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닥치고 정치>를 다 읽었습니다.

 

전반적인 소감. 재미있어요. 김어준은 사람을 평가할 때, 또 좌우를 나누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이야기 할 때 지적인 어휘와 논리 대신 본능적 감성 영역을 상당히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평소 제가 느끼던 바를 말로 표현해줘서 '아..ㅅㅂ 그거야!!' 하는 경우가 꽤 있었어요. 그리고 그 평을 보면서 도리어 제가 뜨끔한 경우도 많았고. '앗 내가 이 행동을 하는게 저런 이유 때문이었나?' 완벽 동의는 하기 힘들지라도, 뭔가 심층심리적으로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안겨줬달까. 분명 어려운 이야기들은 아닌데 심리적으로는 깊게, 동기의 본질적인 면으로 들어가거든요. 좋았어요. 읽으면서 생각이 참 많았어요. 그리고 이 책을 쓸 당시가 몇 달 전인 것 같은데, 김어준의 굵직굵직한 예상이 상당히 들어맞았어요. '진보당들 통합 (나도 엄청 바라지만) 아마 힘들 듯', '홍준표 대표 됨', '오세운은 앞서서 달려 가는 게 아니라 저러다 주저앉는거라니까 ㅋㅋ', '혹여 안철수 정도 되는 사람이 (정치에) 나오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폭풍이 불 것' 등등. 그래서 책 읽는데 탄력이 붙었던 것 같기도. '헐..맞췄잖아??' 이러면서. 그리고 책 앞부분은 딴지 특유의 ㅅㅄㅂ 말투로 시작하더니,  뒤로 갈수록 약간 비장해지더군요. 말도 (글도) 더 촘촘해지고.

 

 

 

2.

 

전 <진보집권플랜>은 사놓기만 하고 안 읽었기 때문에, 조국교수에 대한 김어준의 평 (너무 고상하고 점잖아서 대중들이 재수 없어 할 수 있다..?)에 적극 공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송호창 변호사님과 더불어 살뜰히 아껴야 마땅한 미중년 법조인 투탑이었을 뿐이며, 더 근래에는 악성루머가 돌자 익명 게시판에 실명 까고 '나의 전공은 형법입니다.'하는 기개로 루머전파자의 사과를 받아내신 형법교수님이었을 뿐....  이 책을 읽고 마침 시사IN 기사에서 조국교수님이 나꼼수 평을 하신 것을 읽었는데, '아...김어준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알 것 같..??' 하는 느낌이 잠깐 들긴 했습니다만 ㅎ 하여튼 아무리 봐도 사기 스펙의 소유자.. 총수가 우리나라 정치판에 이런 인재가 (미래에) 있다는건 '존나' 행운이니 아끼고 보살펴서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적극 코치했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로 총수 본인 취향의 남자는 아닌 것 같지만 ㅎ

 

문재인변호사님의 <문재인의 운명>역시 사놓고 안 읽(-_- -_-)였기 때문에, 문재인씨의 인생역경에 대한 감 또한 부재합니다. 하지만..이 분은 노무현 정권 시절 때부터 제가 무척 좋아하던 분이었거든요.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미지 참 좋으시겠죠. 그냥 사건 사건 때마다 이 분이 보였던 행보가, 이 분의 인생궤적을 짐작케했어요. 그리고 김어준의 그 평에 가장 공감이 갑니다. "우리도 외국 정상들과 나란히 서 있을 때 안 쪽팔리는 외모의 대통령을 가지고 싶다!!"  이 이유가, 제 친구 중 한명이 2002년 대선 때 정몽준을 지지한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실화임-_-) 하긴 정씨가 정치인들 외모 평균을 놓고 보면 심하게 잘 생기긴 했어요. 근데 문재인 변호사님도 뒤지지 않죠. 거기다 특전사 출신이잖아! 간지는 이쪽이 더..

 

 

 

3.

