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리영희 선생님을 회고함

2010.12.05 12:12

soboo 조회 수:1973


  처음이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어떤 분의 부고기사를 읽어가다가 울컥한것이요.

  벽한면이 통유리로 다 들여다 보이는 방에서 일하고 있던 차라 혹시라도 통곡으로 이어질까 매우 힘들었네요.


  어제 처음 부고를 듀게에서 접했을 때만해도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혹시 연세가 한 참 되신 집안 어르신 장례를 치뤄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이해가 가실거 같네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으로부터 어른과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고 있으면 왜 그 좀 담담해질 수 있는 그런게 있자나요.


 그런데 하루가 지나 오늘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보다가  울컥해지고 눈시울이 뻘개젔습니다.


 20대부터 제 사상의 높이와 넓이의 어떤 벽을 허물어 뜨려주신 분입니다.

 그 칙칙한 벽을 허물어 뜨리고 조우한 또 다른 넓은 세상!!! 우상의 벽뒤에 숨어 야만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들의

 너저분한 면모를 까밝혀내어 뜨거운 햇살 아래 그 비루한 속알맹이들을 보여내는 그 분의 역작들

 


 아직 졸업하기전이었던 어느날 문득 


 "왜 이 분은 저런 저작을 쓰고 험난하고 고난한 인생을 선택하신거지?" 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어요.


 막, 그 동구권국가들과 소련이 연이어 무너지고 러연방이 일어서고 

 이데올로기의 종말이니 역사의 종언이니 진보의 사멸이니 싸구려스러운 소리가 넘처나던 시절이었기도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신해철 표현대로 하자면 무용과 학생들도 짱돌 던지던 시절을 거친) 학생시절을 어찌 갈무리하고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 번민을 하던 시기였거든요.


 "왜?" 


 누군가 '역정'을 추천해주더군요.

 당시 거의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이었지만 창비쪽에 어찌 어찌 건너 건너 줄이 닿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이 그런 길을 걷기 시작한 계기는


 분노였어요.

 야만이 만들어내는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피폐하게 만드는 상황에 대한 분노,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내는 권력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분노 너머 인간에 대한 타인에 대한 이웃에 대한 애정이라고 해야 하나요? 

 불교에서말하는 연민, 유교에서 말하는 측은지심,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리고 이어서 그런 분노에서 시작한 행동들이 수십년 인생을 관통하며 간단없는 실천으로 가능하게한 동기와 힘? 

 

 그게 참 궁금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으로 읽혀지더군요.


 사람의 탈을 쓰고서 저런 우상의 지배를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

 내가 저런 것들의 야만의 속성을 알면서도 침묵한다는게 얼마나 끔찍하게 챙피한 일인가?


 저작물에서 보여지는 논리적 정교함 사고의 광폭함에 대비된 참 인간적이신 동기였고 과정이라  작지 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난 이런 프로메테우스적인 사람의 추종자 혹은 지지자는 될 지언정 내가 횃불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어렴풋하게 느꼈습니다.


 80년대말 이후 여러가지 복잡한 사건들이 일어날때마다 리영희선생님의 발언을 찾게 되었던 것은

 항해에 나선 선원들이  '나침반'에 의지하고 어두운 밤바다에서 등대불을 애타게 찾는 심정과 같았을거 같구요.


 그 분의 거침없는 우상 허물기의 노력이 이제는 별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어느 정도는 열려진 세상이 된거 같습니다.

 많이 변한 세상은 그만큼 더 복잡하게 얽혀져 있기도 하지만 전 그만큼 진보를 이룬 탓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사상적으로 많은 빚을 진 큰 어른께서 영면하시고 못내 서운하고 또 그닥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못마땅하지만

 많은 것들을 남기고 떠나신 어른의 '의지'를 이어가는 것은 온전히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이겠지요.


 30대 초즘이었나? 저에게 마지막으로 각인된 그 분의 모습은 당시 제가살던 동네의 한 마트에서 사모님과 함께 장을 보시던 모습이셨습니다.

 사모님 옆에서 장바구니를 드시고 게시더군요.  그 또래 세대분들에게서 보기 힘든 그 모습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아주 강하게 각인 되어 있습니다.

 사상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여러모로 감동의 인생역정을 살다 가신 큰 어른을 아마 오랫동안 그리워하게 될듯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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