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후유증의 T.O.P

2010.09.27 15:05

레드필 조회 수:3701

명절 후유증의 정수는 뭐니뭐니해도 가족, 친척분들의 백분토론장이죠.

저보다 어린 친인척까지 죄다 친한나라당인 경우 명절 몇일 전부터

단단히 각오를 하고 정신건강 예방을 위해 만반의 대비를 갖추어야 해요.

 

오손도손 마주 앉아 화기애애하게 아직까지도 노무현 욕을 서로 나누며

즐겁게 웃기도 하고, MB가 눈물 흘리는 아침방송을 함께 보면서 같이

울기도 하고 모두가 하나가 된답니다.

 

조선일보와 KBS를 함께 보며, 이제 좀 나라가 제대로 되어 가고

있다는 희망으로 흐믓해 하기도 하고, 몇 년째 시청거부하고 있는

MBC가 빨리 정신차리기를 기대하고 있죠.

 

혼자 삐뚤어진 저는 가족들 중 가방끈도 제일 짧고, 잘못하면

엄청난 다구리에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조용히 찌그러져

여러 친지분들의 수준높은 대화를 관전하는 입장이지요.

 

항상 겪는 일이지만 이번 명절에 참신했던 점은, 이제 살만해져서

그런지 국내 사정을 벗어나 국제 문제로 주제가 확대되었다는 것이죠.

 

우선, 많은 나라에서 의료비 무료정책을 시행하는 유럽의 경우, 의료기술과

의료서비스의 질이 점차 떨어지는 것을 무척 걱정하는 목소리더군요.

 

프랑스의 경우 정년 연장을 반대파업 이야기를 하면서, 모럴해저드에

극단을 달리는 프랑스 국민들의 각성과 정부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건, 파리 여행 시에

각종 시위와 파업으로 겪었던 개인 경험담들.

 

종합해서 정리 하자면 자유라는 미명아래 불온을 선동하는 세력과

이를 방치, 방임하는 정부 때문에 혼란과 불안이 가득한 프랑스는

정말 사람 살 곳이 못된다는 이야기였죠. 결국 근본적인 문제점은

오랜 기간 동안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과도한 복지정책이라는 날카로운

분석도 곁들였고요.

 

하지만 이어서 프랑스는 약과라는 주장.

더 무지막지한 복지정책을 펴는 북유럽 국가들은 완전 막장이라는 거죠.

이건 뭐 더 이상 얘기 할 것도 없더군요.

 

항상 느끼지만, 모두 석, 박사에 교수까지 되시는 이 분들의 고매한

대화를 듣고 있다보면 배우는 것이 참 많았는데, 올 추석은 특히 더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되었어요.

 

사람이 시각이나 생각이 차이가 있더라도최소한의 기본적인 것에서는

합의점이 있기 때문에, 꾸준히 대화하고 토론하면 충돌하면서도

서로의 주장들을 둥글게 엮어갈 수 있다는 편견과 오해는 이번에

깨끗이 날려 버릴 수가 있게 되었죠.

 

그런데 이런 대화를 주도하던 대학교에서 학생 가르치는 손아래

친지의 손에 수업준비 때문인지 쥐고 있는 발터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보는 순간, 빨갱이 책을 보더라도 이렇게 건전한 정신을

갖고 있을 만큼 이 친구는 성숙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참 알딸딸

해지더군요.

 

 

명절 후유증 오래가네요. 계속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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