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ncy님 연애는 구원이 아니었어요.

2013.02.15 17:21

知泉 조회 수:6181

으으으음... 고백하지만 전 clancy님의 댓글과 '그' 컨셉이나 자학을 매우 힘겨워하는 사람입니다. 못되게 말을 할 수 있어서 미리 사과 드립니다.


예전에 똘똘하고 매력적인 동기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자기는 감정 노동을 존중한다고. 자신은 사람들을 잘 사귀고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위로를 건넬 수 있으니 외로운 사람들이 자기를 찾고 함께 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그런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받는 일을 하고 싶다. 사실 이 시대에 필요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 끝에 나왔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 순간 "그런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그런 서비스를 혐오할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냉정하게 말해서 clancy님께선 그런 서비스를 구매할 소비층이겠지만 1. 그런 서비스를 자신에 대한 비하, 농락으로 받아들인다 2. 서비스를 구매한 후 더 큰 자괴감과 혐오, 분노에 찬다 3. 서비스와 애정을 혼동하여 사고를 칠 수 있다. 이런 문제로 저런 서비스업은 생기지 않겠죠. 그리고 저역시 저런 이유로 저런 서비스를 거부합니다.


clancy님께서 외로우시죠. 제가 생각한 바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외로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외로움은 아무리 숨겨도 손톱 옆 거스러기처럼 불쑥불쑥 비집고 나와 머리 속을 가득 채웁니다. 사실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닌데 말이죠. 그저 마음이 그 쪽으로 쏠려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깔짝깔짝 건드리게 되는 거스러기가 가장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포기해야죠. 피날 거 각오하고 잡아 뜯거나, 인생사 공수래 공수거 제행무상이요,를 되뇌며 인식하지 못한 것은 존재하지 못한 것이니 넌 내가 알지 못하는 거스러기, 내게 거스러기따위 없어 라는 강도 높은 자아 부정의 시간을 가져야죠. 사실 제일 좋은 것은 그 거스러기를 없애기 위한 최단 루트를 찾아 밟는 방법이 최적입니다.


전 clancy님의 글을 볼 때마다 이 분은 뭘 원하시는 것인가. 이런 자신을 사랑해주고 사귀어 달라는 뜻인가? 그런데 이렇게 매력없이 구질구질 찌질찌질하게 구나? 우는 불쌍한 아이에게 옛다, 관심 마냥 긍휼한 어느 분께서 나랑 사귀자, 콜 이렇게 나오시길 원하시나? 동정이라도 받아서 연애를 하고 싶나? 근데 왜 안되실까? 이유가 뭘까. 라는 다양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답을 알았어요. 그건 clancy님 때문이예요.


제가 제 주변 녀성들에게 미는 이론 중 하나가 세상에는 상종 못할 것들이 셋 있으니 하나는 마마보이요, 하나는 열폭 종자라. 그러나 가장 상종못할 것들은 예술/창작하는 것들이니, 그런 족속을 만나면 십 리 밖으로 튀어라. 걔넨 불가촉천민, 언터쳐블, 딜리트이니 이들을 만난 내 전생에 지은 죄가 깊어 후생에 갚으리어라, 뭐 이런 연애 카스트 이론입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예술가 또는 창작자들은 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지 창작물이고 걔네가 알파이자 오메가, 영원한 첫사랑이라 아무리 연애하고 결혼해도 창작물에 비하면 넌 세컨드이자 첩밖에 없고 그래봤자 바람이다. 연애나 결혼 해봤자 영원한 사랑이자 연인, 전부인 창작물에게 바치기 위한 번제물이요. 피카소를 보고 헤밍웨이를 보고 차이코프스키를 보고 로뎅을 보라, 그것들은 상종못할 악의 축이니라,쯤 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론이 나오는 줄 아세요? 그래도 매력적이거든요. 불가촉천민이라 해도  조정치씨가 매력적이다, 섹시하다,라는 말을 듣고 유희열은 가요계 3대 미남 소리를 듣습니다.  저 역시 동률씨는 세상에서 제일은 아니지만 정말 잘생긴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그' 이효리도 '그' 이상순씨와 사귀고 있습니다. 헤어졌지만 모든 남성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유해진 씨도 있습니다. 외적인 스펙은 그냥 시작일 뿐이예요. 이들에 비해서 clancy님의 외적 조건이 현저히 떨어질까요. clancy님 역시 창작자시죠. 많은 사람들은 훌륭한 결과물을 배출해주는 사람에게 언제든 콩깍지가 쓰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에 저 연애 카스트 이론이 정립됩니다. 그들이 인기가 없다면 그런 이론이 나올리가 없죠.


