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기적이고 철없는 사람으로서

내가 과연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내가 지치면 지칠수록 그 사람의 일상도 지난하다는 것을 더 절실히 알게 되고

내가 무언가 해 줄수 없다는 이유로 그의 소망을 빼앗을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마저 얄궂게 느껴집니다.

 

행복을 많이 많이 받아서 쌓아두었다고 생각했는데, 흘깃 보니 황량하기 그지없고

그 위에서 춤이라도 출 듯 기뻐하고 있었던 나는 참 바보같구나 싶기도 하고.

 

약한 몸으로 약한 감정으로 약한 관계를 만들었으니

아직은 좀 더 농부처럼 움직여야 할 때 인것 같습니다.

 

별시리 특별한 계기는 없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2.

 

최근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언급된 내용인데

이스라엘의 시청각 장애인 극단 날라갓 Nalaga'at 극장에는 소등 消燈 이라는 레스토랑이 있다고 합니다. 

 

실내에 불을 켜지 않아 완전히 어두운 가운데

손님들은 종업원의 손을 잡고 테이블로 안내되며,

종업원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주문하고 어둠 속에서 식사를 마친 후

종업원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물론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잠시나마 체험해보라는 의미로 기획된 레스토랑이지만

사람들은 그 이상의 무엇을 얻어간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믿고 몸을 맡기는 경험

차단된 시각 대신 후각과 미각이 소름끼치게 살아나는 경험

상대의 소리에 집중하고 움직임을 미루어 짐작하는 경험 같은 것 이겠지요.

 

히브리어로 Do touch, '만져달라'는 뜻이라는 날라갓의 명칭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 레스토랑인지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민감하고도 따뜻한 어둠일 것 같아서

내 어두운 날들도 아프지만은 않은 것이었겠구나 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날라갓에 들어오기 전에는 월급이라는 걸 받아본 적도 없는

열악한 현실은 그곳이나 이곳이나 가리지 않지만

적어도 그들은 Nalaga'at, 속삭이며 손을 내밀 수 있으니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우울하고 불안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날이 오면

친절한 사람에게 소등 消燈 같은 곳에서 손을 잡아달라고 말해보아야 겠어요.

 

3.

 

어제는 밤 시간 사람이 없는 공터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는데

그저 지나치다 잠시 들렀을 뿐인데

밝은 곳에서 쫓겨 들어온 생쥐처럼 아늑한 기분이어서 새로웠어요.

 

햇빛을 쪼이면 힘이 난다는 것도

어두운 곳에서 긴장이 풀리는 것도 동물처럼 느낄 수 있어

제가 가진 여러 모습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59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11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601
74 날이 서늘하네요. [6] 칼리토 2015.08.25 1701
73 [바낭] 곧 No.1 이 됩니다. / 김포로 입국하면 입국심사 받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3] 가라 2010.10.25 1707
72 (바낭) 사람을 만나고는 싶은데 귀찮기도 하고 [4] 사람 2013.05.15 1714
71 여름휴가는 뭐하세요? 아님 벌써 다녀오셨나요? [16] 103호 2012.08.09 1740
70 탄산수 바낭, 이후 이야기 [3] 칼리토 2015.04.08 1748
69 [듀나인] 렛 미 인(2008) 뒤늦게 봤는데.. [5] 마음의사회학 2011.03.08 1782
68 [잡담] 음료수를 고르는 나만의 기준? [5] intrad2 2012.07.12 1812
67 (바낭바낭) 미술관에도 갔어요 >_</ (사진추가) [8] Kovacs 2013.10.10 1911
66 날씨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4] 해삼너구리 2010.08.24 1942
65 [바낭] 좋아하는 사람은 커녕 아는 사람도 만나기 힘든 가요 몇 곡 [10] 로이배티 2011.11.29 1942
64 브로콜리너마저 잔인한 사월 MV + 저도 꿈 얘기 [8] 봄눈 2012.06.08 1986
63 [바낭] 다른 사람은 안 웃긴데 나만 웃긴 말 [6] 에아렌딜 2012.05.02 1999
62 [짝사랑 바낭] 내 안의 그녀가 너무 커졌어요. [3] ravia 2011.12.02 2005
61 [바낭] 여러명 대 한명의 싸움이 왜... [9] 가라 2011.07.22 2034
60 [바낭] 형편 없는 파스타집 한탄 [4] sweet-amnesia 2011.03.17 2106
59 [회사바낭] 조직해체 & 해경 구조작업 [5] 가라 2014.05.19 2158
58 텔레마케팅 아르바이트를 하던, 2007년 여름의 일기 [9] 이울진달 2011.11.16 2171
57 한 페이지에 시스타 효린양 이름이 두 번이나 떠 있길래... [5] 로이배티 2010.12.07 2178
56 바낭)하룻밤이 참 덧없군요 [4] 가끔영화 2011.03.29 2198
55 [연애바낭] 전 사실 운명적인 사랑을 믿어요. [3] Rockstar 2013.10.10 225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