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듀게가 생기기 전 듀나님부터 먼저 알았습니다. 시네 21을 창간시부터 봐 왔기 때문이죠. 그때가 9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눈팅만 한 20년 정도 한 셈인데 지난 2009년에야 비로소 등업고시를 치르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게시판을 아주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  4년 동안 알게 모르게 마음이 쓰이던 분이 3사람 있습니다. 그 중 한분은 이미 글을 안쓰신지 2년 쯤 되고 사실 내심으론 몹시 걱정이 됩니다. 행여 상황이 더 악화되서 안 보이시는 건 아닌가 하구요. 나머지 두 분이 라곱순님과 에아렌딜 님입니다.

 

2. 한 6-7년전에 어떤 여자 아이(20대 초반)를 잃은 적이 있습니다. 디아블로 하드코어에서 우연히 인연이 되었는데 하코 후배놈이 그 여자아이 사정이 너무 딱하다고 일단 술집에서 빼낸 후 저에게 무작정 보냈습니다. 일단 하루 밤을 어느 찜질방에서 자게 해 주고 다음날 같이 절에 갔습니다. "진재야 내가 너를 위해 108배를 하마. 너도 하고 싶으면 하거라" 이르곤 제가 절을 하기 시작하니깐 힘겹게 몇 번 절을 하더군요. 그렇게 저녁까지 같이 절에 있다가 밤차를 태워 보내면서 돈 몇십만원을 쥐어 줬습니다. 그 후로 네이트로 계속 이야기하면서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려고 애를 썼습니다. 갬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조언도 하고 몸이 아프니깐 의료보험에 가입해서 정기적으로 약도 타먹게 했는데 어느 날 부터 연락이 끊기더군요. 몇 개월 뒤 새벽에 후배 놈이 울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진재 죽었다고. 갑상선 병이 있던 아이가 결국 술집에 다시 다니다 다음날 출근을 안하니 가본 술집 마담이 원룸에 홀로 죽어있는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예전에 갬에서 만났던 어떤 놈팽이랑 동거하다가 아이가 하나 생겼는데  쫓겨나고 나서 나름 돈을 벌어야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술집에 갔던 것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되고 만거였죠

 

가족들과도 연락이 안되는 아이라 결국 제가 올라가서  후배놈 그리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초상을 치렸습니다. 화장하고 난 뒤 그날 밤을 수원에 있는 후배 집에서 잤는데 다음날 그러더군요 "형 내가 형 본지 20년쯤 되는데 어제 밤처럼 대취하고 통곡하는 것은 처음 보았어" 사실 저 그일 있고 나서 무지 힘들었습니다. 칼날에 심장이 베인 듯한 아픔과 좀더 잘했으면 하는 죄책감이 저를 한동안 괴롭혔습니다.

 

3. 위의 경험이 저를 무섭게 하고 이 글을 쓰게 만든 동기이기도 합니다. 온이든 오프든 내가 애정을 가지고 스스로 선택해서 속해있던 어떤 집단에서 누군가의 삶이 결정적으로 불행해진다면 저는 참 견디기 힘듭니다. 속말로 쿨식하지 못해서인지 듀게에서 가끔 지속적으로 우울을 호소하시는 분들 보면 제가 다 안절부절하는 기분이 됩니다. 그동안 에아렌딜님과 라곱순님께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조언을 드렸지만 별로 나아진 듯 보이지 않고 마음 속에 꽂혀 있는 '대못'을 뽑아내지 못하고 힘겨워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이 하지 못했던 그리고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을 에아렌딜님이 귀국한 것을 계기로 드리고자 합니다.

 

4. 삶은 어떻게 개선되는가 - 일단 멈추라.

 

지난 번 제주에서 스킨스쿠버 교육을 받을 때 강사의 이야기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 상황이 안 좋으면 일단 멈추고,생각하고,행동하라"라는 프로세스입니다. 삶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고치려는 시도보다 하던 짓을 멈추는 게 가장 우선해야 할 일입니다. 예를 들어 방이 어지럽다면 치우는 것 보다 일단 더 이상 안 어지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즉 어지르던 행위를  멈추어야 치울 여력이 생긴다는 거죠. 우리 나라 말에 "장난"이라는 단어가 있는 데 한자로는 作亂이라고 씁니다. 하려고 하는 데 결과적으로 더 어지러워지는 것은 장난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경구입니다.