 

우와 좌를 공포에 대한 동물적 반응(+자존심)과 시스템에 대한 논리적 접근..으로 풀어냈더군요. 이건 타고나는 성향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는 말도 붙이고. 한국형 보수/진보를 이야기한 거겠죠. 이 부분에서 살짝 막혀서 집어던지고 자기도 했지만 (왜 막혔는지 제 심리상태를 좀 파봤어야 했는데..지나가서 까먹었음.) 하여튼 대강 이해는 갔어요.  그리고 '우'에 대해서는 가카의 BBK와 삼성정도만 짚고 넘어가요. 전 나꼼수를 8회부터 (주진우 빠임 +_+) 들었기 때문에, 1~3회는 안 들었거든요. 덕분에 몰랐던 것들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어요. 가카에 대해서야 나꼼수 청취자라면 익히 알고 있을 '가카 (민주주의) 요정설'찬양질.. 아 참, 삼정과 이건희일가를 분리해서 공격해야 한다..며, 그 심리적 이유를 설명하는데, 탁월하더군요. 전반적으로 우파는 공포에 질린 동물들이 힘과 권력과 돈을 위해 날뛰는 동물원에 비유하면서, 여의도가 얼마나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아귀다툼의 전장인지 사람들은 모른다고...멀쩡한 사람들이 그기 들어가면 망가지는 게 판이 그래서라고....대강 운만 떼고 이야기 안 해줘서 섭섭.

 

 그리고 진보에 대한 장광설이 이어지는데, 제 소감은 '어준씌 테러당할 듯 ㅋㅋ ' 마음은 한정된 자원이다..대중들에게 복잡한 개념 이것저것 다 구분하라 요구하며 괴롭히지 마 ㅂㅅ들아..사람들이 니들처럼 다 똑똑한 게 아닌데, 못 알아먹으면 한심하다 생각하지? 그거 대중들이 다 알어. 그럼 대중정치는 끝이야. 대표적으로 신자유주의'같은 어려운 용어로 대중 설득시키려는 시도 좀 그만해' 이런 류의 대목들에 상당히 동의했어요. 비슷한 맥락에서 노회찬을 크게 평가한 이유가 대중언어를 제대로 구사한 진보정치인이기 때문. 높이 치긴 심상정을 가장 높이 쳤지만. 아, 진중권이 참 좋은 쪽으로 ('진중권의 영웅적인 활약!') 짧게만 언급되어서, 과연 중권씨가 이 책 읽을까..궁금해졌어요. 시사IN 인터뷰에서 김용민씨가 '사자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아 참, 우리는 닭장 속의 닭이지!' 는 리액션(-_-)까지도 해주셨는데.. 그넘의 닭..당별 평가는, 진보신당은 똑똑하고 논리적이지만 경직되어있고, 민노당은 별다른 논리 없고 나이브하지만 유연하다..는 평가.  전반적으로  진보에 대해서는 애정어린 코치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본인이 감정적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참여당에 대해서는, 가장 잔인한 소리를 한 것 같아요. 읽으면서 제 가슴이 다 아프더라고요. 본인도 막 아파하는 게 느껴짐. 유시민에 대해서는 줄창 해 왔던 말, '이 사람 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님아..나도 알아욜... 그리고 노무현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고. 가장 남자다운 사람이었대요. 그래서 정말 좋아했나봐요. 노제 때 소방차 뒤에 숨어서 찔찔 짜던 이야기도 나오고.. 3년 검은 넥타이 했던 것도, 누가 '3년 상 치르라'며 '비아냥'대길래 '새끼야 그래 치를 거다.'하고 악으로 시작..-_-;;  앞부분에 잠깐 그런 이야기 나와요. '내가 대통령 되면? 싹 다 죽.여.버리는거지..그리고 탄핵..'  아 제발, 누구든 야당쪽에서 대통령 되면 국정원장 김어준 좀 줘봐. 다 조지게..진짜 싹 조질 듯..레알..

 

 

 

4.

