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가 다시 열리고 나서 첫글을 진짜 순수 바낭성 글로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참 이런게 알 수 없는 거지요..


1. 제가 사는 곳에는 공공 수영장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국민체육센터,하나는 주민편익시설입니다. 지난 해 7월까지 저는 수영시작한 국민체육센터에서 계속 자유수영을 다녔습니다. 지난 여름, 수영장이 거의 목욕탕 수준이 되자 좀 피신하려고 8월부터는 주민편익시설 부설 수영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체육센터는 자유수영 레인이 2개지만 편익시설은 3개거든요 ㅎㅎ.


2. 주민 편익시설 수영장에 와보니 그걸 알겠더구먼요. 원래 다니던 수영장은 소위 '신도시' 주민이 많이 와서 그런지 수영도 쪼매 더 잘하고 좀더 개인적이고 다니는 사람도 좀 까칠해요(누가 도시인 아니랄까 봐). 근데 편익 시설 와보니 처음엔 조금 촌사람들 풍이 느껴지더군요. 아무래도 구도시 사람들이 많이 당겨서 그런거 같더라구요. 못보던 사람이 와서 늘 특정 연습을 하니 며칠 있으니깐 자유수영하시는 분들 중 몇분이 그렇게 묻더구먼요 "아저씨. 그거 뭐하는 건교? 신기하네.."  아 오지랍 혹은 텃세?구나 하곤 그냥 웃어 넘기곤 했습니다.


3. 다시 가을이 되고 수영장이 좀 한산해져 돌아갈까 하고 있었습니다.근데 어느 날 눈으로만 알던 어느 나이 드신 분이 저에게 몇가지를 묻는 데, 태도가 진지할뿐만 아니라 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당기셨나고 물어 보니 세상에 3년 가까이 다니셨는데(그것도 매일 2시간 정도 자유수영) 한마디로 어디부터 손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폼이 이상해서 안그래도 눈에 띄던 분이셨습니다. 늘 강습반 사람들에게 동냥으로 배우다 보니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고 자유형만 하는 데도 괴상망칙한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체력이 좋은 분이라 대충 가기는 가지만 원래 힘으로 가는 수영은 한 1년 제대로 배우면 졸업해야 하는 데 아직도 그러고 있으니 안쓰럽더군요.


4. 제대로 가르져 드리려고 마음먹고는 제가 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대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악전 고투지요. 잘못 배인 습관은 아니함만 못하고 가장 기초적인 힘빼기와 균형잡기에만 거의 몇달을 보내게 됩니다. 근데 참 신기한 게 이분은 그 지루한 드릴 연습과 처음으로 남을 정식으로 가르치는 미숙한 저의 지도 과정에 대해서도 불만을 말씀하신 적이 없는 겁니다. (예 저도 한까칠합니다. 가끔 왜이리 안되지 하면서 스스로 성질 내기도 했어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58세 된 목사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저는 불자지만 이상하게 기독교 분들이랑 인연이 잘 맺어지더군요 ㅎㅎ.언제부턴가 저를 코치님이라 부르면서 더이상 딴 사람에게 묻지를 않거나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저에게 묻곤 합디다.


5. 올해 1월이 되자 저는 이제 원래 내가 하던 수영장으로 돌아가서 제 훈련에 집중하려고 마지막으로 수영장 3개월 결제를 합니다.사실 그동안 일일 수영만 끊고 다녔고  지난 가을,겨울 다이빙 때문에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생각하고 전력을 다하려고 마음 먹은 거지요. 이젠 제 수영이 관심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옆지기는 "니 수영은 언제 할라고 그라노" 하고 툴툴됐지만 그게 도리가 아닌 거 같았습니다. 마침 목사님께서 그 넓은 오지랍으로 소개해 주신 쌩초보 아주머니 한 분도 같이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6. 예,사건은 엉뚱한 데서 터집니다. 그 아주머니는 쌩초보라서 오히려 쑥쑥 배웁니다.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스폰지처럼 흡수하면서 1달만에 자유형 25미터를 가고 2달만에 4대 영법을 흉내나마 내는 수준에 오릅니다. 시간이 더 없어서 2달밖에 못가르쳤지만 본인도 열심이고 저도 열심히, 목사님은  아 안되던게 저렇게 되는 구나 하면서 더 열심히. 한달을 재미있게 보내는 데 수영장 측에서 슬슬 안티가 들어옵니다. 1월달이 지나고 강습수영 받던 어느 아주머니가 우리 아주머니에게 문의가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야 이거 별로인데" 라고 느끼고 있는 데 강사들과의 충돌이 시작됩니다. 2월부터 3월까지 5번의 충돌이 생깁니다. 어느 고약한 강사랑 결국 마지막에는 고성을 지르고 싸우곤 시설측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합니다. 애매한 사과를 받곤 저도 마음을 접습니다. 이게 인연의 끝인걸까? 처음엔 먼저 알게된 사람이 가르쳐 주고 중간에는 같이 가고 마지막은 모두 함께하는 그 그림은 아직도 우리 세상에선 불가능한 걸까?


7. 지난 주 내내  자유수영하면서 눈에 익었던 분들에게 다 인사를 드렸습니다. 68세 된 백혈병을 이긴 할아버지와 무릎 관절이 아픈 할머니 부부부터 13세살짜리 현빈이와 그 어머니에게도, 노패킹 수경이 안맞는 이유가 코걸이 문제인지 모르던 어느 할머니에게도..기타 모든 분들에게도 다 마음으로나마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다시 8개월만에 제가 다니던 수영장으로 왔습니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겠지요? 아닙니다. 마치고 나오니 그냥 쓸쓸합디다. 좋아하는 커피를 한잔 들고 담배를 피지만 그때 그 느낌이 아니었어요.그냥 현빈이가 보고 싶었어요. 고놈은 13살 짜리인데 제가 하루만 안가면 눈을 부라리면서 "아저씨 왜 어제 안왔어요?" 합니다. 지난 발렌타인 데이에는 저랑 김목사님 쵸코렛 준비해서 주더군요. 이번 주 내내 보면서 " 현빈아 어린이날 뭐 받고 싶노?" 물어보니 그레고리 기차(?)라 카던데 김목사님이 카톡으로 오늘은 현빈이도 안와서 정말 거시기 했다니 제가 맥주를 안마실 수 있겠습니까?


8. 그래서 바낭입니다. 정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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