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베타 때부터 꽤 오래 와우를 했더랩니다. 와우의  중독성에 대해 혀를 내두르는 분들과는 달리 식음을 전폐하고 매달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거진 삼년간 와우를 했지만 만렙 한 번 못해봤으니까요.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가지고 있는 캐릭터 중 가장 고레벨인 전사 캐릭터가 레벨 58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대니 레이드니 하는 것은 얘기만 들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 번에 오래 해봐야 두어시간 정도고, 오래할 수 없다는 것을 알다보니 파티를 꾸리거나 길드에 가입하거나 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을 혼자서 해결했거든요. 레벨을 빨리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레벨이 낮다보니 PvP도 즐기지 않고 그냥 느긋하게 시간날 때마다 아제로스를 돌아다니며 그냥 구경했다고 하는게 맞겠죠. 거기다 죽은 다음에 시체 찾는 것이 귀찮아서, 게임을 하다가 한 번 사망하면 그날은 로그아웃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많아요. 게임을 열심히 한 분들은 주로 업적이라든가, 힘들었던 싸움에 대한 추억이 많겠지만, 저는 좀 달라요.... 주로 굴욕적인 사건들이죠.


  • 레벨 이십을 조금 넘었을 때 소금평원(?)에 놀러갔다가 떼거지로 몰려온 고레벨 호드들을 만났습니다. 시뻘건 이름들이 가득한 걸 보고 그냥 얼어붙었죠. 그 중 하나가 저를 공격했는데, 혼자 있는 저렙에게 무슨 짓이냐고 다른 호드들이 제지하는 것 같더군요.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도망가면 진짜 공격할 것 같고...... 호드들을 쳐다보고 있다가, 왠지 가만있기 뭐해서 춤을 췄습니다. 그랬더니 무서운 호드 형아들이 웃으면서 자지러지더군요. 그리고 누군가 모닥불을 피우고. 모두 저를 둘러싸고 자리에 캠프 파이어 자세로 앉더군요. 그로부터 십여분..... 이모티콘을 이용해서 춤도 추고, 기차 놀이 흉내도 내고...... 웃겨야 산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쇼를 벌였습니다. 몇분이나 흘렀을까 호드 형아들은 지루해졌는지 모닥불을 끄고 손을 흔들고 인사하더니 웃으며 사라졌습니다. 저는 식은땀으로 빤스속까지 젖......지는 않았죠. 게임이니까. 살아남기 위해 춤을 춰 본 사람, 또 있으면 나와보세요.

  • 그날의 굴욕도 잊고 무럭무럭 성장한 제 캐릭터는 일년만에 레벨이 50이 넘었지만................ 남들 다 타고다니는 말 한마리 없었습니다. 남들은 레벨 40이 되면 말을 사서 타고 다니던데, 저는 돈이 없더라구요. 뚜벅이 인생. 어느날 동부역병지대를 향해 열심히 뛰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타고 제 옆을 지나갔습니다. 총총이 점점 멀어지는 이의 모습을 보면서 달리는데, 갑자기 그 냥반이 다시 제 앞으로 달려와서 묻더군요. 레벨이 50이 넘는데 왜 그냥 뛰어다니냐고요. 내 돈이 없어 말을 살 수 없소했더니...... 얼마나 있냐고 물어보더니, 말을 살 수 있는 거액을 (60골드였던가요?) 쾌척하고 가더군요. 독지가의 적선으로 돈이 생긴 걍태공은 쪽팔린 줄도 모르고 경쾌하게 달려가서 말을 샀습니다. 와우 일년만에 말타고 달려보니 징글벨 노래가 절로 나옵디다.

  • 언젠가 늘 비슷한 시간에 접속하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파티를 해서 같이 하다가 얘기를 하다보니 부산에 사는 50대 아저씨인데 아들한테 와우 하는 법을 배워서 틈틈히 하신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제가 퀘스트도 게임 하는 법도 알려드리고, 반 게임 반 채팅을 하곤 했는데.... 석달 정도 지나고 나니 어느새 친구 목록에서 레이드를 뛰고 있는 그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달에 1레벨씩 올라갔으니 더이상 같이 플레이할 상황이 아니었지요. 혼자 늙지 않는 뱀파이어의 슬픔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습니다.


불타는 군단과 리치왕의 귀환은 플레이하지 않았습니다. 오리지널 와우도 만렙을 하지 못했는데 불타는 군단이니 리치왕의 귀환은 제게 너무도 먼 이름이었거든요. 이번 대격변은 그런데 다시 와우를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을 나게 합니다. 새로운 종족과, 저레벨 지역이 대개 바뀐다는데..... 새로 변화한 와우의 모습을 다시 여행자의 모습으로 돌아가보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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