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기때부터 저희 집 골목 부근에서 밥을 나눠주던 길고양이가 있습니다.

노란색 털무늬에 약간 붉은 기가 있어 꼭 염색이라도 해놓은 것 같은 쨍한 노란 색깔의 고양이예요.

 

녀석이 어찌나 똑똑하고 야무진지 이 골목길에 밥 주는 사람이 늘어날 정도로 나름 예쁨 받고 있었어요.

퍽 서열도 쎈지 다른 녀석들하고도 싸우는 걸 종종 봤는데 늘 이 녀석이 이 골목을 장악했어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안 보이던 녀석이 오랜만에 나타났길래 보았더니

너무 마른거에요. 살이 통통하게 올랐었는데...

돼냥이 되어 가네? 하고 웃었던게 고작 삼사일 전이예요.

 

좀 이상해서 사료를 좀 부어줬는데 허겁지겁 먹으려고는 하는데 전혀 사료를 씹지 못하더라구요.

입안에서 굴리다 튕겨 나가고, 또 튕겨나가고...

녀석도 답답한지 냥냥 한숨 쉬듯 울길래 일단 캔 하나 까줬더니 국물을 낼름 다 먹어치우네요.

 

뭔가 치아 손상이 있는건가 싶어서 보는데 송곳니는 확실히 보이지만

다른 이는 아무래도 안보여요. 이갈이 할 시기는 지난 것 같은데요.

안그래도 이사갈 날이 얼마 안남아 녀석과 슬슬 작별 절차를 밟으려 했는데

이런 식으로 헤어지는 게 좀 짠해요.

 

길고양이의 삶이라는 게 고단하고, 또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워낙 활발하고 잘 놀던 녀석이 하필 헤어질 때 되어서 이렇게 비쩍 말라 사료도 잘 먹지 못하는 걸 보니 싱숭생숭 하더라구요. 

 

이런 식으로 먼저 정 떼고, 이별하기냐? 하고 꽁하게 말했는데

이 녀석이 길다란 너트 볼트를 물어다 줬어요.

진짜 물어다 줬어요...;

아마 저 먹으라는 거지요?;

아님 이거나 먹고 꺼지란 건지...ㅎㅎ

 

여건이 되면 들여서 키우고 싶었던 고양이였는데

정드니 이별이네요.

혹시 병들어 죽는다해도 그것이 길 위의 묘생이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와 지내는 동안 행복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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