 

박근혜에 대해, 아니, 박근혜의 경쟁력에 대해 굉장히 높이 평가해요. 상대하기 정말 어려운 사람이라고. (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특별하게 악한 본격 사이코패스 이명박같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악인이 도드라지는 것도 아닐거라, 문제 해결이 굉장히 어려울거라고..) 박근혜에 대한 집착을 대략 '집단 심리 퇴행'정도로 설명하는데, 크게 동감했어요. 이런 건 논리로도 안 깨지고, 설득도 안 되며, 잘 흔들리지도 않죠. 퇴행하지 않아도 맘 놓고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나 주변여건을 조성해주지 않는 이상..  박근혜를 단순히 '수첩공주, 이미지거품'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을 '암울한 현실을 직면할 통찰력이 없는, 혹은 알아차렸다 해도 비아냥대는 걸로 현실회피를 시도하는' 사람 정도로 평해요. 당시에는 서울시장선거로 판이 요동치지도 안철수가 철통같은 박근혜 대세론에 최초로 금을 내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정말 암울하기 그지 없던 상황이었을거에요...

 

그래서 책 마지막에 김어준이 이야기하는 게 나는 꼼수다에요 @_@ 약자가 프레임을 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난 그거 할 거라고. 지금 대단한 거 준비하고 있다고.  4인방 모였는데 (당시 주진우기자는 자기가 참가하게 될 거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데, 하여튼 총수 멋대로 4명이라고 단정.) 이 사람들 다 대단하다고. 한국에 지금 이런 사람들 없다고. 특출난 사람들이라고. 내가 이 방송가지고 뭔가 해낼 거라고. 이 방송으로 조중동 방송3사랑 다이다이 뜰 거라고... 

 

나꼼수가 팟캐스트 세계1위 하는 꼬라지를 못 본 상태였다면 '이거 또 뭔 개소리여..'하고 넘어갔을 텐데, 나꼼수 폐인이 되어 밤새는 팬 입장에서 초창기 저 다짐을 읽고 있자니..이거 참, 난 놈은 난 놈일세.. 하는 생각 밖에-_-;; 실제 나꼼수 운영방향이니 영향력도 총수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고요. 곽노현건에 대한 여론조작 힘겨루기에서, 검찰 조중동 방송3사 융단폭격으로 초토화되던 인터넷 게시판 SNS반응이, 나꼼수 방송 후 홀라당 뒤집혔으니까;;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헐..이게 뭐임...' 하던 기억이;; 

 

김어준이 진짜 대단한 게.. 사실 조중동-방송3사 보수언론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이야기는 다들 하잖아요?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고, 보수언론프레임을 깰 새로운 구조를 직접 설계한 후, 실제로 그걸 실행에 옮겨서 본인이 의도했던 '보수언론 프레임에 금을 내겠다!!'는 효과를 현실화시킨 거 아니에요. 현 시국에 대해 김어준보다 훨씬 더 훌륭한 분석을 해낸 사람들은 대단히 많지만, 현실적으로 이만큼의 임팩트있는 무언가를 직접 해낸 사람은 굉장히 드물죠. 그것도 의도적으로..(--;) 정당도 아니고 개인이...돈도 권력도 없으면서.. 확실히 난 놈임..-,.-

 

아, 이번주 시사IN에 나꼼수 특집 실렸는데, 고재열기자가 쓰셨거든요. 기사 재밌어요 ㅋ 대놓고 '주진우 <시사IN>기자는 (4인방 중) 가장 인기가 높다'라고  ㅋㅋ

 

 

 

5.

 

책 마지막에 보면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남은 세상은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오기로 다짐하는 느낌을 받아요... 문재인이니 진보니 보수동물원이니 나꼼수니 이야기했지만,  이 책 집필 당시에는 문재인의 지지율이 지금처럼 올라가지도 않았고, 세훈씨가 분탕질 치면서 정국이 요동치기 훨씬 이전이었고, 안철수가 박근혜 지지율을 깨는 이변도 일어나지 않은 채, 막강한 박근혜대세론 속에 변변한 야권 후보는 보이지 않았던 암울한 상황이었을 거거든요. 김어준은 그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는 느낌을 받아요. 그렇게 현실을 제대로 직시했기 때문에, 그것을 깰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저로서는, 사실 좀 존경스럽기도 하고..

 

아주 재미있고 힘이 넘치는 책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일상언어로 상당히 깊은 부분까지 건드리는 재기도 있고요. 무엇보다, 생각할 꺼리가 많아요. 김어준의 주장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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