는 고양이고, 넌 그 닭뼈다귀라는 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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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은 가을방학, 줄리아하트, 바비힐의 멤버인 정바비의 산문집 "너를 스치는 세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음악도 좋지만.. 글도 참 맛깔나게 잘 쓰네요. 읽다 보면 하루키를 주구장창 읽었다는 생각도 들고 인용문은 명백하게 모방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식 현지화가 맘에 들어서 잠시 낄낄거렸습니다.

 

다만.. 저 인용문은.. 하루키도 모르고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으며 문학적인 메타포에도 관심 없는 상대방에게는 분노를 일으킬수도 있지요.

 

"그래서 내가 닭뼈다귀란 말이냐? 이 개뼈다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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