 

이것이 되어야 비로소 마음이 아래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저 청소의 예에서 적극적으로 치운다는 행위는 마음이 위로 가는 길이라서 난이도가 높다는 거죠. 마음이 아래로 흘러야 자신의 현재 처지에 대한 남과의 비교 등등 상하로만 쏠려 있던 마음이 좌우를 보게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길가 꽃의 아름다움도 보이고 그것을 볼 줄 아는 자신도 고마와 지는 겁니다. 나의 현재 상황에서 일단 멈출 게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세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5. 부처는 늘 중생과 같이 간다 - 깨달음은 번뇌와 같이 간다는 믿음.

 

제 은사스님은 늘 그 말씀을 합니다. "구하는 그 마음을 쉬어라. 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오히려 더 장애물이다." "번뇌가 치성한 곳에 부처가 깃든다는 것을 일단 무조건 믿고 들어가야 공부 길이 열린다"

 

불교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중생고의 원인은 탐(탐욕)/진(분노)/치(어리석음)인데 이것이 벗겨지면 탐은 계율로,진은 선정으로,치는 지혜로 화한다"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예를 들어 탐욕은 그 방향으로는 부정적이지만 일종의 에너지입니다. 따라서 그 방향만 바꾸면 계를 철저히 지키는 에너지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탐욕을 없애서 청정한 계를 갖추는 게 아니란 거지요. 분노하는 마음(들끓는 마음)이 조용한 선정으로, 어리석음이 오히려 지혜로 바뀌는 계기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탐진치에 물들어 있는 중생인 우리가  스스로의 현재 상태를 잠정적으로나마 긍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현재의 고통, 이것을 계속 부정하고 없애려고 하는 것보다 그 방향만 튼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믿어져야  소위 말하는 "내 마음을 내가 맘대로 하는 마음공부"가 되기 시작합니다.  현재의 우울이 깊으신 분들은  얄팍한 힐링이니 하는 알량한 대증요법에 빠지지 마시고 정통으로 그리고 진정으로 자기의 마음을 탐구하십시오. 언제까지나 달달한 알사탕만 먹고 오히려 충치가 그것 때문에 더 생기는 건지도  모르고 살겁니까?

 

6.  삶의 진정한 비 가역적 변화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피라미드 모양의 벽돌쌓기 그리고 시선보다는 태도

 

저는 수영을 한지 20개월 째 입니다.  혼자 자유수영 한지는 1년 쯤 되는데 늘 수영장 가면 자유형의 경우  1단계 드릴부터 전체 18개의 드릴을 반복합니다. 1단계 드릴은 그냥 풀벽을 살짝 밀고 양손을 11자로 한 상태에서 가는 데까지만 가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 처음 수영을 시작하는 사람도 당장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동작입니다. 이것을 저는 지금도 하고 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할 때마다 그 느낌이 다릅니다. 이유는 가장 단순한 드릴이지만 제가 그 순간에 온통 제 몸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의 드릴 연습에서 가장 많이 한것은 1번 드릴이고 가장 적게 한것은 18번 드릴입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아직도 저의 수중 균형찾기에 심대하게 도움이 됩니다.

 

좋은 삶이란 좋은 루틴(자동화된 반응)을 몸과 마음 양쪽으로 다 쌓아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근데 이 자동화된 반응이란 것이 절대 쉽게 획득되는 것이 아닌데 이유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실천'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실천에는 어느 정도 양이 확보되어야만 '자동화 반응'이라는 질적 비약이 옵니다.

 

삶에 있어서 수영처럼 가장 기초적 드릴이지만 끝까지 심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드릴 같은 것이 있을까요? 예 저는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것을 '시선보다는 태도(자세)'라는 명제로 표현합니다. 삶의 자세(태도)가 좋아야 그 결과물로 좋은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거지 그 반대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몸과 눈에서 힘을 빼야 좋은 자세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해인사에서 뵈었던 스님은 저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한달에 3000배를 1번 하는 것보다 매일 108배를 한달 하는 것이 공부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근육을 붙이는 드릴을 수행하십시오. 그것이 어떤 드릴이 될지는 그 사람의 인연과 근기에 따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드릴을 찾는 노력을 멈추면 안됩니다. 불가에는 30년 수행이라면 스승 찾는 데만 29년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7.  삶이 남들보다 더 특별히 힘들다고 느끼신다면 더더더 쎄게 수행하세요. 더 큰 원력으로 더욱 더 간절한 마음으로, 지옥이 지옥인 이유는 간수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ps) 두분 이번 주말에 저 서울 가서 듀게 분들도 좀 만나는데 일요일날  뵐까요?ㅎㅎ 점심이라도 대접할께요. 이번에 안되면 이번 여름 휴가때 제주에 2주 정도 있을 예정이니깐 꼭 한번 오세요. 다른 건 제가 다 책임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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