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두가 전생에 못 구한 현서를 구해내려고 몸부림치다가 앞 칸 승객 꼬리 칸 승객 할 것 없이 다 죽이며 민폐 끼치는 이야기... 였네요;


- 영화를 보는 내내 줄곧 왠지 모를 기시감에 시달리다가 유치원 칸-_-을 보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이거 랩쳐/콜럼비아잖아! ㅋㅋㅋㅋ"

 뭔 소린지 이해가 안 가셔도 괜찮습니다. 게임 얘기거든요. ^^; '바이오 쇼크'라는 유명한 게임 시리즈가 있는데 살짝 닮은 구석들이 좀 있더라구요.

 외부와 고립된 공간에 존재하는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썩어 문드러진 사회. 단순한 정의와 동기를 가지고 그 체제에 도전하지만 점점 모든 게 다 생각과는 많이 다르며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신이 생각하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주인공. 설립자에 대한 신격화의 모습들. 그리고 마지막 보스(?)와 독대하는 장면과 장광설 등등등.


- 강렬한 아이디어 하나를 던져 놓고 '이런 상황이라면 이렇게 되겠지? 저렇게 되려나? 이건 어떨까?' 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모습이 SF 단편 소품을 연상시켰습니다. 다만 결말 부분으로 가면 갈 수록 발단을 이루는 과학 기술과는 영 상관 없는 이야기로 흘러갔다는 게 좀 아쉬웠네요.


- 봉준호의 영화들은 보다 보면 결국 우화 내지는 동화라는 느낌을 주는 게 대부분이었고 이 영화도 그랬네요. 아주 조금만 생각해도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부분들이 넘쳐나는 이야기였는데, 그냥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극복했습니다. 말이 안 되기로 따지면 '괴물'도 뭐... 그런 놈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왜 그리 까댔냐


- 환갑 넘은 어르신들과 볼 영화는 아니더군요. 가족분과 제 부모님과 함께 봤는데 어르신들의 반응이 '며느리가 보여줬으니 나쁜 말은 못 하겠고' 뿐이었습니다. 조만간 다른 좀 평범한 영화 하나 알아봐야겠;


- 때깔 참 좋더군요. CG 장면들이 티가 꽤 나는 편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화면의 질감들이 맘에 들었습니다. 어쩜 그리도 배우들을 다들 사연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들로 불러다 채웠는지. (혹은 그렇게 분장을 시켰는지;) 초반의 어두운 배경이 많이 나오는 장면들은 그냥 배우들 얼굴만 봐도 때깔 좋단 생각이 들 정도였네요. 다만 주인공인 미국 대장님이 상대적으로 얼굴이 너무 멀쩡하고 평범한 느낌이라 아쉬웠는데. 끝까지 보고 나선 그것도 납득 했습니다. 너무 거칠고 카리스마 있는 얼굴을 배우를 쓰면 안 될 역이었던 것 같아요.


- 가장 아쉬웠던 건 후반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환락 칸들-_-이후의 전개였습니다. 점점 더 속도감을 붙여가며 쾌감을 줬어야할 부분인데 좀 밍숭맹숭하게 슥슥 넘어가 버리기도 했고. 또 엔진칸을 앞두고 길게 이어지는 냄쿵과 미국 대장님의 대화가 좀 지루했어요. 심지어 그 장면에서 미국 대장님은 연기도 못 하는 걸로 보였...;

 에드 해리스와 미국 대장의 대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주 보고 앉아서 말로 다 때우고 있으니 에드 해리스가 아무리 카리스마를 뿜어내도 좀 지루해지더라구요. 제발 그만 좀 떠들자... 라는 생각을;


- 그리고 지금까지 본 봉준호 영화들 중에 정서적 울림이 가장 적은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부성에 모성에 아동 학대에다가 무력한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장면까지 나오는데도 별 느낌이 없었네요. 보면서 '제발 죽지 마!!'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무술 간지남 젊은이가 허망하게 칼에 찔릴 때 정도만. 그것도 '그렇게 잘 싸우는 애가 왜 저리 허망하게!!!'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 곡선 코스에서 창을 통해 저격하는 장면 같은 건 아이디어는 참 좋았는데 정말 밍숭맹숭하게 그냥 다다다! 다다다다다! 하고 끝나버려서 허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좀비-_-아저씨는 좀 지겨웠어요. 그 정도 찔리고 맞았으면 그냥 죽지 좀;;


