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 눈부신 순간

2012.10.14 22:30

lonegunman 조회 수:2638




자, 이리 와요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고
날 사랑해줘요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아니면 우리 둘 다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아니면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가서 응답을 받는 날까지...

당신은 참 엉뚱해요
당신이 하는 말들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귀여운 말들이에요
하지만 그런 말을 한 마디만 더 들었다가는
내 머리가 펑하고 터져
나 천국에 가버리겠어요

사랑해줘요
날 사랑해요

아니요, 말했잖아요
그 말들이 다 당신의 진심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무슨 수로 알겠어요
우리가 죽기 전까진 말이죠
혹은 지구가 폭발해서
모두 천국에 가기 전까진 말이에요



//

이어지는 본문은 아마도 아주 편협한 평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그다지 제가 언급할만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어덜트 컨템포러리에 가까운, 뻔하고 흔한 포크 음악을 하는 자매인 거죠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아무튼 제가 귀 기울일만 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겁니다
좀 알아보니 부모님은 히피였다고 합니다
두 자매, 알리슨 피어스와 캐서린 피어스는 둘 다 발레리나라고 하는군요
우연한 기회에 기획사를 잡아 내게 된 두 장의 앨범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별다를 것 없는 메인스트림 여성 포크 싱어의 하늘하늘하고 폭신폭신한 곡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별로 주목할 이유가 없는 듀오의 흔한 앨범이었던 거죠
나중에라도 자세히 들어보질 않아서 그 안에 어떤 빛나는 무엇이 있는지는 사실 잘 모릅니다, 굳이 궁금하지도 않을 정도로 저에겐 그런 뮤지션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요

특별한 성과 없이 그들 스스로도 이 길로는 별 가망이 없으리란 걸 알았을 무렵
대체 이들에게서 무얼 본 건지 아직도 미스테리한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예전에 제가 절절한 팬심을 고백한 적도 있었던 벤 퀄러(2012년 음반은 들어보셨나요?), 그를 발굴해낸 프로듀서 로저 그리너월트와의 만남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중에 그녀들이 회상하기를 그때, 그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느낌이 왔다고
그래서 말 그대로 '정신줄을 놓고 놀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비밀이 있어
지켜줄 수 있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호주머니 속에 꽁꽁 숨겨놓기야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야
네가 지켜줄 걸 확신하니까 말해주는 거야
왜냐면 둘 사이의 비밀을 지키는 건 쉽거든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말이야

왜 그렇게 웃어?
무슨 비밀이라도 아는 사람처럼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비밀을 지켜준다는 그 말
세상에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누가 비밀을 지킨다고 그래
애초에 우리가 스스로의 끔찍한 행동을 
비밀이랍시고 누군가에게 떠드는 것부터가 그래
비밀은 우리의 머리를 좀먹어 들어가서
결국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리거든
그래서 모두가 비밀을 말하는 거야
떠벌리고 마는 거야

비밀이 있어
지켜줄 수 있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호주머니 속에 꽁꽁 숨겨놓기야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야
네가 지켜줄 걸 확신하니까 말해주는 거야
왜냐면 둘 사이의 비밀을 지키는 건 쉽거든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말이야

내 눈을 바라봐
점점 졸음이 올 거야
네가 지키고 있던 비밀이
널 최면에 들게 하는 건 아니니?
그게 뭔지 나는 알아
네가 감추고 있는 걸 난 다 안다고

비밀이 있어
지켜줄 수 있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호주머니 속에 꽁꽁 숨겨놓기야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야
네가 지켜줄 걸 확신하니까 말해주는 거야
왜냐면 둘 사이의 비밀을 지키는 건 쉽거든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말이야

알리슨?
-왜, 캐서린
너한테 해줄 얘기가 있어,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야 해
-약속할게
목숨 걸고?
-목숨 걸고

정말 말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거다?
너 정말 비밀 지키기로 약속한 거야?

