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2011.09.28 16:24

Koudelka 조회 수:3160

   작년 언젠가 이런 글을 썼었죠.  

   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keyword=Koudelka&search_target=nick_name&page=2&document_srl=1108946
   거기에 등장하는 친구, 제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여자친구 이야기. 이것은 명백히 자랑입니다.

 

   이젠 직장도 집도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약속  한 번 잡으려면 몇 달을 별러야 하고, 친구가 시어머니에게 육아를 맡기는 지라 저녁 약속하는 며느리라고 혹시라도 책잡히기 싫은 성정을 알기에 기꺼이 그이가 있는 곳으로 가장 가깝게 달려가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더 빨리 만났으면 그래서 더 오래 같이 있었으면 하고 느끼게 해 주는 단 하나의 친구.  둘이 만났다 하면 아직도 같은 직장 나란히 앉아 일하던 시절처럼 너무 할 얘기가 많아 폭풍수다에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는 주량에 취해서는 서로 얼싸안고 니가 너무 좋다고 막 칭찬해 주고 서로 술값 밥값 내겠다고 싸우고, 다 내도 아깝지 않은 친구. 앞에서 맘껏 잘난 척해도 되고, 내 형편없는 소설을 막 보여주면서 감상을 물으면 넌 언제나 대단하고 어려워 라는 말로 내 뻔뻔함을 감당해 주던 친구. 속정깊은 뚝뚝한 친구라서 어떨 땐 내가 더 좋아해서 매달리는 건가 싶은 말을 툴툴거리면 자기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아냐며 웃기지 말라고 말하는 친구. 여름 휴가 가서는 내가 왜 술먹고 니 생각이 나야하는 거냐며 불쑥 전화를 걸어오던 친구. 사는 게 얼마나 자신없고 보잘 것 없으면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전혀 공유하지 않는 일상의 내 모든 것들, 내 등잔 밑의 어두움과, 내 창잣속 곱까지, 다 알고 있고 그래서 다 말할 수 있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울어버리거나 나를 울게 만드는 친구.

 

   "누군가가 다가올 때 마음을 열고 가만히 있어봐, 그냥 가만히 받아들여."

 

   내 마음은 항상 열려있다고 그래서 늘 상처받는 것도 나라고 했는데, 사실은 언제나 사람과 세상에 막을 치고, 가르고, 담을 쌓고, 깍듯한 거리와 긴장이 아니면 안심할 수 없는 것을 품위와 균형이라 착각하는 나에게 친구가 충고한 거에요.

 

   "내가 현재 처해있는 어떤 상황에서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건 내가 너에게 진짜 '메리' 가 될까봐, 내 주변의 톰과  제리가 몇 있지만, 진짜 너에게만은 내가 메리로 남고 싶지 않은 거라고..."

 

   취한 주제에 그 영화를 알지 못하는 친구에게 또 잘난 척을 하며 중언부언 했더니,
 
   "그게 무슨 말이야. 메리는 뭐고 톰과 제리는 또 뭐야, 머리 아프게. 우린 그냥 끝까지 가는 거지. 술이나 마셔."

 

   오늘은 정말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해놓고 결국 또 간당간당하게 놓친 지하철에 발을 구르며 서로의 가방에 택시비를 우겨넣느라 실랑이 벌이다 깔깔거리며 헤어지는 유일한 친구. 다시 또 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지 모르지만 언제나 내 모든 약속의 0순위. 내 스산한 일상에 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 지,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따뜻하고 행복한 것이구나, 취한 흐린 눈에 힘을 주며 택시의 차창을 바라보던 어젯밤.

 

  <잘 들어갔어? 우린 정말 둘이 붙으면 장난아니게 난리야. 다음부턴 조심해야겠어. ㅎ ㅎ>

 

  일 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받은 메시지에, 다음엔 더 난리를 내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친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6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1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16
36 4월은 작가와의 대화, 탁재형PD [6] 칼리토 2016.03.23 1063
35 헬쓰 4개월 효과 [6] 여름숲 2014.03.08 3512
34 오늘 정말 슬픈 이야기를 들었어요 [15] 아마데우스 2013.08.03 5271
33 [강아지] 샤샤의 역변 [16] 닥호 2013.01.08 3991
32 멘붕탈출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그래도 어찌 살아지겠지요. [8] 오늘도안녕 2012.12.28 2719
31 매우 기뻤던 최신 여론조사결과!! [7] soboo 2012.11.11 2460
30 [듀나인] (19?)소녀에서 숙녀로 (性적으로) 성장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 뭐가 있을까요? [16] 오레오 2012.11.11 3263
29 알라딘 중고책팔기 쏠쏠하네요 [14] 호롤롤롤 2012.10.31 4451
28 (바낭) 프랑스로 넘어왔어요. 오자마자 멘붕상태에요 [18] 소전마리자 2012.10.28 3943
27 (기사링크) 사드 소설 '소돔의 120일' 배포중지·수거 결정 [25] chobo 2012.09.18 3753
26 (바낭) 해외여행과 관련된 허세 가득한 생각 있으신가요? [25] 소전마리자 2012.09.16 4073
25 [디아] 전투정보실 기능 추가! [8] ripa 2012.08.08 1748
24 우산에 관한 몇 가지 잡담과 질문 [12] 안녕하세요 2012.07.14 2257
23 [듀나IN] 두부로 두부부침과 두부김치와 두부조림 말고 뭘 해먹을 수 있나요? [31] Paul. 2012.05.25 3679
22 셀프 생일선물 투척 [12] BeatWeiser 2012.05.03 2969
21 17세의 나레이션.jpg [4] 2012.04.07 4189
20 [바낭바낭] 크리스마스 맞이 네일 했어요! [8] 별가루 2011.12.23 2125
19 괜찮은 사람이 적다 [2] catgotmy 2011.11.29 1309
18 정봉주의원 10월 21일 찬조연설 중 노래 무간돌 2011.10.25 1323
»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4] Koudelka 2011.09.28 3160
XE Login