- 결국 설국 열차 내 전투력 최강자는 냄쿵이었더군요. 미국 대장과 무술남이 함께 달려들어도 처리 못 했던 좀비 아저씨를 그냥 혼자서 무슨 쇠파이프 같은 거 하나 들고 처리했잖아요. 굿 잡. -_-b


- 존 허트는 그냥 얼굴 자체가 연기라는 느낌이었고. 앨리슨 필과 틸다 스윈턴은 연기하면서 정말 재밌었겠다 싶었습니다. 제이미 벨은 정말 제이미 벨스런 역할이어서 할 말이 없구요. 에드 해리스는 거의 특별 출연 같은 느낌이었는데 어쨌든 그냥 멋졌네요. 송강호는 그냥 송강호였고 고아성은... 안 좋은 평을 많이 듣고 가서 그랬는지 그냥 괜찮았어요. 목소리가 너무 일상적인 톤인 데다가 거의 한국어 대사들이어서 튄다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원래 캐릭터 자체가 많이 튀는 역할이잖아요. 그러고보니 이 분이 벌써 스물 둘입니다. 세월 참(...)


- 암튼 재밌게 잘 봤습니다. 헐리웃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소품급의 작품이긴 하지만 국내 영화로는 엄청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이고, 또 쟁쟁한 배우들을 즐비하게 불러다 놓고 찍은 영화인데도 이 정도로 컨트롤 해낸 걸 보면 앞으로 헐리웃에서 봉준호에게 러브 콜이 꽤 들어오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또 지금껏 본 대자본 한국 영화(다국적 영화-_-라고 봐야할 것 같긴 하지만)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짜증내지 않고 본 영화라는 점에서 제겐 기념비적인 영화였네요.

 ...라지만 역시 제겐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마더' 쪽이 더 취향이긴 했어요. '괴물'도 좀 애매한 느낌이었는데 이 '설국열차'도 약간 그런 느낌이 있어서 마구 좋아하진 못 하겠습니다.

 그래도 결국 재밌게 보긴 했다는 얘기.


- 끝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51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405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727
75 '사랑비' 간단 잡담 [12] 로이배티 2012.04.02 2470
74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8] 감자쥬스 2011.07.25 2433
73 [바낭?] 보고싶고, 그립습니다, 안 선생님..[그림有] [3] miho 2011.07.17 2433
72 아... 외모와 능력 [4] dust 2011.05.14 2388
71 [자동재생] 그녀의 겨털 [6] 화려한해리포터™ 2012.05.07 2385
70 여자 핸드볼은 왜 매 경기가 결승전 같은지 모르겠어요 [8] 발광머리 2012.08.08 2374
» [스포일러] 짤막한 '설국 열차' 관람 후 잡담 [8] 로이배티 2013.08.06 2352
68 탐나는 남의 별명, 닉네임, 아이디 있으세요? [9] 아.도.나이 2011.03.25 2349
67 [여행] 터키 여행 갑니다! 조언 부탁드려요! [11] Francisco 2011.06.15 2344
66 지금 KBS1 <더 콘서트>에서는 한 시간 넘게 정경화 특집이 방송중, 간만에 구역질이 나는 드라마 캐릭터는 [4] Koudelka 2015.04.23 2337
65 (바낭성 질문) Gavarny 벨지안 트러플 초콜릿 파는 곳 수소문.; 오프라인에서 보신 분? [4] mockingbird 2011.08.04 2331
64 남을 바꾸려고 노력해보신 적 있으세요? [13] 우박 2011.01.11 2299
63 두고두고 아까운 오스카 연기상 탈락의 순간 [11] kiwiphobic 2013.02.03 2292
62 야구잡담] 류현진 선수 연속경기 퀄리티스타트 기록이 깨졌습니다 [6] august 2010.08.27 2282
61 <우리도 사랑일까> 보고 왔어요 [4] 봄눈 2012.09.29 2281
60 방금 개콘 슈퍼스타 KBS에서.. [1] S.S.S. 2010.10.24 2273
59 [연애바낭] 전 사실 운명적인 사랑을 믿어요. [3] Rockstar 2013.10.10 2252
58 고레에다 히로카즈 최신작 '기적' 일본 예고편 [6] Chekhov 2011.06.18 2228
57 돌아온 빵상 아줌마 [3] chobo 2013.01.02 2195
56 [강아지] 분양 이후 [7] 닥호 2012.12.05 216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