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무수히 많은 리뷰와 감상기가 쏟아진 터라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누가 귀 기울여 들어줄지 걱정되지만 그래도 몇 자 적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 어느 누구도 지적하지 않고 있는 것인데,

디카프리오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연기 스타일이 정형화 되었다고 느끼시는

분 없나요?  좀 더 콕 찝어 말하자면 손에 총을 들기 시작한 이후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디파티드 이후로 블러드 다이아몬드, 바디 오브 라이즈, 셔터 아일랜드, 그리고 인셉션까지

각기 다른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마치 같은 주인공의 다른 에피소드를 연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일종의 직업 혐오에 빠져 있으며

항상 미간을 찌푸리며 종종 격한 말투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전문가 연기 말입니다.

각각의 영화의 주인공들을 무작위로 섞어서 다른 영화에 집어넣더라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

라고 할까요.  무엇이 문제인지는 감히 지적하기 어렵지만 서로 다른 영화를 볼 때 주연배우에게서

느껴지는 기시감은 사실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영화 설정의 유사함과 디카프리오의 연기 탓에 

 셔터 아일랜드의 테디와 인셉션의 코브는 같은 완전히 같은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얼마 전에 보았던 괴작 평행이론이 생각나는군요.

 

 

2. 놀란 감독은 과거 활약했던 강한 캐릭터를 가졌던 배우들(하지만 결코 A급 스타는 아니었던)에게 

존경심과 더불어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정 반대의 성격을 부여하는 데 묘한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배트맨 비긴즈의 룻거 하우어와 다크나이트의 에릭 로버츠는 기존에 그들이 가졌던 캐릭터에 비해서

훨씬 단순하고  속내를 알기가 쉬운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인셉션에서의 톰 베린저 역시 마찬가지의

역할을 부여받았죠. 사실 이름없는 그 어떤 배우가 연기하더라도 극 흐름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할

정도의 비중을 가진 캐릭터들이지만 현재는 잊혀진 한 때의 개성 강한 스타들을  의외의 배역에 기용하면서 관객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톰 베린저를 아는 관객에게는 인셉션에서 그가 등장했을 때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들지만 사실 그는 영화 내내 잠만 자고 있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죠. 

조금은 다른 경우로 킬리언 머피가 등장했을 때 역시 살짝 긴장하고 있었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는 참으로 순진무구한

재벌 2세 역을 충실히 연기하더군요.  지금껏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인물중에 이토록 상영시간 내내 아무런 긴장감을 만들어 내지

못한 인물이 있었나요?  코브의 특수한 보안 운운하는 약장수 뜬구름 잡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은 이 양반의 전직이 심리학 박사

겸 슈퍼 빌런 허수아비 선생인게 생각나서  참 재미있었습니다.

 

3.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는 듀나님 평마따나 생각할 거리가 있는 소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중첩된 다섯 개의 무대 속에서 인물들이 뛰어다니지만 결국은 그동안에 무수히 많은 영화 속에서

말해왔던 무의식과 가상현실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는 이야기일 뿐 새로운 건 없었네요.  그저 이 오래된 가상현실 게임의 스테이지만 늘려 논

꼴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어반복의 함정을 규모의 확장을 통해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같은 곳이었거든요.

그렇다면 역대 최고가의 리바이벌 답게 시각적인 면에서 돈값을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독창적인 그림은 고사하고 영화 내내 

느껴지는 기시감과 진부함, 때로 느껴지는 조악함이 대체 그 많은 돈은 어디에 든 건지 궁금하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잘 짜여진 게임의 규칙과 군데군데 일부러 하나씩 빼놓은 고리들 탓에 오랬동안 이야기될 컬트 영화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이네요.

 

놀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합니다. 어쨌든 헐리우드에서 2억 달러짜리 '이야기' 를 찍는 거의 유일한 감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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