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누구와 만나서 노십니까?

2013.07.11 17:03

Koudelka 조회 수:5124

    "아니 그럼 금요일 저녁에 맥주 한 잔 하자고 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네."

    일전의 어느 점심 시간, 신장개업한 식당에서 갈비탕을 떠먹다 말고 누군가로부터 무방비로 들은 질문에 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없습니다. 없어요. 대답하고 보니 진짜 없습니다. 그 날은 마침 불금을 앞두고 불타오르는 마음을 주체 못해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에 날개라도 달린 양 눈누난나 하는 사람들도 많았겠지만요. 그렇다면 수요일에 또는 목요일엔 약속이 있었느냐? 없습니다. 저는 사실 저런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저에게 전화 걸어 술 마시자 밥 먹자 보고 싶다 말하는 친구들 또는 지인들이 제 곁에서 없어진 지요. 그리고 제가 먼저 전화를 걸어 저녁이나 술약속을 잡기도 전에 스마트폰 송수화기 너머로 벌써 전자파보다 강한 상대방의 피로와 부담감이 몰려옵니다. 그럼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상대방의 악의 없는 발언에, 진짜 그 순간은 먹먹해졌다는 흔한 말로는 다 표현이 되지 않았어요. 30대 중후반부터 40대(여자) 성인에게 친구란 무엇인가? 꽤 오래 전부터 저는 이 주제에 천착하기 시작했고 비교적 가까운 최근에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어요.

 

   지금 내가 사는 나이의 시간, 이 시절은 도무지 누구를 제대로 재밌게 만날 수 없는 시절이구나. 대개는 나를 버려 다른 무엇을 구원해야 하는 시기의 가장 절정이구나 하는 평범한 깨달음 같은 거요. 저는 언제부턴가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이 에너지를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에게 점점 더 함몰되어 가는 듯한 이상신호를 느꼈지만 속수무책입니다. 고상하고 돈 드는 취미를 새로 하나 가져야 할까 싶지만, 내 몸에 들이는 돈으로도 역부족인데다가 요 몇 년 사이 저는 정말 뭘 하고 싶은 게 도무지 하나도 없어요.

   

   친구들 대부분은 결혼 했고 또 평균 한 두 명의 아이들이 있지요. 누군가는 또 결혼생활에서 돌아와 새로운 사람과 새출발을 하기도 했고 그러고 또 아이를 갖고. 그리고 나서 저는 그들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사람에게 가족구성원이 생기고 늘어난다는 것은 울타리 너머 타자의 개입에 대해 엄청난 제한이 자연스레 생긴다는 것은 이미 일가족을 통해서도 경험했던 터. 물리적인 조건들의 장벽이 높아지고 불편해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저는 친구들과 그 끈을 놓지 않으려 했고, 항상(?) 먼저 달려가 주는 것을 기꺼워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노력만으로는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고 나서 저는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지레 포기했다고나 할까요? 사실 어느 순간 저는 그들과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단히 고상한 주제가 아니라 일부분 찌질하고 노골적인 100% 일상 얘기만 해도, 니가 나 같고 내가 너 같았던 20대 중반에서 30초반을 반추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정말이지 저는 정말 할 말이 없었어요.

 

    한때의 저는 이 세상엔 단 두 부류의 사람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죠.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과, 내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제 오만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저는 늘 전자들에 둘러싸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술을 마시고 밤이 새도록 무수한 얘기들을 풀어놓으면서도, 속으론 늘 후자들을 열망해 왔어요. 혹여 눈치 빠른 전자들이 후자를 갈망하는 저를 의식하면 저는 예의와 의리로 불식시키면서요. 꿈도 욕심도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너무 명확했던 그 시절에 제가 뿜어낸 에너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런 나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과 경멸하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았는지 당시엔 깨닫지 못했죠. 이젠 너무 늦었고,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죠.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갈수록 같이 놀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간혹 직장에서의 회식이나 동료와 술자리나 저녁 약속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만나는 주기는 월 1회 이상은 안 됩니다, 제 품위 유지를 위해서라도요.

 

   그런데 늦은 저녁 또는 밤의 퇴근길, 사대문 한 중앙 도심의 복판이라 할 수 있는 이 동네에 다다라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부터 소외감이 느껴져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성경처럼 오묘한 말씀이예요. 실내 좌석이 모자라  바깥까지 내놓은 오*닭의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광경을 보면, 곧 거품처럼 꺼질 시시껄렁한 얘기와 허튼 약속이라도 그 순간은 맹세를 할 만큼 확신하는 저 친목질들의 과시에 조금은 기가 죽으며... 나는 정말 소소한 사는 재미를 놓치고 산 지 꽤 오래 되었다고.

 

   그래서 저는 운동을 갑니다. 할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이것이 그렇게 불쌍하거나 나쁜 상황은 아니지요. 운동은 여러모로 구원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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