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짝이던 적이 있었는가...

2011.04.07 17:49

불별 조회 수:1850

Paul. 님 글 보고 나니 저도 제가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주저리 한번 늘어놓아 보고 싶어지네요.

 

 초등학교 저학년때 - 집에 TV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책을 참 많이 읽었고.. 결과적으로 활자중독이 되어버렸습니다. 술래잡기 구슬치기 딱지 등등 정상적인 교우관계 제로-_-; 점심은 늘 혼자 책보면서(!) 밥먹고.. 더 문제는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안했죠ㅠㅠ 덕분에 고등학교때까지 인간관계에서 난항을 많이 겪게 됩니다.. 이때는 정말 아무거나 다 읽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1학년때 교사용 실험지도서(...) 를 혼자 열심히 읽었던 기억도 나는군요. 이때 최초의 장래희망이 생기게 되는데, 바로 우주비행사!!!!  

 

 초등학교 고학년 - 집에 TV와 컴퓨터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마이너한 만화를 좋아했는데(...) EBS의 신기한 스쿨버스라거나, 인체, 탐험가 시리즈 등이라거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MBC의 몬타나 존스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제 기억으로 전체 방영분 중 치과가서 못본 1회랑 다른거 하나, 이렇게 2회 빼고 전체를 본방사수했던 기억... 뭐 물론 사이버 포뮬라, 마법소녀 리나 등도 열심히 시청해 주었지요. 그리고 저기 바다건너 일본이라는 나라에 '에바게리온'이라는 재미있는 만화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는데 (........) 이때 심시티 2000과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시작하게 되었죠. 롤코타를 너무 열심히 한 바람에 장래희망에 롤러코스터 디자이너 라고 썼던 적도 있습니다..ㄱ- SF를 좋아하기 시작하게 된게 이때죠. 아이디어 SF회관과는 조금 다른 어린이용 SF전집을 보게 되었는데.. 그 전집은 헌책방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더군요.

 

 중학교 저학년 - 동네 만화방의 존재를 그때서야 깨닫게 됩니다. 하루에 거진 한시간씩 만화방에서 살았던듯요-_- 처음에는 서서읽어서 매일 혼나다가, 나중에는 좌석이 없는 대여전문 만화방인데도 저만 주인아저씨 옆자리에서 돈내고 만화를 읽기까지 했죠. 그리고 에바를 어떻게든 보려고 노력했지만.. 당시는 ISDN도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뎀으로 에바 정보를 알아보고 다니다보니, 정작 한편도 보기 전에 스토리는 다 알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고학년 - 아아 이영도를 알게 되어버렸습니다아.... 싸구려 PDA를 사서 거기에 영도좌의 소설을 모두 넣어다녔죠불법인증 드래곤 라자를 읽고읽고읽고 또 읽어서 하룻밤만에 다 읽은 적도 있었던듯해요. 당장 이영도 관련 커뮤니티(드라클이라고 아시려나)에 가입하게 되고, 거기서 넷질을 시작해버립니다. 그리고 어릴때 부모님이 안사주시던 레고에 갑자기 버닝하게 되었죠. 레고커뮤니티도 가입하고, 주변 친구들, 친구들의 동생이 가지고 놀던 레고를 모두모두 매입해버립니다. 이때쯤 에바를 모두 보고, 나디아도 모두 본 것 같네요. 델리스파이스를 만나게 됨.

 

 고등학교 초반부 - 어째 저는 중2병이 이때쯤 시작한것 같아요-_-' 조그만 학교였지만 학교 도서관이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는 학생으로 자원했어요. 이 도서관에 있는 가장 어려운 책을 다 읽어버리겠다! 이런 허세가 발동해서 읽었던게 '율리시즈'와 '유리알유희' (.................) 나 왜그랬을까아... 한편 이때 주경철교수의 책을 발견하고, 역사학과를 가야겠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가 되어서야 내가 SF를 좋아한다는 자각이 생기게 되었어요. 하나둘씩 사모으기 시작.  

 

 고등학교 후반부 - 뭐 별 일이 없고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던 시절이네요. 남들과는 달리 야자도 보충도 모두 당당히 거부하고, 매일매일 정말 커뮤니티 넷질만 하던 기억이에요-_- 이때 서점에서 우연히 태평양 횡단특급을 보게 되었군요! 고3때 듀게를 오게 됩니다. U2를 만나게 됩니다 ;ㅂ;

 

 대학교 초반부 - 역사학과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과를 와버리게 됩니다. 그래도 고등학교때 그리 허랑방탕하게 놀던거에 비하면 학교 참 잘 왔어요(...)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3권씩 빌려서 집에 가면서 1권, 집에서 1권, 다음날 학교 오면서 1권 읽는 생활을 1년동안 했네요. 물론 학점은 비밀   이 때 하고싶은 일이 한달에 한번씩 바뀌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게 됩니다. 건축 책 읽으면 아아 지금이라도 반수해서 건축과 가야지!!!! 이러고 있고.. 생물학 책 읽으면 아아 병리학이 나의 길이었어!!! 역사책 읽으면서 사학과사학과!!!!! 이러고 있고.. 하지만 이게 흥미인건지 아니면 정말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감이 별로 없기도 하고.. 전공공부는 아주 못하는건 아니지만 별로 흥미도 없고 (한과목 빼고 올 B+이 나오기도 함;), 그래도 심심하면 끄적끄적 건물설계도 그려보고 있고 건축 책 들여다보면서 발음도 어려운 외국 건축가 이야기를 읽고.. 참 대충대충 살았어요. 정말

 

 그리고 지금 - 중간에 뭐시기 저시기 하다보니 3년을 탱자탱자 놀아서 -뭐 그동안 일도 많이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하기는 했습니다만- 스물여섯인데 아직도 3학년이네요.

그런데! 지금 듣는 수업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밌어요. 전공은 아니고 이중전공인데, 왜 이걸 진작 하지 않았을까! 어느 정도 옛날에도 흥미는 있었지만 이렇게 재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악 나 앞으로 학교 1년반밖에 못다니잖아! 관련 수업 더 듣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실력은 개뿔도 없지만 이걸로 대학원 가면 안되는걸까!! <- 요러고 있습니다.

 

 평생 참 많이 읽고 보고 산것 같은데, 쓰고 그리고 한 적은 정말 드물어요. 입력만 하고 출력은 안하고 살았던 거죠.

그렇게 짧은 삶이나마 항상 잉여롭게 살다가 이제서야 뭔가 열심히 해 보는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볼때는 나이는 많고 그동안 서류에 남을만한 스펙은 거의 없고 전공이든 이중전공이든 실력도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만족합니다. 아무튼 생애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래도 지금도 해보고 싶은 일들은 참 많아요. 요리학원 등록과 초경량 비행기 조종면장 취득은 매 방학마다 하려고 하지만 자금의 부족으로 항상 포기합니다OTL

 

한줄요약: 지금이 가장 반짝이는 때... 일거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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