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네 극동영화제, 마침내 [다크나이트] 와 맞먹는 마블판 수퍼히어로 영상물이 나왔는가

유럽에서는 홍상수, 김기덕 작품으로 대표되는 "예술영화" 들이 아닌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을 중심적으로 로컬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아시아영화제를 매년 두 번 엽니다.  프랑스의 도빌과 이탈리아의 우디네가 이 두 곳이죠.  

우디네는 규모는 부산영화제나 심지어 부천영화제와 비교해도 작은 편이고 별로 크지 않은 (그러나 시설은 상당히 잘 해놓은… 의자는 한국의 웬만한 극장만큼 편하지는 않지만) 극장 한 군데에서 열흘동안 한 작품당 딱 한번만 시간을 배정해서 아침 여덟시부터 밤 열두시까지 연속 상영을 하는 시스템입니다.  인터넷은 엉망이고, 기자실에는 방음시설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바로 옆에서 노래부르고 춤추고 하는 소음이 이어폰을 뚫고 들려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아시아 영화사랑과 이탈리아 중소도시의 고색창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과 센스를 자랑하는 미의식,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음식과 마실것 (프로쉬토.... 마끼아또... ;;; 허헝) 덕택에 최고의 영화제 경험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토론토와 마찬가지로 관객들 중심으로 운영되는 영화제라는 것이 나름대로의 문제점도 있긴 하지만, 앞으로 시네마테크- (지역 경제망에 기반을 둔) 영화제 시스템이 살아남으려면 취할 수 밖에 없는 대세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어로 쓰여졌지만 일단 영화제 리포트를 링크해 둡니다.

http://koreanfilm.org/Q/?p=299

http://koreanfilm.org/Q/?p=302

제 3차 리포트 및 참관후기도 곧 올려야 하는데 감기 몸살 때문에 여의치가 않군요.

영화제는 5월2일에 폐막했습니다. 우디네 영화제의 경우, 지난 6-7년 동안 한국 영화들이 관객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왔고, 제 17차 2015년 영화제의 경우에도 관객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인기상 작품들이 1위에서 3위까지 다 한국영화였습니다.  1위 [국제시장], 2위 [상의원], 3위 [두근두근 내 인생] 인데요. 비평가상에 해당되는 블랙 드래곤상은 캄보디아 영화 [라스트 릴] 이 받았습니다.  존 큐삭이 로마제국 장군으로 나오는 짬뽕 사극 프로모션하느라 성룡따거가 직접 우디네까지 왕림하시는 등 홍콩/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수많은 작품을 출품하고 선전을 퍼부었는데 결과는 여전히 한국영화들이 싹쓸이였습니다.  듀게의 멤버들이 보시기에는 의아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제가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본 이탈리아 관객들의 한국영화 사랑 (특히 "촌시러운" "멜로드라마" 와 "코메디" 에 대한 사랑!) 은 진짜인 듯 합니다. 

[아벤져스 2] 괜찮게 봤습니다.  리뷰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감기 때문에 생각이 정리가 안되네요.  그냥 구 듀나게시판 리뷰 수정판부터 올리고 천천히 올리죠.  한국 관계된 부분은 아름답게 비취진 않았지만 "서울" 이라고 자막도 딱 깔아주고, 그 정도면 잘 나왔어요. 

근데 유감스럽게도 [아벤져스],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기타 마블의 수퍼히어로 영상물들 이제 다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네요.  [데어데블] 땜시… 

비데오 렌탈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데어데블] 이 이런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하는 한편일 줄은 설마 몰랐네요.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 봤는데 [다크 나이트] 이래로 가장 우수한 미국 수퍼히어로 만화 장르의 업데이트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다크 나이트] 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합니다만, 자세한 품평은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토의해 보기로 하고, 일단 세 가지 특별한 점만 지적하자면:  1) 넷플릭스도 쇼우타임이나 HBO 처럼, 리얼한 폭력묘사, 캐릭터들 간의 성적 긴장, 정치사회적 비판 등을 프로덕션 팀이 마구 집어넣게 냅뒀네요.  전반적인 분위기는 완전 [Law and Order] 나 [The Wire] 등을 연상시키는 경파 미드인데, 진짜 [다크 나이트] 와 흡사한 방식으로 이런 경파 범죄 드라마가 토르와 아이언맨이 하늘을 붕붕 날라다니고  [아벤저스] 1편의 마지막에 나온 치타우리 때문에 9.11 사태를 연상시키는 손괴를 입은 뉴욕시티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2) 아직 전편을 다 보지는 못했는데, 중간까지 본 결과로는 찰리 콕스라는 영국 배우가 연기하는 머독 변호사/데어데블 보다도 (이 사람도 괜찮아요) [뉴욕 특수수사대] 의 고렌형사로 나왔던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연기하는 윌슨 피스크/킹핀이 주인공입니다.  예, 악당이 주인공보다 훨씬 더 멋있고, 중후하고, 무섭고, 잔인하고, 불쌍하고, 관심이 가는 캐릭터에요.  아아, 로키 얘기는 하지 마시길!  아스가드의 천치들은 고려 대상 밖입니다.  3) 위선적인 냄새가 풀풀 나는 [스파이더맨] 시리즈나 미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결여된 (그래 다 하이드라 탓이지. ^ ^ 최소한 [가면 라이더] 는 자신의 악의 조직에 의해 개조된 사이보그라는 자의식이라도 있거든?)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와는 달리 이 시리즈의 뉴욕 시티는 계급적 차이와 폭력에 찌든 일상 생활의 피곤함과 불안함이 묻어나는 멋들어진 네오 느와르의 세계입니다.  프랭크 밀러 같은 이들이 지난 10년동안 그야말로 "만화적인" 접근법을 통해 갖은 똥폼을 다 잡으면서 묘사하려고 했던 암흑세계를 이 [데어데블] 은 별다른 폼도 재지 않고 극명하게 그려주네요.     

최소한 이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니, 킹핀이 맨손으로 토르의 목을 비틀어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그냥 받아들이게 될 것 같습니다. 

부천영화제 같은 데서 [마스터스 오브 호러] 심야상영 했던 방식으로 1시즌 에피소드를 다 몰아서 틀어주면 좋겠군요.  충분히 부천관객들이 익숙한 레벨의 "폭력지수" 에 응답할 수 있는 한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