비밀이 있어
지켜줄 수 있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호주머니 속에 꽁꽁 숨겨놓기야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야
네가 지켜줄 걸 확신하니까 말해주는 거야
왜냐면 둘 사이의 비밀을 지키는 건 쉽거든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말이야

그래,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어버린다면
비밀은 무덤까지 가는 거야


//

이전의 음악을 감안한다면 대체 어디에 저런 뒤틀린 위트가 숨어있었는지, 저런 신랄한 목소리와 창법이 숨어있었는지 신기합니다
무슨무슨 차트에도 들고, 무슨 드라마 무슨 쇼 여기저기에 싱글 커트된 곡들이 쓰이기도 하면서
제법 괜찮은 결과를 낳습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사랑과 배신에 관한 13가지 이야기'란 타이틀의 3번째 정규 앨범을 저는 정말로 좋아합니다
앞의 두 앨범에 대한 평가에는 달라진 게 없지만 말입니다
말하자면, 남성 대표로 scissor sisters의 tadah 앨범이 있다면 여성대표로는 the pierces의 13 tales of love and revenge 앨범이 있는 거죠
우연찮게 양쪽 다 자매들이로군요





누구는 내가 당신 돈 때문에 당신을 꼬신다고들 하지만
사실 난 자기 몸이 좋아서 이러는 거야
만나서 반가워 자기
나 자기랑 연애하고 싶은데
가서 엄마 아빠한테 일러봐
그래봤자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자기 심장은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그래도 자길 망가뜨리지 않을게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건 우리 둘 다 알고 있지만
글쎄 안 그런다니까

사랑하는 동안 불을 끄지마
두 눈 똑바로 뜨고 뭐가 보이는지 말해봐
같이 누울 수 있게 침대를 좀 치워줘
자기가 더럽혀야 할 건 내 몸이야
자, 여기 내 드레스야
어디 한 번 입어봐
내가 자기의 남자 친구가 돼줄게
이제 자기는 나의 이쁜이야
나는 자기의 뭐라고?

자기 나한테 전화번호 줄 수 있어?
난 자기한테 애 낳아줄 수 있어
우리 같이 도망갈까?
난 물 위라도 걷겠어
불구덩이 속이라도 걷겠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어
허튼 수작 하지마
자기 심장은 지금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
그렇다고 자길 망가뜨리려는 건 아니야
뭐,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건 우리 둘 다 알지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지

사랑하는 동안 불을 끄지마
두 눈 똑바로 뜨고 뭐가 보이는지 말해봐
같이 누울 수 있게 침대를 좀 치워줘
자기가 더럽혀야 할 건 내 몸이야
자, 여기 내 드레스야
어디 한 번 입어봐
내가 자기의 남자 친구가 돼줄게
이제 자기는 나의 이쁜이야
나는 자기의 뭐라고?


//

반전이라면
약간의 명성을 얻은 피어스 자매의 네 번째 앨범이 앞의 두 앨범의 정서로 되돌아갔다는 것일까요
번뜩이는 재치는 다시 빛을 잃고 하늘하늘 폭신폭신한 포크 싱어의 자리로 복귀한 거죠
완전히 공정한 진술은 아닙니다
어쨌든 로저 그리너월트의 프로듀싱을 받은 세 번째 앨범을 거치고 난 뒤 4집의 사운드 완성도나 만듦새는 향상되었고, 특색없던 전작들에 비해 꽤나 싸이키델릭한 히피 감성이 묻어나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앨범의 어쩌면 짧았던 영광을 뒤로 하고 애초의 노선으로 돌아갔다는 건 여전히 의아하기도 고무적이기도 합니다
3집의 영광 뒤엔 프로듀서의 입김이 강했을 수도 있고, 맞지 않는 옷이라 느꼈을 수도 있고, 단지 수많은 옵션 가운데 하나였을 수도 있고, 어느 쪽도 아니고 그저 별다른 비화같은 건 없을 수도 있었겠지요
단, 3집과 4집 사이에 만들어진, 3집의 뒤틀린 정서의 연장선에 있었던, 그러나 4집의 노선 변경으로 앨범에 실리지 못한 비운의 곡 'i shot my lover in the head'를 통해
그 사이 그녀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을 따름이죠







