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글에도 썼듯, 이러저러그러해서 전 여즉 병원임믜다. 다음주 수요일에 4차 수술을 하고, 어느정도 아물면 퇴원준비 하재요.

자다 깨면 책읽다 질리면 컴퓨터했다 손님 오면 수다떨기를 반복하며 나름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제목의 앙뜨와네트 놀이가 뭐냐면.

 

   일주일 중 월~금 동안 여기서 먹고자며 저를 간병해주는 외쿡 여인 J. 그녀는 아부지님의 와이프입니다. 2년 됐는데 저와는 이번 사고로 처음 만났지요.

이러저러한 집안 사정이 끼어 있으니 각설하고두달 넘게 같은 공간에서 먹고자고 하다 보니 처음보다는 꽤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건 저뿐인가봐요.

사실 간병이라는게환자노릇만큼이나 힘든 일이에요배변 수발에 식사 수발에 간식 수발에 TV채널 수발 등등 A to Z를 온전히 자신에게 의지하는  환자를

몇 달이나 돌보는 일은 혈연이라도 버텨내기 힘들죠. 아직 먼 얘기지만 아부지가 늙으신 담에 지금의 나처럼 병원에 입원하면 나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여인 J와 아부지님이 많이 안쓰럽더군요. 둘이 알콩달콩 멀쩡하게 지내다 난데없이 이게 뭔 봉변이여...흐르르륵.

 

   병실에서 저는 책, 손님, 컴퓨터를, 그녀는 갤탭과 TV를 붙잡고 지냅니다. 가끔 잡담을 주고받을 때도 있지만 그녀는 한국말이 짧고, 저는 영어가 짧은지라

이내 '? 뭐라고라????'를 반복하게 되지요. 아부지님은 평일엔 낮에 일을 하시고 저녁에 들르곤 하는데, 여인 J의 얼굴은 그때 가장 밝아집니다. 병원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식사를 곧잘 거르곤 하는 그녀를 데리고 아부지님은 근처 밥집에 외식을 하러 나가곤 하거든요. 간병인의 도와 병원규칙을 잊고 한잔 걸치고

오는거 뭐, 잔소리 해도 안 들으니 이젠 그냥 봐드립니다. 좁디좁은 간병인 침상에 둘이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왠지 복잡한 심경이 드는

자신에게 에이, 말자, 하면서 도리질을 치기도 한 건 그냥 한순간 지나가는 마음의 풍경 정도로 갈무리해 두고.

  어쨌든 앙뜨와네트 놀이는, 둘이 이렇게 외식을 하고 오면 아부지님이 곧잘 제게 다가와 왜 평소 낮시간을 보낼 때 여인 J와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느냐,

그녀가 몹시 심심하고 섭섭해하니 말 좀 많이 나누고 그래라, 라고 이야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평소 간병하면서 쌓이는 고충을 아부지님과 독대하면서

주리주리 풀어내나봐요.  다쳤던 초반에, 한창 아프고 정신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제게 그녀가 이름을 부르는 것을 섭섭해한다, MOM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떠하겠니, 라고 하시기에 긴말도 귀찮아 허허 웃고 단칼에 거절한 적이 있지만. 이 건이라면, 으음.

  간병인이 심심하고 고된 포지션임을 진즉 주지하고 있던 제게 그녀를 배려해 펑소 대화를 많이 나누라고 하는 건 도의상 인지상정상 지당한 요구로 느껴지더란

말입니다. 저야 간호사 엉니들이 짐짓 이마를 찡그리곤  '인기쟁이~'라며 오글돋는 농담을 건넬 정도로(세균보유자로 격리중이라 병문안 손님들 들이려면

그들 입장에선 좀 신경쓰이거든요) 심심찮게 손님들이 찾아오는 편이니 찧고까불고 놀아줄 사람이 있다 쳐도 그녀는 아니니까요. 문득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마리 앙뜨와네트 생각이 나더군요. 듀바리 부인한테 말 먼저 안 걸겠다고 으르렁쾅쾅 존심싸움 하다가 결국 굴복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딱 한 마디 건네지라.

'오늘 베르사이유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군요' 정도의 대사로 기억함믜(이런 건 참 디테일하게 생각나는 기억력..-.-). 앙뜨와네트야 듀바리가 싫어서 부러 말을

안 건거라지만 전 단지 그녀와 할 말이 없을 뿐...어쨌건 '부러' 말을 걸도록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 이 홀로역할놀이의 뽀인트지요, ㅇㅇ.

   이후로 뭔가 말 걸 꺼리를 만들어내어 그녀에게 말을 시키려 들면 왠지 듀바리돋아서...? 암튼 사람다운 대화를 좀 하려고 신경쓰고 있슴믜다.

원래 그닥 섬세돋거나 자상한 캐릭터가 아니어서 저를 간병해주는 그녀의 노고에 깨알같이 보답하진 못하지만, 무심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성격 좀 바꿀 때도

되지 않았냐는 아부지님 취중발언을 이번 건에 한해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할 듯해요. 아악, 그래도 할 말 없는데 말 거는 거 힘들어...그리고 사실 간병하는 사람이랑

환자랑 별로 말 안하는게 정상이던데 모...엉엉

 

  뭐 이케 길게 썼지만, 사실 지금의 저한테 그렇게 거슬리거나 신경쓰이는 문제는 아니에요. 결과적으론 그냥 되는 대로 되어지겠지, 하는 만큼 하게 되겠지, 하고 내버려두는

타입인게롱(뭘 바꾼다고?). 네번째 수술 하고 어느정도 아물면 드디어 걷는 연습 한다니까 화장실만 혼자 갈 수 있게 되면 간병 빠빠이, 돌려보내드리고 혼자 해결할 생각입미다.

퇴원하면 적어도 완치될 때까지는 어색돋는 가족놀이를 하며 살아야 하지만.................., 그것도 뭐, 어떻게 되어가지 않겠어요. 그건 그때 생각하면 되지.

 

  그래서, 전체적으로다가 잘 지냅니다, 마카롱이랑 커피로 점심먹고 커트 보네거트를 읽는 우아돋는 환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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