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낭이다] 의미없는 것들

2010.07.08 02:22

룽게 조회 수:2575

남산 자물쇠 이야기를 문득 읽었다가 갑자기 생각 나서 주절거려봅니다.


하루키의 '1973년의 핀볼'을 처음 읽었을때 느겼던 충격은 '이런걸로 소설을 쓸수도 있었구나.'라는 경이로움과 무의미한 존재에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매달리는

인간상을 너무나 쉽고 명료하게 풀어나가던 글솜씨 떄문이었습니다.

주인공 '나'에게 시간과 사람은 그저 흘러가는 배경과도 같았습니다. 그사이 그는 핀볼기계 앞에만 매달려 있을 뿐이었죠. 코인을 넣으면 쇠구슬이 나오고

그것이 구멍으로 빠지기 전까지 플리퍼로 쳐올리는 일을 반복하는, 그리고 그 끝에는 빠찡고처럼 쏟아지는 구슬도, 최고점수에 대한 갈채나 명예도 없는

무의미한 점수판 불빛만 존재하는 게임에 '나'는 빠져듭니다. 그리고 어느날 이유없이 사라진 친구처럼  그가 자주가던 게임센터에서도 핀볼머신은 신형 콘솔게임들에

밀려 사라지게 됩니다.

시간이 흐른뒤 '나'는 자신이 붙잡고 있던 핀볼머신의 역사를 추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날 정체불명의 수집가로부터 연락을 받고 1973년의 그 핀볼 머신이 

있는 창고로 향하게 됩니다.

성취도, 보상도 없는 무의미한 게임기는 목재와 쇠와 고무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그 무기물들은 '나'에게 있어 그 어떤 유기체(인간을 포함하여)보다도

의미가 있던 물건이었죠.

자, 하루키 이야기를 하다보니 갑자기 글이 중2병 징후를 보이는 군요.;;;

건너 뛰어서, 흠,흠...;; 

고등학생시절 저는 방학이나 특정 시즌때마다 귀금속 프랜차이즈점에서 점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수입시계나 귀금속류를 주로 취급하던 매장이었던 만큼 손님들은 주로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사는 경우가 많았죠.

하루는 폐점시간 무렵에 한커플이 과히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들어와서는 며칠전에 사간 목걸이를 교환해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슨산지 며칠되지도 않았는데 도금이 벗겨지고 피부가 상했다는 것이었죠.

A/S규정상 그런 경우 본사로 다시 보내 재도금 해서 돌려드리면 될일이어서 그렇게 설명했더니 재도금이고 뭐고 필요없고 똑같이 생긴 다른 제품으로 교환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좋게 '바꿔주세요'라고 말하면 될걸 가지고 이야기 하는 남자나 여자나 목소리에 모두 날이 서있어서 내심 불쾌했던 저는 교환해드리겠다고 하고

접수증을 작성 한다음 두 손님이 보는 앞에서 목걸이를 잡아 당겨 끊어버렸습니다.

20년 (으악, 여기서 연식이 나오는 군요) 이 넘어가는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 제 앞에 있던 커플의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여자분은 당황하며 '그걸 왜 끊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는 신났지만(;;) 애써 담담한 말투로 '규정상 교환은 불량 파손품만 가능해서요, 멀쩡한 제품을 보내면 본사에서 교환을 안해줍니다.'라고 말하고 끊어진 

목걸이를 비닐백에 넣었습니다. ' 물건이 오면 그때 연락 드릴께요.'라고 말하고 저는 그 커플에게 연락처를 받은 다음 돌려보냈습니다.

그때까지 그 과정을 말없이 매장 한쪽에서 지켜보던 직원이 저를 조용히 수리실쪽으로 부르더군요. 

일년넘게 일하는 동안 제가 어떤실수를 하건 큰소리 한번 안내던 그 여직원은 저에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제 정신이야? **씨가 끊은건 우리한테는 그냥 제품이지만 아까 그사람들 한테는 선물이었을거 아냐. 아무리 반품규정이 그래도 그걸 선물한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부숴버리면 어떡해?"

어줍짢은 자존심에 저는 뭐라고 몇마디 변명했지만 속으로는 아차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체 무슨짓을 한거야? 싶었죠.

그뒤로 목걸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저는 금목걸이를 한 여성들만 보면 죄책감과 충동을 참지못하고....

이런건 아니고요.

하여튼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종일 시간단위로 두통약을 털어넣었더니 뭔소린지도 모를 횡설수설을 했네요.

축구 재미있게 보시고요.


남산 자물쇠 이야기 하다가 왜 이야기가 이리로 흐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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