애인의 머리통을 날려버렸어
아, 죽진 않았어, 거의 죽기 직전이지만
침실 바닥에 피투성이로 누워있어
옆집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물었어
'총소리 못 들었어요?'
난 '아뇨'라고 대답했지만 내가 거짓말쟁이란 건 다들 알아
그들이 911에 전화하겠다고 외쳤어
난 말했어 '그럼 총을 숨겨야겠네요'

내가 왜 그랬지?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내가 왜 그랬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자수해서 정당방위라고 하면 믿어줄까? 그건 나라도 안 믿겠다
그러게 그는 왜 도망을 쳐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거야

애인의 머리통을 날려버렸어
침대에서 다른 여자랑 뒹굴고 있더군
나를 봤을 때 그의 표정을 당신도 봤어야 하는데
숨겨뒀던 총을 꺼내 들고
여자는 보내줬어, 꼴이 가관이더군
아무튼, 난 그 여자가 아니라 남자한테 볼 일이 있는 거니까
사내놈이 무릎꿇고 두 손을 싹싹 빌며
미안해, 자기, 이쁜아, 미안해, 하던 꼴이라니

내가 왜 그랬지?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내가 왜 그랬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자수해서 정당방위라고 하면 믿어줄까? 그건 나라도 안 믿겠다
그러게 그는 왜 도망을 쳐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거야

이 나라를 떠서 터키나 멕시코로 망명해야 할까봐
아무튼 그도 내게서 떠났을 때 
일이 이렇게 되리란 걸 알았을 거야


//

누군가에게 피어스 자매의 음악은 여전히 빛나는 위대한 작품일 겁니다
다만 이건 어쨌거나 제 포스팅이니까요
길을 가다 흘러나와도 발이 멎지 않았을 그들의 음악 행보에서 단 한 번 눈부신 순간을 공유하고 헤어진 기분이 드는 겁니다
그들은 본인들이 행복할 길을 찾아 떠났고
저는 여전히 그 눈부신 순간을 가슴에 품고 들여다볼 수 있으니
결국엔 모두에게 해피엔딩.
스캇 매튜의 랭귀지나 소규모 아카시아밴드의 슬픈 사랑 노래나 비틀즈의 라키 라쿤이나
제 뻔한 가을 레파토리 속 하나인 아래의 노래를 꺼내 듣다 
문득 감상에 젖어 떠들고 가는, 사실은 불공정한 이야기이지요
누군가 제게 와서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어 그 때가 너의 눈부신 시절이었더라고 그리 말한다면
그만한 악몽이 없을테니까요







우리의 몸이 금속으로 만들어졌다면

만일 우리가 강철로 된 심장과

바위처럼 단단한 마음을 가졌다면

지금처럼 나약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만일 군인들이 

부드러운 맨몸으로 전쟁터에 나간다면

우린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나마 모든 감각마저 잃게 될까


그대에겐 세 가지 소원이 있었지

하나는 천국까지 날아가는 것

하나는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것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그대의 연인이 사랑을 거두어가는 때를 위해 남겨두었어


그대는 말했지

그녀의 모든 걸 알고 싶다고, 마치 연인처럼

그녀의 고통스런 기억을 지우고 새로이 태어나게 해주고 싶다고

하지만 그댄 곧 알게 될 거야

그녀를 구하려는 그대의 시도가 얼마나 그녀를 분노하게 만들지

어느쪽이든 그댄 실패인 거야


그래서 그대의 세 가지 소원은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

삶이 달콤함으로 가득차는 것

그리고 어차피 그녀의 사랑을 잡아둘 순 없을테니

마지막 하나는 그 때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어


그대의 세 가지 소원은

하늘 저 너머로 훨훨 날아가는 것

물고기처럼 끝없이 헤엄쳐가는 것

삶에서 씁쓸한 것들은 다 지우고 달콤함만을 남기는 것

양심의 가책 없이 오직 행복만을 느끼는 것

그리고

수 천 번 입을 맞춰줄 단 하나의 진실한 사랑


그대는 부드럽길 

다정하길 

타락하지 않길 원했어


그러나 마지막 하나는

그대의 연인이 사랑마저 앗아갈

그 날을 위해 남겨두었지



go to heaven

secret

lights on

i shot my lover in the head

three wishes


all songs from the pierces

translated by lonegu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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