...아, 갑자기 예술가 불가촉천민 이론 얘기하다 옆으로 샜습니다. 요약하자면 clancy님의 외적 조건, 사회적 지위 낮음, 금권력이 연애 못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clancy님께서 주변 여성과 게시판 분들을 질리게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clancy님의 연애 징징 속에는 clancy님은 보이는데 그 대상은 없어요. 어떤 여성을 좋아해서 마음이 움직여서 고민하는 느낌보다는 '연애'를 하고 싶은데 주변에 적당한 여성이 있어서 들이대 봤는데 거절 당했다는 느낌이 더 큽니다. 그것도 거의 모든 여성에게 들이대졌다면서요. 당연히 안되죠. 이쯤 되면 소개시켜줄 마음도 없습니다. 미쳤습니까. 소개시켜주면 욕을 미친듯이 먹을 것이 뻔한데요. 의외로 세상은, 주변 사람은 많은 것을 봅니다. clancy님의 외로움, 절박한 마음 다 알아요. 당연히 소개팅도 안되죠.


거기다 clancy님께선 연애를 시작하면 뭐든지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시죠. 아니요. 연애 시작은 말 그대로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clancy님께선 좋은 연애 상대가 아니에요. 쉼없는 자기 비하 개그는 힘들죠. 게다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인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나를 좋아하다니 저 사람은 이상해, 문제 있어, 정말 비루한 것들임" 에서 어떻게 나오실 지 엄두가 안납니다. 게다가 연애 상대를 구원으로 바라보는 사람인데 무슨 문제가 생가 헤어졌을 경우 나를 이용한 나쁜 쐉ㄴ이라고 반응했던 다른 사람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 까요. 건축학 개론의 이제훈의 반응이 남 일이 아닐 수도 있죠.


연애는 구원이 아니었어요. 아무리 살을 섞어도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었죠. 마키무라 사토루는 자신이 바로 서지 않으면 좋은 연애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비루한 것들만 다가오지요. 나쁘게 말하자면 빨대 꽂기 참 좋은 상태입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외로운 자신에게 상대가 다가와 진정한 나를 찾고 발전해나가는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하다못해 나라도 잘 서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쁜 연애를 할 바에는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연애를 한다는 기억이 남는다구요? 그게 남으면 나쁜 연애가 아니겠죠. 정말 나쁜 연애란 그 사람의 마음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인걸요.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 나에게 거짓으로 사랑을 속삭였구나 쯤 되야 나쁜 연애입니다. 돈이 없으니 그런 걱정은 없으시다구요? 그럴리가. 물질적인 이용만이 이용이 아닙니다. 감정적인 이용도 이용입니다. 감정적인 이용에 쾌락이 없다면 우리에겐 어장관리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를 구원이라 바라보고 너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나를 위해 그래줬으면 하고 내 좋은 모든 것과 내가 가진 이상을 뭐든지 덕지덕지 발라 만든 괴상한 형상을 만들어낸 사람과 연애하고 싶은 마음은 안생깁니다. 게다가 그게 나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외로우니 연애 한번 하고 싶어서, 수준인데 그런 이상을 부여하는것은 불편함을 넘어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런 감수성, 예민함, 외로움, 고통은 clancy님의 창작 활동에는 엄청난 동력이 될 것입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지언정 진실을 말하는 지점이 있고 어느순간 찬연한 아름다움을 말하는 김기덕 감독 처럼 보편적이지는 않을 지언정 힘을 가진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을 만든 다고 창작자 개인이 행복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리고 외로운 짝사랑 자학 개그를 하시는 것은 이해합니다. 자조와 자학을 통한 유머가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난 쓰레기야라고 말하는 부정적인 쾌락 역시 중독적입니다. 예전에 자학을 통한 힘이 스스로에게 필요했다면 이제는 자학을 그만두는 것이 필요한 지점 같습니다.


연애와 사랑은 함께 가지 않아요. 연애가 아닌 사랑을 하시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아는 사람들도 외롭지만 솔로지만 사랑은 하고 있어요. 대충 그 사랑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의 사랑이지만:P 혼자인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비참하고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결국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타인은 내게 상처를 줄 수 없어요. 가장 큰 상처는 내가 만든 상처였습니다. 그러니 타인을 이상화하지 마세요. 구원을 바라지 마세요. 연애를 시작해도 구원은 없습니다. 지금 같은 마음으로는 끝없이 상처받을 뿐이었습니다. clancy님께선 힘들고 상처뿐이라지만 좀 다가와주면 안되겠냐,고 하셨는데 이 무슨 염치없고 이기적인 말인가요.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겨우 '연애' 좀 해보겠다고 다가온 상대에게 왜 상처와 고통을 감내하면서 만나야 하나요. 그런 마음이 있는 한 연애는 끝내 못하실 겁니다.







그리고 이처럼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솔찍한 자학 개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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